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요양병원 식사 관리 부실..치료 아닌 장사했나

전현우 2020. 10. 1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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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인력을 줄여 인건비를 줄이고, 이렇게 생긴 환자 돌봄 공백을 환자에게 약을 투약하면서 메우고 있다는 보도 뒤 취재진에게 관련 제보가 잇따랐습니다. 그 중에는 요양병원에서 식비를 줄여 수익을 높인다는 제보들이 있었습니다. 요양병원환자의 경우 장기적으로 입원해 있기 때문에 식사는 환자 상태에 영향을 크게 줍니다. 제보를 근거로 취재진은 요양병원 식단의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연관기사] 코로나 19 요양병원 ‘감시받지 못한 약물’

한 공공 요양병원의 환자 식단 모습


■ 영양사, "영리 없다면 저 정도 나가면 안 되는데"

157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뒤 민간업체에 위탁 운영을 맡긴 한 공공요양병원의 식단을 살펴봤습니다. 국과 반찬 몇 가지로 이뤄졌고 어떨 때는 국에 건더기가 보이지 않는 식단도 보입니다. 해당 식단을 본 보건소 영양사는 "영리가 없다면 저 정도 나가면 안 되는 건데… (실제) 금액 자체는 그렇게 높지는 않은 거 같다"라며 "뭔가 이렇게 먹을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거를 주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먹거리에 대해서 눈이 높아졌으니 그에 맞는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 환자 식비 190여만 원인데 식자재 비용은 70여만 원

왜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요? 해당 요양병원의 일반식 식비는 5790원, 치료식은 그보다 높은 6750원입니다. 이곳의 경우 환자 70명이 식사를 합니다. 일반식 식비를 기준으로 해도 120만 원 넘는 식비를 병원 측은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해당 공공 요양병원의 식자재비 영수증을 입수해보니 실제 식자재 구입비는 하루 52만여 원. 쌀값 등을 고려해도 60만 원 안팎입니다.

조리가 필요 없는 경관식의 경우는 한 끼에 4790원. 52명의 환자가 식사하고 있는데 해당 제품의 실제가는 1천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루에 70여만 원 넘게 경관식비로 받지만 10여만 원만 제품 구입에 사용합니다. 식비와 경관식을 함께 고려할 때 해당 요양병원은 환자 식사 값으로 모두 190여만 원을 받아 그중 70여만 원 정도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총 식사 값 중 40%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인건비와 각종 비용을 빼더라도 환자 식비의 상당 부분이 병원 수익으로 돌아간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기자가 요양병원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에 들어가고 있다.


■ "비용 절감해야 하니까 육수 대신 다시마 쓰세요"

식자재 납품업체 관계자는 많은 요양병원이 식비에서 수익을 남기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병원 원장님 같은 경우에는 식대나 이런 쪽에서 최소 비용을 제일 많이 줄일 수 있는 게 식재 쪽이니까 많이 줄여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물가가 오르든 말든 거기는 딱 정해져요. 1200만 원을 넘지 않는다"라며 "아무리 단가가 많이 올라가고 내려가도 우리는 1200선에서 넘지 않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그는 "** 병원의 선생님(영양사)이 아침에 오면 육수를 뽑는 게 일이었대요.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비용절감 해야 되니까 그거 없이 다시마만 쓰세요"라며 요양병원 실태를 털어놨습니다.

해당 요양병원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관할 보건소


■ 보건소, "제재 못 해…신경 써달라 부탁할 뿐"

관리 책임이 있는 관할 보건소는 "식품 위생 등을 관리할 뿐 식재료 지출 등 운영을 감독할 규정은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보건소 관계자는 "관여할 수 있는 저희들도 내용이 없는 거고, 의료법에도 식단에 관련돼서 내용이 없다"라면서 처음 듣는 얘기라고 답변했습니다. 관할 보건소는 해당 요양병원의 식단이 부실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개선 권고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제재 등을 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식단에 대해) 관여를 못 하니까 우리(보건소)도 그냥 좀 신경 써달라고 부탁해야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요양병원 측은 "부실한 식단이 아니다"라면서 "보건소에 세부 회계를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밥값 어떻게 지출되는지 가족한테 밝혀야"

현정희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요양병원의 경우 장기적으로 입원해 있으면서 하루 3끼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환자 상태가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다"면서 식사의 질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관할 보건소나 지방 정부에서 (요양병원 식단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건보 공단에서 받는 식비와 본인부담금을 합친 식비가 총 얼마인데 이 중에 식재료비로 얼마를 쓰고 있고, 인건비로 얼마로 쓰고 있는지를 가족들한테 밝혀주는 것도 방법"이라며 식단 비용을 투명화한다면 요양병원 부실 식단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밝혔습니다.

■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요양병원 문제는 당면과제

코로나19로 환자 가족들의 직접면회 금지가 길어지면서 노인 환자 치료의 기본이 되는 식단 관리의 구멍이 커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요양병원 식비는 환자 부담 50%, 나머지 50%는 건강보험으로 지원됩니다. 건보 재정이 그대로 요양병원 수익이 되지 않도록 식비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니다. 통계청의 '2020 고령자 통계'는 우리나라가 5년 뒤인 2025년부터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2047년에는 전체 가구 절반이 고령자 가구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요양병원 식비 문제가 먼 이야기가 아닌 당면한 과제인 이유입니다.

전현우 기자 (kbs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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