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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압력에도 소녀상 지켜낸 독일 교수 "베를린 결정 충격적"

윤지원 기자 입력 2020. 10. 14. 16:28 수정 2020. 10. 14.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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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 교육문화센터 하우스 암 돔에 지난해 10월28일부터 올 1월13일까지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풍경세계문화협회 제공


독일 베를린 한 자치구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은 한국뿐 아니라 독일 내 지식인 사회에도 충격을 안겼다. 요아힘 발렌틴 괴테대 기독교문화이론 겸임교수는 지난 13일 경향신문과 동영상 인터뷰에서 “일본의 행태는 과거 독일의 전쟁범죄 부정 방식과 유사하다”며 “한국 정부가 독일 관료를 만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발렌틴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프랑크푸르트 소녀상 전시를 주관한 인물이다. 현지 한인단체 풍경세계문화협의회가 잇따른 소녀상 설치 무산으로 난항을 겪자 발렌틴 교수는 자신이 관장으로 있는 프랑크푸르트 도심의 주요 문화공간인 교육문화센터 하우스 암 돔에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당시에도 일본의 지속적 철거 압력이 있었지만 발렌틴 교수는 소녀상 전시를 예정된 기간 내내 지켜냈다.

베를린 미테구는 지난 13일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데 따라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소녀상 철거 작업을 일시 보류하기로 했다. 철거 입장은 철회하지 않았다. 발렌틴 교수는 “소녀상은 공중 도덕을 해치거나 질서 및 문화를 방해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서 2차 세계대전 피해자를 상징할 뿐”이라며 베를린 자치구의 이번 결정에 “매우 놀랐고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발렌틴 교수는 미테구청의 소녀상 철거 결정은 일본 정부와 시민사회의 지속적 철거 압력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프랑크프루트에 소녀상을 설치했을 때에도 (일본 측의 압력을) 경험했다. 이번엔 독일 수도인 베를린, 그것도 공공장소에 소녀상이 설치되게 돼 일본이 더 큰 정치력을 동원했을 수 있다. (일본 측이) 접촉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급인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에게도 연락한 것으로 안다. 광범위한 정치적 방해 행위를 독일 정치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발렌틴 교수는 지난해 프랑크프루트에 소녀상을 설치했을 때 독일 내 일본 교민사회와 일본 정부 등으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았다. 그는 “논쟁적 전시 경험이 많지만 이러한 전방위적 철회 압력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주재 일본 총영사도 발렌틴 교수에게 소녀상 철거를 위한 만남 제안을 했지만 그는 전시가 끝난 뒤로 만남을 미뤘다.

“일본 총영사가 티타임 자리에서 소녀상을 바라보는 일본 시각을 들려줬다. 그것은 1950~60년대 (전범국)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올바른 기억을 방해했던 방식과 유사했다. 나는 총영사에게 ‘기억은 죄책감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 피해자와 역사를 만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해줬다.”

국내에선 한국 외교부와 주독일한국대사관이 소녀상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발렌틴 교수는 “소녀상 설치를 놓고 두 그룹이 접근해오는데 하나는 현지 한국계 시민단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의 총영사다. 양측 간 힘의 차이가 크다”며 “한국 정부가 독일 관료들을 만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질렀던 만행의 역사를 부정할 경우 형사 범죄로 간주한다. 독일 등 유럽 10여개국이 도입한 ‘홀로코스트 부정죄’가 그것이다. 적극적으로 전쟁범죄 청산 작업을 진행하는 독일이지만 발렌틴 교수는 “전쟁 피해자의 기억으로 역사를 세우는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발렌틴 교수는 “나치에 복무했던 부모와 조부모 경력을 부인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진다. 나치에 빼앗긴 유대인의 집을 파악하는 일 등 발굴해야 할 전쟁범죄 영역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어떻게 이 문제에 대처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기억을 피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 외에도 194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범죄 피해를 양산한 국가주의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소녀상은 현재 괴테대 사회학관으로 자리를 옮겨 설치돼 있으며, 내년 1월까지 이 곳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발렌틴 교수는 프랑크푸르트 소녀상 전시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독일 관람객들이) 위안부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정치적 메시지의 측면에서만 성공적인 것이 아니라, 대화와 정보공유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소녀상을 우리 교육문화센터에 모실 수 있어서 기뻤다.”

요아힘 발렌틴 독일 괴테대 겸임교수는 경향신문과 지난 13일 동영상 인터뷰에서 “일본의 소녀상 철거 압력은 과거 독일의 전쟁범죄 부정 방식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독일 가톨릭통신사(kna) 제공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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