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인간의 뇌, 파충류 뇌로 변하고 있다"

신소윤 입력 2020. 10. 15. 14:36 수정 2020. 10. 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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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트리스탄 해리스 인터뷰
소셜미디어 폐해 설파하는 기술 디자이너
미 대선 바이든 당선되면 백악관행 얘기도 돌아
"아이티 기술 잘 쓰는 게 중요" '인간적 기술' 강조
16일 열리는 '위즈덤2.0코리아'서 한국 관중과도 만나
지난 6일, 화상회의 앱을 통해 인터뷰 중인 트리스탄 해리스. 신소윤 기자

6시간41분. 지난 12일, 오전 7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잠들기까지 기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시간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쓴 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SNS) 앱으로 총 2시간37분. 스마트폰을 들고 화면을 깨운 횟수는 총 124번, 각종 앱에서 날아온 알림은 166개다. 기사 마감이 발등의 불처럼 다급한 와중에도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다.

“알림을 끄세요.” 지난 9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 등장하는 실리콘밸리 아이티(IT)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그들은 강력한 인공지능에 의해 우리의 관심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채굴당하고, 우리가 진짜 원하던 삶의 가치와 목표는 길을 잃는다고 우려한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의 주요 인물인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36)는 스마트폰을 슬롯머신과 비교해 설명한다. 더 재밌는 것을 찾아 스마트폰에 손가락을 대고 위에서 아래로 당기는 소셜 미디어의 ‘새로고침’ 디자인이 슬롯머신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 사진 트리스탄 해리스 제공

이 다큐멘터리에 앞서,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 규모의 마음챙김 콘퍼런스인 ‘위즈덤 2.0’의 설립자인 소렌 고드해머 또한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책 <위즈덤2.0>에서 기술에 대해 “애초에 우리의 일을 돕기 위한 도구였지만, 그 반대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고드해머의 말대로 “기술을 의식적으로 선택해 이용할 줄 알게 되어 상시로 연결돼 사는 지금 세계에서 삶의 운전대를 잡고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에서 12년째 열리는 ‘위즈덤2.0’이 한국 버전으로 열린다. 16·17일 이틀간 서울 노들섬 일대에서 열리는 ‘위즈덤2.0 코리아’에는 기술의 홍수 속에서 인간성을 찾는 법을 말해 온 소렌 고드해머, 트리스탄 해리스 등이 연사로 참여한다. 원래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온라인 콘퍼런스로 열려 화상으로 진행한다. ‘위즈덤2.0코리아’의 첫해 주제는 ‘연결’이다. 이번 행사로 트리스탄 해리스가 국내 관중과 연결되기 전, ESC가 지난 6일과 7일, 화상회의 앱을 통해 그를 먼저 만났다.

일명 ‘실리콘 밸리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트리스탄 해리스는 대학에서 행동경제학, 사회심리학 등을 전공하고 3년간 구글에서 기술 디자이너로 일했다. 자신이 ‘창조’한 기술의 심각한 중독성을 발견한 그는 구글에서 퇴사한 후 비영리단체 ‘센터 포 휴메인 테크놀로지’(Center For Humane Technology·인간적 기술센터)를 설립해 소셜미디어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구글에서 이메일 관련 프로젝트를 하던 중, 사람들이 더 자주, 더 오래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들었다.

“이메일을 통해 업무와 수많은 정보를 받다가 나 스스로 중독됐다. 생각해보니 이메일뿐만 아니라 아이티 기술이 우리를 위해 최선의 방법으로 작동하지 않는 듯했다. 수많은 엔지니어가 슈퍼컴퓨터로 사용자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쥐고 우리의 삶을 조종하고 바꾸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나?

“평균 8시간30분 동안 사용하더라.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사용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의 중독성에 대해 말하는 내가) 그렇다고 위선을 떠는 것은 아니다. 내가 늘 주장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이용하는 자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을 잘 쓰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나는 줌 화상회의를 할 때도, 명상할 때도, 언어를 배울 때도 기술을 사용한다. 다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은 이용하지 않는 편이다. 좋은 의도를 가진 기술이 우리에게 도구로 활용되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봐달라고 하거나 조정 하려 들면 문제가 된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제공

―소셜미디어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현재 미국 대선에서 소셜미디어가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우리 정치 상황은 지금 엉망진창이다. 10년 가까이 소셜 플랫폼이 정치를 망쳐오는 것을 봐왔다. 국경도, 보안시설도 없는 기술의 세계에서 알고리즘을 통해 무언가를 조종한다면 막을 수가 없다. 정치뿐만 아니다. 소셜 플랫폼들은 (우리의 정보를 팔아서)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다. 공급자의 알고리즘을 바꿀 수 없다면 사용자인 우리가 알아차려야 한다.”

―소셜미디어의 폐해를 지적하는 아이티업계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알람이나 유튜브 추천 기능을 꺼라. 에스엔에스 앱을 지워라”라고 말한다.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소셜미디어의 영향권에 있다. 마음 깊숙이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그걸 잊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중독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뉴스, 사내 정보 등에서의 소외는 무시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그는 테드(TED) 강연에서 “정보의 소외는 두려운 일”이며 “(시간이 지날수록)두려움은 더 팽창한다”고 했다. 소설미디어의 문제점을 알아도 선뜻 탈퇴를 못 하는 이유다. 인간은 타인의 인정에 높은 가치를 두는 식으로 진화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기능은 바로 ‘인정받는 것’이란 중독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냥 끌려가게 되어 있다. 정부도 나서야 한다. 구글이나 애플은 사람들이 2년마다 스마트폰을 교체하도록 하고 앱스토어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도 나서야 한다.”

―일찍 소셜미디어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을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유해성을 인지하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담배의 경우, 사람들이 그저 몸에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효과가 없었지만, 담배 회사가 어떻게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담배를 피우고 싶게끔 하였는지 그 의도를 얘기한 후에는 인식이 달라졌다. 페이스북 창립 멤버인 숀 파커 같은 내부자가 소셜미디어의 유해성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201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위즈덤2.0 현장. 사진 마보 제공

―결코 기술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인간적 기술센터’를 통해 ‘인간적 기술’에 대해 알리고 있다. 무엇인가?

“지금 소셜미디어 등을 기반으로 하는 아이티 기술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능력을 지우는 식으로 발달하고 있다. 인간의 뇌가 파충류의 뇌, 중독된 뇌로 변하고 있다. 마음챙김은 우리가 내면에서부터 지혜로운 선택과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 이를테면 자전거 같은 건 마음챙김을 돕는 도구일 수 있다. 현재를 인지하고 자기 삶의 방향성을 찾게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 우리의 가치를 강화하는 것이 ‘인간적인 기술’이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떨어지고 조 바이든이 당선되면 백악관에 입성할 거라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들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앤드루 양이 된다면, 아이티 관련 부서의 장관으로 내정할 거라는 얘기는 들었다. 이후 그런 제안은 없지만 만약 온다면 수락할 것이다. 정치 영역에 들어갔을 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기술 발전으로 생긴 분열이고 그걸 해결하고 싶다.”

“지혜의 섬에 초대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12년째 열리고 있는 최대 규모의 마음챙김 콘퍼런스 ‘위즈덤 2.0’이 한국에서 열린다. 위즈덤2.0은 바쁘게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잘 이용하는 법, 창의와 혁신, 몰입과 명상에 대한 강연을 펼쳐왔다.

16·17일 이틀간 서울 용산구 노들섬 일대에서 열리는 ‘위즈덤2.0 코리아’는 ‘코로나19 이후의 삶: 연결’이라는 주제로, “나와 너, 우리, 사회, 기술, 기업, 환경, 생명, 지구 등 모든 연결은 나의 내면에서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강연자로는 소렌 고드해머(위즈덤2.0 창시자), 트리스탄 해리스(디자인 윤리학자), 최인철(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이수인(교육 스타트업 ‘에누마’ 대표), 제현주(임팩트벤처캐피탈 ‘옐로우독’ 대표), 에드거 칸(사회적기업‘타임뱅크’ 창시자), 차드 멩 탄(구글 명상프로그램 창시자) 등이 참여한다. 이 외에도 국내외 스타트업 대표와 사회 혁신가 등이 참가자들을 만난다. 해외 연사의 강연은 코로나19의 여파로 화상 회의 플랫폼 ‘이벤터스’를 통해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참가 인원을 500명으로 한정했지만 온라인 참가도 가능하다. 위즈덤코리아2.0 누리집을 통해 온라인 클래스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위즈덤2.0을 국내 도입한 유정은 명상 앱 ‘마보’ 대표는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연사들의 강연을 듣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답하기도 하며 지혜를 나누는 장이 마련된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얻어가는 것이 아닌, 행사가 끝난 뒤 아주 작은 실천이나 변화가 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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