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마을 한복판 '태양광 숲'..환경 해치는 친환경 발전

정원석 기자 2020. 10. 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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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고속도로나 국도 근처를 지나다 보면 주변 산에 태양광 시설이 많이 보이지요. '친환경 에너지'다, '신재생 에너지'다, 해서 계속 설치하고 있지만 주민들하고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요. 울창한 진짜 숲을 파헤쳐서 '태양광 숲'을 만들고 있다고 한 주민은 말했습니다.

밀착카메라 정원석 기자가 전국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둘러싼 갈등 현장을 돌아봤습니다.

[기자]

경남 하동군에 있는 하동읍성입니다.

조선시대, 왜구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600년이 넘었는데요.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국가사적으로도 지정됐습니다.

그런데 이 성 앞쪽으로 직선거리 100m에 위치한 저 산 비탈면을 따라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서는 바람에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위태롭게 경사면을 따라 산 한 면을 차지한 태양광 패널들.

2017년, 하동읍성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하동군청이 설치 반대 의견을 냈지만 문화재청이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면서 개발 허가가 났습니다.

[하동군청 관계자 : 500m 이내 건은 기본적으로 영향 검토를 받게 돼 있어요. 근데 그 부분 같은 경우는 동쪽 산로 경사 부분에 설치됐다 보니 실제 하동읍성에선 전혀 보이진 않는 상황이죠.]

조망권에 영향을 안 준다는 이유였는데, 하동읍성 둘레는 1.4km에 달합니다.

바깥 성벽을 따라 조성 중인 둘레길을 오르면, 또 다른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워낙 여러 군데 태양광이 생겨나다 보니, 결국 조망권에 영향을 안 줄 수도 없는 겁니다.

보물로 지정된 충북 청주시 계산리 오층석탑.

불과 28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축구장 9개 크기에 해당하는 6만6300㎡ 규모의 태양광 패널이 들어섰습니다 .

전북 장수군의 한 마을 주민들도 들고일어났습니다.

가야시대의 산성 유적이 발굴돼 주민들은 마을이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졌는데, 2만6천 제곱미터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 허가가 난 겁니다.

[조경자/주민 : '오신 분만 서명을 좀 해주세요' 그러더라고요. 서명을 했지. 이제 가야 한다고 다음에 또 모이자고 그러면서 일어났거든요. 그걸로 허가를 냈대요.]

장수군 태양광 조례상 설명회 개최가 필수지만, 주민 동의가 필요한 건 아니라 설명회 자체가 통보에 불과하단 겁니다.

마을에선 천막 농성에 나섰지만, 군은 적법 절차에 따랐다는 입장만 반복 중입니다.

[장수군청 관계자 : 설명회 목적이 그분들의 찬성, 반대에 따라 인허가 결정되는 게 아니거든요. 주민들에게 이제 자기들이 공사를 한다, 이런 걸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거든요.]

태양광을 둘러싼 지역 주민 갈등은 최근 들어 곳곳에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5가구가 사는 경북 영양군의 한 마을.

이처럼 농촌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태양광 시설도 있습니다.

도로도 좁고, 집들도 띄엄띄엄 있다 보니, 태양광 시설로부터 일정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이격거리 규정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신청하는 족족 전부 허가가 나버린 겁니다.

골짜기를 따라, 다섯 군데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들어와 있습니다.

좁은 도로 양옆이나 갈림길까지 태양광 패널이 시야를 가리고 서 있다 보니 맞은편 차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런데 앞으로도 이 주변으론 31군데가 더 들어설 예정입니다.

주민들은 탄원서를 내는 등 난리가 났습니다.

군청은 적법한 절차였다는 입장입니다.

[변정화/주민 :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도 있는 거잖아요. 이래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 한 동네에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인허가를 내줬다면, 머리가 달린 사람이면 이럴 순 없죠.]

마을엔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태양광 사업자에게 땅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들로 나뉜 겁니다.

빌려준 주민은 노후대책으로 사유재산인 땅을 활용한 걸 왜 문제 삼냐는 입장입니다.

[주민 : 하루 인력이 10만원이래. 농사를 어떻게 지어, 못 지어. 한 달에 300만원 돈인데 세 받으면 내 노후대책 되잖아. 그게 뭐 잘못이냐 그거지.]

우리나라는 태양광이 지난해 기준 5만3천 개소에 설치됐는데,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3만3천 개소가 늘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산까지 파헤치는데도 허가가 나오다 보니, 고속도로나 국도 주변의 야산을 중심으론 태양광이 넓게 이어지는 모습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또 최근엔 몰아친 폭우와 태풍에 발전 시설이 무너져 내린 곳들이 나오면서 산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기까지 했습니다.

태양광 발전은 분명 친환경 에너지 자원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겁니다.

다만 주민 간 갈등, 경관 훼손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엄밀한 기준이 없었기에 난개발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게 아닐까요?

(VJ : 박선권 / 인턴기자 : 주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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