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외롭게 태어나지 않았다

윤신영 기자 2020. 10. 1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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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경희대 교수팀, 자외선 내뿜는 무거운 별 옆에서 탄생 추정
원시 태양(원반 가운데)과 원시 태양계 원반의 모형이다. 원시 태양이 방출하는 자외선에 의해 원시 태양계 원반인 태양성운의 산소동위원소 함량이 변화할 수 있다. 두 개의 현미경 이미지는 이 연구에서 분석한 칼륨-알루미늄 함유물(CAI)의 후방산란 전자 이미지다. NASA, 애리조나주립대, 이정은 교수 제공

태양이 태어나던 아주 초기 순간에 태양은 아직 물질 분자가 마치 뭉개구름처럼 뭉쳐 있던 '분자구름' 상태였다. 국내 연구자를 포함한 국제 연구팀이 이 분자구름이 주변의 무거운 별이 내뿜는 강한 자외선을 받으며 내부 물질의 함량에 큰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태양이 홀로 태어난 게 아니라 별이 무리지어 모여 있는 '성단' 안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결과다. 태양계 탄생 초기 시나리오를 더 정교하게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이정은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와 미국 하와이대, 애리조나대, 덴마크 코펜하겐대 공동연구팀은 태양계 초기에 만들어진 운석 속에 포함된 비휘발성 고체 입자 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 태양이 형성 초기 단계인 ‘분자구름’ 상태에서 강한 자외선에 노출됐으며, 따라서 태양이 탄생할 때 주변에 자외선을 내뿜는 무거운 별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6일자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태양에 포함된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이 지구, 화성, 달, 운석, 소행성 등에 포함된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과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동위원소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 가운데 원소의 종류를 결정하는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달라 질량 등 일부 특성이 다른 원소다. 산소 동위원소는 원자 무게에 따라 가벼운 O-16과 중간 무게인 O-17, 무거운 O-18 등 세 종류가 있다.

2001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관측선 ‘제네시스’가 태양이 내뿜는 물질(태양풍)을 채취해 원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태양은 가벼운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지구와 달, 화성, 소행성 등 암석형 천체의 암석 물질에 포함된 산소의 동위원소는 O-17이나 O-18 등 무거운 동위원소의 함량이 태양보다 높다. 

천문학계에서는 그 이유가 자외선이 일산화탄소를 분해할 때 무거운 O-17이나 O-18로 이뤄진 무거운 일산화탄소를 더 잘 분해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 왔다. 태양계 초기에 자외선의 영향으로 무거운 산소 동위원소가 더 많이 생겼고 이것을 재료로 삼아 행성과 운석이 만들어졌기에 현재의 지구와 행성, 운석, 달에 무거운 O-17 O-18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정은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는 운석 연구를 통해 태양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체 입자를 분석하고 태양계 형성 매우 초기에 자외선의 영향을 받은 증거를 발견했다. 이는 자외선 조사 시기가 분자구름 단계임을 밝히는 증거다. 경희대 제공

하지만 이런 자외선 발생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태양계의 물질이 아직 분자 상태의 구름(분자구름)일 때라는 가설과, 중력에 의해 물질이 모여들어 수축해 원반이 만들어진 ‘태양성운’ 상태일 때라는 두 가지 가설이 대립했다.

연구팀은 어느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태양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분을 분석했다. 석질 운석의 일종으로 녹거나 분화 과정을 통해 변화를 겪지 않은 운석인 ‘콘드라이트 운석’에는 쌀알처럼 부착된 우주 먼지가 있는데, 이 안에 태양계에서 가장 오래된 비휘발성 고체 입자인 칼슘-알루미늄 함유물(CAI)이 들어 있다. 연구팀은 이 물질의 산소 동위원소를 질량분석기와 전자현미경 등으로 분석해 CAI의 나이와 산소 동위원호 함량 사이의 관계를 알아냈다.

연구 결과 ‘분자구름’ 상태의 원시 태양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지 약 1만~2만 년 사이에 CAI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 때 CAI 속 산소 동위원호 함량 변화가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시기에 강력한 자외선이 공급됐다는 뜻이다. 분자구름 상태에서는 아직 태양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팀은 당시 주변에 무거운 이웃 별이 있어서 강력한 자외선을 쪼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카리나 성운의 별 탄생 영역인 NGC 3324을 촬영한 허블우주망원경 영상이다. 태어난 무거운 별들이 강한 자외선 빛을 비추면서 분자구름을 깎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분자구름의 산소동위원소 분포를 변화시킨다. 흰 가로선 축척은 5광년 또는 태양-지구 거리의 30만 배(30만며) 거리다. NASA/ESA 제공

이번 결과는 태양과 태양계의 초기 형성 과정과 주변 환경을 새롭게 밝혔다. 이정은 교수는 “가까운 곳에 강한 자외선을 방출하는 무거운 별이 있다는 것은 태양이 외따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성단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생명 연구에도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유기분자는 원시 태양계의 분자구름 상태에서 생성됐는데 자외선의 강도에 따라 화학반응이 달라지면서 유기분자 성분이 달라졌다”라며 “태양계 형성 과정에서 자외선의 영향을 받은 물질을 연구하면 지구 생명과 관련된 유기물 성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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