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냐" 日정부, 나카소네 전 총리 장례때 국립대 조기 게양, 묵념 요구 논란
국립대교수들, "각자 조의 표하면 될 일"
일본학술회의 개입 이어 교육통제 논란
일본 정부가 오는 17일 열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장례식 때 국립대 등에 조기 게양과 묵념으로 조의를 표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임명에서 배제한 '일본학술회의' 사건에 이어 정부의 또 다른 "사상 통제 시도"라는 비판이 현장에서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망한 나카소네 전 총리의 정부·자민당 합동장(葬)은 당초 올해 3월 열릴 예정이었으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달 17일로 연기됐다.
14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합동장 당일에 정부 각 부처가 조기를 게양하고 오후 2시 10분에 합동 묵념을 하기로 지난 2일 결정했다. 이어 관계기관 등에도 같은 방법으로 애도의 뜻을 표해달라 요청하기로 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같은 날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에게 관련 내용을 문서로 통보했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은 가토 장관에게 받은 문서를 첨부해 국립대와 소관 독립행정법인 등에 "이런 취지에 따라 잘 대처해달라"는 통지를 보냈다.
문부과학성은 또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교육위원회에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라며 가토 장관 명의 문서를 보내면서 기초자치단체 교육위원회에도 이를 주지시켜달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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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國葬)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지만 정부로부터 '조의 표명' 통보를 받은 교육 현장에서는 "도대체 어느 시대냐", "과도한 대응이다" 등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오사카대의 한 교수는 마이니치 신문에 "사상 통제다. 국장(國葬)도 아닌데 단순히 '국립'이라는 이름이 붙는 조직에 근무한다는 것만으로 따라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발했다.
홋카이도대의 한 50대 남성 교수도 "정부의 대응은 분명히 과잉"이라며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일본에 있어 큰 존재였을지 모르나, 개인이 각자 조의를 표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히로타 데루유키(広田照幸) 일본대 교수(교육학)도 교도통신에 "지금 시대에 걸맞지 않은 조치"라며 "정치인 장례식에 정부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폭넓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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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도 '손타쿠' 문화 퍼질 것"
이같은 반발은 최근 일본 사회를 들끓게 한 '일본학술회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지난 1일 학술회의 추천 후보 105명 중 정부 정책에 반대한 적이 있는 6명을 이 단체 회원으로 임명하지 않아 "학문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마고메 다카시(駒込武) 교토대 교수(교육학)는 마이니치 신문에 "일본학술회의 문제도 그렇지만, 스가 내각은 '국가의 명령에 순종하는 체제'로 나라를 바꾸려 한다"고 지적했다.
류큐대의 한 교수도 "학문과 사상의 자유 등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구조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이제 대학이 정부에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행동)'하는 풍조가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오사카부 교육위원회는 문부과학성의 통지를 받고 협의한 결과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와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 교육기본법 14조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사카부 소속 고등학교나 대학 등 교육기관에 이같은 권고사항을 전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는 '전후 정치 총결산'을 내걸고 1980년대 장기 집권한 자민당 소속 정치인으로, 일본 우파 정치인의 원조 격으로 꼽힌다.
앞서 일본에서는 나카소네 전 총리 장례식 비용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총 1억 9천만엔(약 20억원)의 장례식 비용 중 절반을 정부 예산으로 지출하는 데 대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치인 장례식에 거액의 세금을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야당을 중심으로 나왔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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