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비판 보고, 위험인물 아닌 청년이 범행 '테러의 개인화'
'무함마드 풍자' 만평 수업 뒤 학부모가 고소·신변 위협 느껴
범인은 체첸계 18세 남성..시민들 "표현의 자유 수호" 연대
[경향신문]
“21세기 프랑스에서 이런 일을 목격하게 되다니 끔찍합니다. 교사가 자신의 일을 했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목이 베였습니다.”
프랑스 중등교사노조 위원장 장 레미 지라드는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중등학교 역사교사 사뮈엘 파티(47) 살인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파티는 수업시간에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만평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16일 오후 5시쯤 파리 북부 콩플랑 생토노린의 한 거리에서 참수당했다. 지난달 25일 샤를리 에브도 옛 사무실 인근에서 한 남성이 흉기로 난동을 벌이는 등 지난달 초 파리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 관련 재판이 시작된 뒤 샤를리 에브도 만평을 빌미로 한 흉기테러만 벌써 두 번째 발생했다.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는 파티는 지난 5일 사회 수업시간에 언론 자유에 대해 말하며 무함마드 만평을 보여줬다. 다만 만평을 보여주기 전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학생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잠시 나가도 좋다고 설명했다. 헐벗은 무함마드를 그린 샤를리 에브도의 2006년 만평은 게재 후 이슬람의 반발을 샀다. 2015년에는 이슬람계 이민자 남성 두 명이 이 만평을 비판하며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고, 이 사건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 촉발됐다.
수업 후 한 여학생의 아버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무함마드가 모욕당했다”고 주장했다. 파티를 ‘깡패(voyou)’라고 부르며 학교에 단체로 항의하자고 촉구했다. 파티의 신상도 공개하고 학교에 해임을 요구하며 경찰 고소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파티는 “해당 학생은 당시 수업에 있지도 않았다”며 학부모를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 이후 학교로 몇 차례 신변을 위협하는 전화가 왔고, 파티는 평소 가던 숲길 대신 주택가로 퇴근했다.
범인은 모스크바 출신의 체첸계 남성 18세 압둘라크 안조로프로 확인됐다. 어릴 때 부모와 함께 난민 신분으로 프랑스에 왔고 지난 3월에야 조건부 거주 허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해당 교사가 누구인지 물었고, 파티가 퇴근하자 뒤따라가서 범행을 저질렀다. 범인은 범행 직후 참수된 시신을 트위터에 올렸다.
특히 이번 사건은 테러단체의 조직범죄가 아니라 한 개인이 SNS에 피해자 신상을 공개하고 그것을 본 제3자가 단독으로 저지른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 충격을 주고 있다. 특정 단체의 지원이나 지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도발적 범행이 발생할 경우 미리 움직임을 포착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범인은 경범죄로 한 차례 기소된 것 외에 강력사건 전과는 없었고, 위험인물 명단에도 없던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프랑스는 무슬림이 500만명으로 서유럽에서 가장 많다. 앞으로도 이 같은 돌출 범행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 중등교사노조는 17일 “슬프지만 위축되지 않겠다”며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더 많이 가르칠 것이며 학생들에게 논쟁적인 주제를 알리고 더 다양한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장려할 것”이라고 했다.
파티가 근무하던 학교 앞에는 추모의 의미를 담은 꽃다발이 쌓였다. SNS에서는 파티에게 연대한다는 의미를 담은 해시태그 운동 ‘#JeSuisSamuel(나도 사뮈엘이다) #JeSuisProf(나도 교사다)’가 이어지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이번 사건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슬람 극단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정교분리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12월 내놓겠다고 선언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원칙을 적용해 히잡을 금지하는 등 이슬람 과격 세력에 강경하게 대응해왔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공격”이라고 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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