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위기에 허리띠 매는데.."소비 늘려라" 거꾸로 가는 文

조현숙 2020. 10. 19. 18:4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경제 반등의 골든타임이다. 그동안 방역 때문에 아껴뒀던 (소비) 정책도 곧바로 시행을 준비하고 착수해 주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비 살리기 총력전을 주문했다. 19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방역 상황을 봐가면서 소비쿠폰 지급을 재개하고 소비 진작을 위한 다양한 사업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주부터 시행한 방역 완화 조치가 소비와 경제 활력을 높이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중단했던 8대 소비쿠폰과 외식ㆍ관광ㆍ문화 등 분야별 행사, 할인 지원 정책을 서둘러 재개하라는 주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소비를 통한 경기 진작을 강조한 것은, 최근 경기 지표가 빠르게 악화한 탓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과거와 달리 코로나 위기는 취업 유발 효과가 높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타격을 주고 있어 고용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소비 등 내수 회복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비 확대 지원→내수 회복→고용 증가’ 순서를 서둘러 밟아나가야 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하지만 정부의 상황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로나19가 확산하다가 잦아들었던 올 6~8월과 지금 경제 여건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다. 당시엔 코로나19 재확산, 장기화에 대한 공포가 지금보다는 덜했다. 가구당 40만~100만원씩 지급된 전 국민 1차 재난지원금도 있었다. ‘한우ㆍ안경 지원금’이란 비아냥이 있긴 했지만 소비를 단기적으로 살리는 데는 효과를 봤다.

지금은 다르다. 8월 광복절 연휴를 거치며 코로나19가 언제든 재확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람들이 쉽게 대면 소비를 늘리지 못하는 이유다. 백신ㆍ치료제 개발이 늦어지며 코로나19 장기화에 대한 공포도 더 커졌다. 2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긴 했지만 손님이 사라진 소상공인, 매출이 급감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와 프리랜서, 일자리가 없는 청년층, 실직자 등이 주요 대상이다. 생계 지원 성격이 커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긴 한계가 있다.

고용 위기는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9월 39만2000개 일자리가 사라졌다(전년 대비). 코로나19가 1차 확산했던 5월 전 상황으로 돌아갔다. 임시ㆍ일용직과 자영업자 수는 계속 급감 중이고, 특히 상용 근로자 수 증가 폭이 9만6000명에 그쳤다. 매년 9월을 놓고 봤을 때 1999년(-17만 명) 이후 최저다. 코로나19발(發) 고용 위기가 임시ㆍ일용직, 자영업자를 거쳐 상대적으로 안전한 정규 일자리로까지 번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취업자 증감·실업자 수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여기에 거듭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 실책으로 전·월세난까지 겹쳤다. 일자리도 불안한 데 당장 살 집 마련도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를 늘리라”는 정부 구호가 통할 리 없다.

이런 분위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9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79.4로,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 3월(78.4) 수준으로 고꾸라졌다. 100보다 낮을수록 소비심리가 나쁘다는 의미다. 한 달 만에 8.8포인트 추락했는데, 낙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소비지출전망(-2.6포인트)다. 외식ㆍ여행비는 물론 의료ㆍ보건비까지 소비를 앞으로 줄여나가겠다는 응답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위기를 절감해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가계 분위기와 거꾸로 가는 대통령 메시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소비 진작책을 쓰면 확진자 수도 함께 늘었던 경험이 있다”며 “(소비 진작은) 여전히 리스크(위험)가 있는 정책으로 코로나19 추이를 봐가면서 정책을 펴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내수를 급하게 살리려는 지원책이 오히려 민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수 지원책을 계기로 해당 사업장에서 고용과 고정비 지출을 늘릴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소비쿠폰 중단과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민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가 소비 진작만 생각하고 이런 불확실성은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크리스마스, 연말 연휴에 겨울철 추위까지 겹친 상황에서 섣불리 추진한 정부의 소비 진작 대책이 8월처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결과적으로 방역 우선이 경제에도 득이라는 주장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7월 말, 8월 초 상황과 지금이 데자뷔처럼 느껴진다”며 “7월 말까진 일일 확진자 수가 50명 미만으로 통제되다가 7월 말 임시 공휴일에 쿠폰 등 일시에 풀리면서 위험 요인으로 작용해 8월 확진자 세 자릿수를 찍었다”고 짚었다. 이어 김 교수는 “지금은 7월 말보다 일일 확진자 수가 많고, 여름이었던 8월 초보다 날씨가 쌀쌀해져 바이러스 생존 기간도 길다”며 “(소비를 진작하면 날씨 탓에) 실내에 더 몰려 방역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ㆍ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