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집주인, 착한 세입자' 전제가 틀린 임대차3법

유엄식 기자 입력 2020. 10. 17. 11:49 수정 2020. 10. 1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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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임대차3법은 악법 중 악법입니다. 세입자만 선량한 피해자고 집주인이 갑질만 한다고 생각한건지, 대체 왜 이런 법을 만들었나요."

대구에 거주 중인 30대 A씨 얘기다. 그는 임대차3법이 없던 시기에도 세입자와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합의금 350만원 줬는데…관리비 9만원에 소송까지 벌어진 사연
사연은 이렇다. 2018년 4월 실거주 목적으로 산 아파트엔 기존 전세 세입자 B씨가 있었다. B씨의 계약일은 2019년 2월까지였지만 A씨는 사정상 3개월 정도 일찍 집을 비워줄 수 없겠냐고 요청했다.

그러자 B씨는 이사비와 위로금 명목으로 500만원을 요구했다. "계약 기간보다 일찍 나가라고 해서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별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해당 주택의 전셋값은 약 3억원. 주변 시세를 고려해도 요구액이 과도했지만 이삿날이 결정돼 별다른 도리가 없었던 A씨는 결국 350만원에 합의했다.

본격적인 갈등은 이사 후에 촉발됐다. 위로금과 전세 보증금을 모두 받은 B씨가 본인 의무를 지키지 않아서다. 이사 후에 집 상태를 확인하니 문고리, 가스차단기 등이 파손돼 수리비용이 들었다. 현관 키는 분실됐고, 관리비도 정산되지 않았다.

A씨는 B씨가 거주한 기간의 관리비 9만원 정산을 요구했다. 수 차례 연락해도 묵묵부답이었던 B씨는 며칠 후 본인 명의로 해당 주택에 온 택배를 A씨가 돌려주지 않았다며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압박했다.

A씨는 택배를 반송처리했는데 이후 B씨로부터 지속적 협박과 욕설에 시달렸다. "거지같이 배운거 없는거 티낸다"는 조롱까지 들었다. 참다 못한 A씨는 '관리비 9만원 반환' 소송을 결정했다. 승소해서 받을 돈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A씨에겐 B씨 행동에 대한 법적 판단이 더 중요했다.

법원은 B씨에게 관리비 9만원 및 납부 지연에 따른 이자를 지불하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B씨는 아직도 9만원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되레 택배 점유물이탈죄(절도죄) 명목의 거짓 고소장을 작성한 사진을 A씨에 보내는 등 조롱과 협박을 이어간다. A씨는 "이런 사람들이 임대차3법을 무기로 다른 사람들을 더 괴롭힐 생각을 하니 혈압이 오른다"고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교통부·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새만금개발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사례 등 최근 전세대란과 관련한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2년 간 청소 한번 안해"…집안 곳곳 파손하고 모른척한 세입자
5년 전 지방 출장으로 2년간 서울 집을 비워야 했던 50대 C씨는 이 기간 한 30대 신혼부부에 전세를 줬다. C씨는 계약 만료로 부부가 이사한 뒤 집안 내부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거실 바닥과 벽지 곳곳이 훼손되고 싱크대와 화장실에서도 파손 흔적이 많았다. C씨는 "세입자가 2년간 제대로 청소 한 번 안한 것 같다"며 "원상복구 비용을 청구하려고 여러번 연락했지만 아무런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외에도 부동산 카페에선 이른바 '나쁜 세입자'와의 갈등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임대인 사례가 적지 않다. 정부가 임대차3법을 마련하게 된 배경인 '집주인 갑질' 못지 않게 '세입자의 횡포'도 현장에선 빈번하다는 얘기다.

2년 마다 전세금을 올려 세입자를 내쫓거나 보증금을 제 때 못돌려주겠다며 매매를 강권하는 나쁜 집주인도 있지만 수 년간 전세금을 올리지 않는 착한 집주인도 있다.

이처럼 시장은 '나쁜 집주인, 착한 세입자'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등 임대차3법 규정은 대체로 '집주인 갑질'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집주인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당한 세입자가 2년간 해당 주택에 누가 사는지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도 결국은 '제도를 악용하는 나쁜 집주인이 많다'는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세입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임대차3법의 취지엔 동의하나, 이를 위해 정부가 사인간 계약 관계를 '선악' 개념으로 접근해서 해결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앞서 거론된 사례처럼 임대차3법이 없었을 때도 본인 실리만 철저히 따지고, 의무를 회피하는 세입자는 있었다.

현실은 이런데 세입자 권리에만 치중한 법이 유예기간 없이 급하게 시행되다보니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한다. 계약갱신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세입자가 합의금으로 수천만원을 요구한다. 금액 조정이 일선 공인중개소의 새로운 업무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샀는데 갱신권 때문에 입주를 못하는 사례도 있다.

정부는 임대차3법 시행에 따른 임대인과 세입자의 갈등을 중재할 기관을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A씨처럼 법원 판결로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는데 법적 구속력 없는 중재기관이 어떻게 합의점을 찾을지 의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식당에서 열린 제8차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전세난 가중 부작용…임대차3법 피해자 된 경제부총리
임대차3법은 전세 시장을 자극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기존 세입자는 계약갱신권을 행사에 2년간 더 거주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매물이 급격히 줄다보니 새로 집을 구하려는 수요자들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전세 매물로 나온 서울 한 아파트에 동시에 9팀이 줄을 서서 집을 구경하고 제비뽑기로 계약자를 선정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6주 연속 올랐다.

정책을 만든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그는 최근 본인이 소유한 경기도 의왕 아파트를 실거주 매수자에 팔았으나 기존 세입자가 나가겠다는 약속을 번복하면서 계약 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시에 본인이 현재 거주 중인 마포구 아파트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내년 1월까지 집을 비워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졸속 행정으로 도끼로 제 발을 찍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전셋값 불안을 고려한 추가 대책을 고민 중이다. 그런데 시장에선 '무대책이 상책'이란 말이 나온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대책이 나와 혼선이 크고 정책 발표 후 집값은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니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새로 전세집을 찾거나 이번엔 계약을 갱신했지만 2년 뒤 전셋값 급등을 걱정하는 세입자들도 임대차3법 보완 필요성을 제기한다.

"규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전문가와 시장 관계자들의 조언에 정부가 늦었지만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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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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