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청구서 쏟아 내고 홀대까지.."美 누적된 불만 표출"

정승임 2020. 10. 1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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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
서욱(왼쪽)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 국방부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해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우려에도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어렵게 마주앉은 한미 국방장관이 크게 충돌했다. 방위비 분담 등을 둘러싼 미국의 불만이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 성명에 고스란히 담겨 한미 군 당국간 균열이 전례 없이 노출된 것이다. 특히 서욱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공동 기자회견도 미측 요구로 돌연 취소돼 홀대 논란도 빚어지는 상황이다. 임기 연장 여부가 불투명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누적된 불만을 표출하면서 한국에 대한 청구서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승겸(왼쪽부터) 신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최병혁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이 23일 서울 용산구 한미연합사에서 열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이취임식에서 열병하고 있다. 뉴스1

방위비 증액 못하면 주한미군 철수? ... 12년 만에 빠진 '주한미군 유지조항'

에스퍼 장관은 이날 모두발언에서부터 방위비 증액을 압박했다. “방위비 부담이 미국 납세자들에게 불공평하게 떨어져선 안 된다”며 “우리는 한반도에 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합의에 이를 필요성에 모두 동의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방위비를 올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날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언급마저 빠졌다. 2008년 한미가 '주한 미군을 2만8,500명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합의한 이후 매년 공동성명에 담겼던 '주한미군 유지 조항' 문구가 12년 만에 빠진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경비 가운데 한국의 부담액을 결정하는 제11차 SMA 협상은 지난해 9월 시작됐지만, 현재까지 진전이 없다. 지난 3월 말 현행 분담금(1조389억원)에서 13% 인상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로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5배 인상안’을 제시했었다.

서욱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국방부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 참석하기 위해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국방부 제공

‘전작권 전환’ 멀어지고 ‘무기구매 압박’은 세지고

우리의 최대 관심사였던 전작권 전환은 ‘빈 손’이었다. 서 장관은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해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빈틈 없이 준비하자”고 했지만 에스퍼 장관은 “전작권 전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작권 전환을 위한 조건을 한국이 충족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공동성명에도 “상호 합의된 조건을 충분히 충족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코로나19로 올해 하지 못한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의 구체적 시기도 성명에 담지 못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 훈련은 1단계인 기본운용능력(IOC), 2단계 FOC, 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 (FMC)으로 나뉜다. FOC에 대한 구체적 일정을 정하지 못하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는 물론, 정부가 국정과제 목표로 내세운 ‘조속한 시일 내’ 전환도 불투명해졌다.

미국은 대신 전작권 전환의 조건 달성을 위해선 한국이 미국산 무기를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공동성명에 “에스퍼 장관은 보완능력의 제공을 공약하면서 구체적 소요 능력(목록) 및 (파견) 기간 결정에 있어 한국의 획득계획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명시한 것이다. ‘보완 능력’은 전작권 전환 후에도 한국군이 갖추지 못한 군사역량을 미군이 제공하는 것으로, 정찰능력ㆍ장거리 폭력 능력ㆍ미사일 방어능력을 보완할 미국산 무기를 한국이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서욱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 참석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美, 중국 견제 위해 한국군 동참 압박

미국이 내민 청구서에는 한국군의 반중 전선 동참도 포함됐다. 예컨대 성명에 포함된 “에스퍼 장관이 2016 위기관리 합의각서를 최신화해야할 필요성에 주목했다"는 언급이 중국 견제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해석이다. 연합위기관리 대응지침을 규정한 ‘2016 위기관리 합의각서’에는 위기관리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로 정했는데, 미측은 최근 ‘미국의 유사시’로 확대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유사시’로 범위가 확대될 경우, 남중국해를 비롯한 미국의 군사작전에 한국군을 파병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한미는 이날 성명에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한미일 안보회의를 포함,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했는데, 이 역시 미국의 ‘대중국 견제’ 일환으로 풀이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시설을 살펴볼 당시 모습. 국방부 제공

유엔사 역할ㆍ훈련환경 보장 등 美 누적된 불만도 담겨

한미는 이날 성명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기지의 영구기지화 △유엔군사령부 역할과 위상 강조 △주한미군 훈련 여건 보장 등도 담았다. 미측의 누적된 불만에 대한 일종의 개선사항으로 볼 수 있다.

공동성명에서 ‘성주 기지 사드포대의 안정적 주둔 여건을 마련하기 장기적 계획을 구축하기로 했다’는 대목은 사드가 시민단체의 반대로 임시기지로 머무는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일각에서 “유엔사는 족보가 없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유엔사 위상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에스퍼 장관은 “유엔사가 한반도에서의 정전협정을 이행하고 신뢰구축 조치를 실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고 서 장관 역시 “정전협정과 유엔안보리결의안에 의거 유엔사에 부여된 권한과 책임을 지지한다”고 했다. 한미는 또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훈련 여건이 강력한 연합방위태세 유지에 필수적”이라며 주한미군 훈련 여건 보장을 위해 소통과 협력을 해나가기로 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정상원 특파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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