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왜 쫓았겠어요" 출입명부 관리로 속앓이하는 자영업자들

이은기 2020. 10. 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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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처음 손님을 거부한 A씨의 하소연
"현장 갈등의 책임을 업주에게만 떠넘겨선 안 돼"
서울시 내 카페에서 작성된 수기 출입명부. 사진 속 카페는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손님 안 받겠습니다."

12일 충남에서 A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가 출입명부 작성을 거부하는 손님 2명에게 죄송하다며 한 말이다. 출입명부 작성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던 손님들은 김씨가 퇴장을 요청하자 소비자고발센터에 전화하겠다며 윽박질렀다. 그리고는 가게 밖에서 한참을 전화한 뒤 떠났다.

김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날 겪은 일에 관해 글을 썼고 많은 누리꾼들은 '하라면 좀 하지 왜들 그러는지, 힘내세요, 좀 적어주면 안 되나?'라며 김씨의 사연에 공감을 보냈다. 손님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시기, 김씨는 어떤 마음으로 손님을 거부한 걸까. 김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 휴대전화를 꺼내 QR코드를 찍거나 수기로 명부를 작성하는 건 어느새 익숙한 일이 되었다. 지방자치단체 별로 다중이용시설인 일반 음식점에서 의무적으로 전자출입 명부를 설치하거나 손으로 적는 명부를 준비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김씨도 8월 24일 군청에서 공문을 받은 후 출입명부 관리를 시작했다.


수기 명부 판을 던지는 손님도 있어..."왜 우리한테 이러냐"

게티이미지뱅크

출입명부 작성 안내는 되도록 직원이 아닌 김씨와 김씨의 아내가 담당한다. 개인 정보가 민감한 영역이다 보니 관리에 신경을 쓰기 위해서다. 전자출입 명부를 안내하지만 지역의 특성 상 어르신 고객이 많아 전자출입 명부 사용이 원활하지 않다.

출입명부 작성을 거부하는 손님을 내보낸 바로 그 날, 또 다른 손님은 출입명부 작성을 거부하며 김씨의 아내 옆으로 명부판을 던졌다. 결국 김씨의 아내는 "우리한테 남는 것도 없고 방역의 의무 때문에 하고 있는데 왜 우리한테 이렇게 (함부로) 하냐"며 눈물을 쏟았다.

출입명부 작성이 의무화되면서 김씨는 이전보다 일이 많아졌고 손님과 실랑이가 늘었다. 김씨는 "돈 내고 우리 가게 와서 밥 사먹겠다고 하는 손님인데 제가 이유 없이 왜 쫓아내겠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중학생 때부터 엄마를 도와 17년 동안 식당에서 일했다. 무례하게 구는 손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직원에게 성희롱했던 취객을 제외하고 손님을 쫓아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언젠가 손님들이 계산대 앞에서 서로 자기 돈을 받으라며 옥신각신한 뒤, "내 돈은 더러워서 안 받냐"며 김씨의 얼굴에 만 원짜리 지폐 수십 장을 던진 적도 있다. 김씨는 "그때도 뒤에서 울었지만 버틸 수 있었는데, 이건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시니까"라고 말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현재 출입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일반 음식점에서 명부를 작성하지 않는 사람은 포장을 제외하곤 시설 이용이 불가능하다.


김씨가 출입명부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

서울의 한 카페에서 직원이 출입 손님들의 QR코드 또는 수기를 통해 전자출입명부 기록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카페는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대부분의 손님들은 출입명부를 작성한다. 김씨는 "100명이라면 (명부를 작성하지 않는 사람이) 5명 정도 돼요. 그런데 그들이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 강력해요"라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씨 입장에서 손님과의 갈등은 피하고 싶은 일이다. 김씨는 "손님과 살짝 실랑이만 벌여도 그 손님이 다시 (식당에) 찾아 올 확률이 낮아져요"라고 설명했다. 명부를 작성하지 않는 손님과 갈등 때문에 다른 손님에게 식당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더군다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김씨의 식당 매출이 크게 줄었다. 김씨의 식당이 있는 지역에서 처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다음 날, 평소 120석을 꽉 채우던 식당엔 6명의 손님뿐이었다. 처참했다. 현재도 거리두기를 위해 30석을 비워두고 운영하지만 빈자리가 많다. 김씨는 잠시 가게를 닫아둘까 고민했지만, 코로나19 확산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쉽사리 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김씨는 궁여지책으로 9, 10명이던 직원 수를 절반가까이 줄였고,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매출액이 20% 이상 감소했다는 걸 증명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긴급 생활안정자금'을 받았다.

매출을 위해서라도 대충 넘어갈법 하지만 김씨는 출입명부 작성을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안 쓰려고 하는 손님을 열심히 설득한다.

김씨는 "누군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걸 막진 못하더라도 이런 작은 지역 사회에서는 전파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용한 업소에서 나도 모르게 감염돼서 나가면 다 각자 집으로 가시니까 가족을 위해서라도 꼭 참여해 주시면 좋겠어요"라고 호소했다.


지자체 마다 다른 방역 지침...손님들 방역 지침 내용 파악도 제각각

수기 출입명부. 오른쪽에 '외 1' 이라고 적혀 있다. 방역 지침에 따르면 출입한 개인은 모두 각각 출입명부를 기록해야 한다. 연합뉴스

방역 지침은 방역 당국의 '분권형 방역' 기조에 따라 지자체별로 다르다. 지자체별로 감염 확산 추이에 따라 방역 조치를 조정해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조정하면서 일반음식점(면적 150㎡ 이상)의 출입명부 작성 의무 부과 지역을 수도권으로 한정했지만, 충남은 자체적으로 일반음식점(면적 150㎡ 이상)의 출입명부 작성 의무를 유지했다.

김씨도 "생필품 매장에서는 안 하고, 소규모 식당에서는 또 안 하고, 서울은 하는데 지방은 안 하다고 하고, 여기가 지방이라 상대적으로 명부 작성을 강하게 거부하시는 게 이해는 가요"라며 각기 다른 방역지침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씨는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조정 첫날, 손님들이 헷갈릴까 봐 출입구에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도 출입자 명부 유지. 군 지침'이라고 적어 붙여두었다.

방문한 인원 모두가 출입명부를 작성하는 게 아니라 '~외 0명' 식의 표기로 갈음하는 것도 김씨과 손님과 갈등하는 주요 지점이다.

김씨는 "저도 손님으로 다른 식당 가보면 '~외 0명' 식으로 출입명부 관리가 제대로 안 돼 있는 곳이 많아요"라며 "다른 손님들도 그걸 겪고 나서 여기는 왜 따로 써야 하냐고, 왜 이렇게 개인 정보를 많이 수집하냐고 하시죠. 그러면 진짜 할 말이 없거든요"라고 안타까워했다.


과태료 부과 전 방역 당국과 지자체가 적극 홍보 나서야

손님들이 전자출입명부 기록을 위해 QR코드를 인식한 뒤 카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속 카페는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김씨의 식당이 있는 군의 코로나TF팀 관계자는 15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지침상 1명씩 쓰는 게 맞다"며 "명부를 쓰는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접촉자)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서고, '~외 0명' 식으로 쓴다면 검사가 늦어질 경우 함께 식사했던 사람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고 답했다.

해당 군 내 일반음식점(면적 150㎡ 이상)의 수기명부를 관리ㆍ단속하는 위생팀 관계자는 "업주 측에 어려워도 손님에게 개개인으로 쓰라고 안내하도록 지도하고 있다"면서도 "전체를 대상으로 홍보하는 건 아니고 업주를 통해 전달하게끔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지적대로 지역별 방역 지침이 다르고, 방역 지침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제각각이다 보니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역 지침 전달 책임을 업주에게만 맡기면 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 해결의 책임 역시 업주가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지자체의 보다 적극적인 방역 수칙 홍보가 필요하다.

개정된 감염병예방법 시행령에 따라 다음 달 13일부터 방역수칙을 위반한 시설의 업주에게는 최대 300만 원, 이용자에게는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김씨의 경우처럼 최근 음식점, 술집 등에서 방역수칙 이행을 요구하다 실랑이가 일어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3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선 QR 코드 입력과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직원에게 A씨가 커피를 집어 던졌다. 12일 새벽 B씨는 술집 입구에서 QR코드와 신분증 검사를 하던 직원에게 출입을 저지당하자 직원을 폭행했다.

김씨는 다시 한번 "방역을 위해서라도 출입 명부를 꼭 작성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이건 김씨와 같은 업주만의 몫이 아니다.

이은기 인턴기자 mate5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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