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로 복원된 경복궁 자경전 꽃담..구멍난 '장수 기원' 문구

안다영 2020. 10. 1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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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경전은 조선 말 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왕후 조 대비가 거처했던 전각으로, 보물 제80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자경전 사방을 돌아가며 담장이 둘러 있는데, 일부 구간에서는 그림과 글자가 새겨진 '꽃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경전 꽃담에 그려진 꽃 그림과 글자 상당수가 '엉터리'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문화재 훼손 위험이 있다는 얘긴데, 가운데 빠진 글자 '만세'와 불수감 그림을 다시 복원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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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경전은 조선 말 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왕후 조 대비가 거처했던 전각으로, 보물 제80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자경전 사방을 돌아가며 담장이 둘러 있는데, 일부 구간에서는 그림과 글자가 새겨진 ‘꽃담’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북쪽 담장 안쪽에 있는 십장생 굴뚝 꽃담은 보물 제810호로 지정될 만큼 유명합니다.

이 십장생 굴뚝과 함께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끄는 게 ‘자경전 꽃담’이라 불리는 서쪽 외벽 담장입니다. 그런데 자경전 꽃담에 그려진 꽃 그림과 글자 상당수가 ‘엉터리’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과연 어떤 오류일까요?

꽃담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찍은 유리건판 흑백사진입니다. 당시 자경전 꽃담을 찍은 사진을 보면 그림은 모두 아홉 폭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덟 폭만 남아 있습니다. ‘불수감’을 그린 꽃 그림 하나가 사라진 겁니다.

왼쪽. 꽃담 원형 /오른쪽. 현재 꽃담 모습 (출처:e뮤지엄)


꽃담에는 그림 옆에 옛 한자 서체로 된 글자도 하나씩 새겨져 있는데, 현재 꽃담의 모습을 보면 ‘낙(樂) 강(彊)’, ‘만(萬)년(年)장(張)춘(春)’이라는 글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차례로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낙강’과 ‘만년장춘’ 사이 가운데 자리는 비었습니다. 옛 사진과 비교해보니, 현재는 없는 불수감 그림 양쪽에 ‘만(萬)’자와 ‘세(歲)’자가 있었던 게 확인됩니다. 불수감 그림과 함께 글자 ‘만세’란 글자도 지워진 겁니다.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사라진 ‘만(萬)’', 불수감, 미상 문양, ‘세(歲)’(출처:e뮤지엄)


사라진 글자들을 원래 자리에 채워넣으면 ’낙강만세만년장춘‘. 즐겁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오래도록 봄날과 같으란 뜻으로 건강과 장수를 기원한 축원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만세‘ 글자가 없어지면서 원래 의미를 살리지 못한 채 해석이 어려운 엉뚱한 문구가 돼 버렸습니다.

개별 글자와 그림의 오류도 확인됩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여섯 글자 중 절반은 획이 잘못됐습니다. ’만년장춘‘의 ’만萬‘자를 보면 초두(艹)와 가운데 ’전田‘이 원형과 다르게 새겨져 있습니다. 또 ’년年‘자는 획이 하나 빠졌고, ’장張‘자는 오른쪽 아래 획이 잘못돼 있습니다.

왼쪽. ’장‘(張)자 원형 /오른쪽. 잘못 복원된 ’장(張)‘자(출처:e뮤지엄)


그림은 석류 꽃의 경우 꽃봉오리가 원형과 다르게 그려졌고, 국화와 나비 그림은 상당 부분이 엉성하게 표현돼 있는 등 남아 있는 꽃 그림 8점 중 3점에서 문제가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엉터리‘ 복원이 언제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려주는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문화재청은 국가기록원 자료를 살펴봐도 1960년대 이후 자경전 꽃담에 대한 보수나 수리 기록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나 6·25전쟁을 전후로 어느 시점에 복원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문화재 당국이 엉터리 복원을 주도한 게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해명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 장기간 방치한 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문화재청은 원형 복원이 중요하긴 하지만, 수리하게 되면 최초의 조성 당시 꽃문양 등이 대부분 소실될 우려가 있어 보수를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문화재 훼손 위험이 있다는 얘긴데, 가운데 빠진 글자 ’만세‘와 불수감 그림을 다시 복원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적어도 장수를 기원하고자 쓴 문구의 글자 수를 제대로 맞춰서 없는 글자를 채워넣는 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입니다. 경복궁을 ’제대로‘ 복원하겠다면 말이죠. 우리 국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한자 문화권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가 우스갯거리로 전락해선 안 되니까요.

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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