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노벨상 수상자 논문 조작설에 과학계 떠들썩..한국인 연구자 포함 '파장'

윤신영 기자 2020. 10. 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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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결과 지상 연구 문화가 낳은 부작용" 지적
그레그 서멘자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와 일본 교토대 의대 교수가 함께 2001년 쓴 '생물화학저널'의 논문 그림이다. 단백질의 존재와 양을 조사한 웨스턴블롯 데이터 일부로, 화살표와 사각형으로 표시한 이미지가 모두 같다. 같은 이미지 가운데 맨 왼쪽 이미지는 잘라 붙인 듯한 흔적도 보인다. 논문 부정 제보 사이트 펍피어의 제보자는 이 논문의 그림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펍피어 페이지 캡쳐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의 최근 논문 여러 편에서 논문 데이터 조작을 의심하게 하는 흔적이 다수 발견돼 생명과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의혹이 제기된 논문 수만 30편이 넘는데다 한국인 연구자가 주도한 논문도 여러 편 포함돼 있어 국내에서도 파장이 예상된다.

19일 논문부정 감시 정보공유 사이트 ‘펍피어’에 따르면, 그레그 서멘자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가 참여한 논문 중 30여 편에서 그림 조작 등 데이터를 부적절하게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서멘자 교수는 저산소 환경에서 세포가 저산소 상황을 인지해 적혈구를 만들게 하는 신호 단백질(EPO)을 만드는 과정을 밝혀 노벨상을 받았다. 특히 저산소 상황에서 이들 유전자에서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시작부위(프로모터)에 존재하는 저산소반응인자(HRE)를 찾고 여기에 결합하는 단백질인 HIF를 밝혔다. 서멘자 교수는 최근까지도 저산소증과 HIF 관련 연구에 다수 참여하며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공동연구를 한 논문과 자신이 교신저자로 참여한 논문 가운데 비교적 최근 논문 다수에서 데이터 조작이 의심되는 부분이 발견됐다. 제보된 가장 가장 오래된 논문은 2001년에 발표됐고, 가장 최근 발표된 논문은 2018년에 발표된 논문이었다. 

논문에서 문제가 된 데이터는 대부분 단백질의 발현 여부를 알거나 양을 측정할 때 쓰는 ‘웨스턴블롯’의 데이터 이미지다. 젤에 단백질을 넣고 전기를 걸면 단백질의 크기에 따라 이동 거리가 변하는데, 이를 통해 원하는 단백질의 발현 여부와 양을 가늠한다. 

서멘자 교수팀의 논문 다수에서는 이 데이터를 복제해 데이터가 없는 다른 곳에 그대로 붙이거나, 이미지를 흐릿하게 바꾸거나 뒤집는 등 의도를 갖고 다른 데이터처럼 보이게 손을 댄 듯한 사례가 여럿 발견됐다. 예를 들어 2015년 ‘플로스원’이나 2006년 ‘세포 생리학’지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일부 웨스턴블롯에서 다른 곳에서 찍은 웨스턴블롯 결과를 칼로 자르듯 잘라 붙인 듯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웨스턴블롯 결과를 지운 사례도 있다.

2019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그레그 세먼자. 노벨위원회

2009년 ‘신경과학저널’에 발표한 논문 등 일부는 현미경 영상을 복사해 사용한 의혹을 받는다. 이달 초 가장 먼저 제보가 이뤄진 2016년 ‘온코타깃’지 논문의 현미경 영상 데이터 복사 의혹에 대해서는 논문 교신저자 중 한 명인 아크리트 소디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가 “의도치 않은 실수였다”며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오류에 사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작 의혹이 제기된 논문 가운데에는 한국인 연구자가 제1저자로 연구를 주도한 논문도 있다. 김정환 미국 댈러스대 교수가 2006년 존스홉킨스대 의대에 재직할 때 제1저자로 참여한 ‘셀 메타볼리즘’ 논문은 웨스턴블롯 데이터를 흐리게 하거나 복사해 다른 데 붙여넣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2009년 당시 서멘자 교수 연구실에서 근무하던 이강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한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논문 역시 웨스턴블롯 데이터 일부를 복사 및 붙여넣기를 통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가장 많은 제보가 접수된 논문 역시 한국 연구팀이 주도한 논문이다. 백성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이세웅 호주 퀸즐랜드대 의학연구소 교수(당시 서울대 소속)가 각각 교신저자와 1저자로 참여한 ‘몰레큘러 셀’ 지 발표 논문은 6개 조작 가능성이 제기됐다. 저산소증 환경에서 렙틴이라는 단백질이 메틸화되는 과정을 밝힌 이 논문에서는 특히 5번 그림에서 집중적으로 웨스턴블롯 결과 그림을 복사해 붙이거나 흐릿하게 처리한 흔적이 발견됐고(아래 그림) 2번 그림에서도 한 개의 조작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그 외에 1저자가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인 연구자가 2저자로 참여한 2009년 신경과학저널 논문 등이 있다.

서멘자 교수가 참여한 논문 가운데 한국 연구팀이 주도한 논문 중 하나의 그림 일부다. 역시 그림 일부분이 복사돼 다른 영역에 붙어 있다. 펍피어 사이트 캡쳐

아직은 제보가 나온 상황으로 구체적인 조작 여부는 향후 학술지나 기관의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명과학 연구현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실험이 이뤄지며 데이터를 논문화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혼동해 실수를 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번 일이 실수일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 실수라고 밝힌 존스홉킨스 의대 논문의 사례가 그 예다. 하지만 이런 혼용의 빈도가 잦다면 단순히 실수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생화학자인 남궁석 SLMS 대표는 "빈도가 잦거나 원본 그림에 블러(흐릿하게 하는 기술) 등을 처리한 경우 등은 단순히 실수라고 보기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국내 대학의 한 생명과학자는 이번 논란에 대해 “서멘자 교수의 주요 업적인 HIF-1a 발견 공로는 문제가 없겠지만, 최근 연구에서 공동연구자의 연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는 연구자로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논문과 관련한 연구자만 비판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또다른 생명과학자는 "이번 경우를 보면 서멘자 교수가 주저자가 아니라 단순히 공동연구로 참여한 논문까지 다수 제보가 됐다"라며 "아무래도 서멘자 교수가 표적이 된 듯 한데, 아무리 대가라도 이런 식으로 파고들면 이런 문제는 많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이미지 데이터 조작은 잘못한 일이지만, 데이터 샘플 취사선택 등 이미지 조작보다 찾기 어려운 다른 방식의 조작도 비일비재한 만큼 이번 일은 빙상의 일각일 뿐"이라며 "이런 넓은 의미의 조작을 포함하면 국내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석 대표는 또다른 관점에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부정이 많이 나오는 연구 문화나 환경을 살펴봐야 한다"라며 "결과가 안 나오면 추궁을 당하거나 심지어 원하는 결과를 정해놓고 '스토리'에 맞는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분위기에서는 연구부정 압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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