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번아웃' 부모는 지칠 대로 지쳤다

박채영 기자 2020. 10. 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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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당사자 말하기 행사서
"이젠 내가 돌봄 필요한 상황"
정부 공공성 강화 대책 촉구

[경향신문]

“부산에서 9세, 6세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정화씨는 코로나19 사태로 학교가 문을 닫자 아이와 함께 출근해야 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긴급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교감이 직접 전화를 걸어 “돌봄교실 신청자가 2명밖에 안 되는데,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면 안 되겠냐”고 끈질기게 물었다. 긴 통화는 결국 “제가 집에서 돌봐야겠네요”라고 답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3월 한 달은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집에서 돌봤지만, 재택근무가 불가능해진 4월부터는 아이를 사무실에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씨가 일하는 사이 아이는 사무실에 딸린 작은 방에서 온라인수업을 들었다.

전국여성연대는 14일 ‘코로나19, 돌봄에 지친 당사자의 말하기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날 말하기 콘퍼런스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아이도, 보호자도 생활이 무너지고 있다”며 “돌봄의 책임이 개인에게만 전가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

‘독박 돌봄’의 고충을 호소하는 것은 이정화씨와 같은 맞벌이 가구뿐만이 아니다. 돌봄 정책의 후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인 외벌이 가구 학부모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3학년과 6세 아이를 키우는 이현아씨는 “다자녀 가구도 아니고 직장맘도 아니라 가정보육이 가능한지 물어보는 가정통지문은 거부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왔다”며 “오히려 제가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만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온라인수업만 듣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학원에 다니는 또래 친구들과 학력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학부모도 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김진주씨는 4세, 6세, 7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큰아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입학식도 못해보고 일주일에 한두번씩만 학교에 가고 있다. 김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큰아이의 온라인수업 숙제를 봐주고, 밑의 두 아이도 돌봐야 한다. 김씨는 “학원 뺑뺑이라도 돌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저희같이 아이들이 많고 형편이 좋지 않은 가정은 비용이 부담된다”고 말했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대표는 “돌봄에 대한 욕구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며 “돌봄교실을 확대하는 등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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