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검찰 개혁 부조리극

입력 2020. 10. 20.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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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중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믿거나 말거나 '폭로(?)' 두 방에 나라가 뒤숭숭하다.

8일 뒤 김봉현의 옥중 폭로문이 등장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면충돌했다.

첫 번째 폭로는 강 전 수석에게 5000만원을 줬다면서 여권을 겨냥하더니, 두 번째 폭로는 그런 진술이 윤 총장 측의 회유 때문이었다며 검찰과 야권을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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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구속 중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믿거나 말거나 ‘폭로(?)’ 두 방에 나라가 뒤숭숭하다. 241억원을 횡령해 구속된 김봉현은 4000여명의 피해자와 1조6000억원대의 피해액을 남긴 ‘라임자산운용 비리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금융사기 피의자 김봉현의 법정 증언이 등장하자 야권은 반색했고,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억울함을 주장했다. 8일 뒤 김봉현의 옥중 폭로문이 등장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면충돌했다. 내용으로 보면 김봉현의 폭로 두 건은 겨냥한 대상이 다르다. 첫 번째 폭로는 강 전 수석에게 5000만원을 줬다면서 여권을 겨냥하더니, 두 번째 폭로는 그런 진술이 윤 총장 측의 회유 때문이었다며 검찰과 야권을 겨냥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김봉현의 말을 걸러낼 자정 능력이 있어야 한다. 폭로성 발언 직후에는 언론이 떠들고 정치권이 떠드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들이 이뤄지면 사건들은 정리되는 수순을 밟았다. 로비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상자가 처벌받고, 의혹이 거짓이라면 음해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었다.

요즘은 이런 시스템이 무너졌다. 김봉현의 폭로가 나온 뒤 법무부는 윤석열 측 검찰이 김봉현의 진술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비난했고, 대검은 즉각 이를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검찰이 내부에서 편을 갈라 서로 상대방을 비판하기 바쁘다. 이런 상태라면 서울남부지검이 수사를 열심히 해서 결과를 내놓더라도 편이 갈린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해졌다. 여권에 대한 로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윤석열의 음모가 현실화했다”고 비난할 것이고, 여권에 대한 로비 의혹이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여권 봐주기 수사가 극치에 달했다”는 비난이 등장할 것이다. 검찰을 믿기 힘드니 특검을 도입하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빨리 출범시켜 수사를 맡기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하지만 특검이 무슨 결과를 내놓든 공수처가 아무리 수사를 열심히 하더라도 신뢰를 얻지 못할 것 같다. 무의미한 공방,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할 게 뻔하다.

검찰이 어쩌다가 이 정도로 신뢰를 잃은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검찰 개혁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은 제도를 바꿔 검찰의 기능을 분산하고, 검찰 내부 주류 세력을 교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은 공수처 설립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완성되고, 주류 교체는 조국과 추미애 장관으로 상징화됐다. 검찰 개혁 구도 자체는 그럴듯했는데, 문제는 디테일이었다. 문재인정부는 디테일에 취약한 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이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만 가중했고, 공수처 출범은 권력에 충성하는 또 다른 검찰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크다. 주류 교체는 윤석열파 제거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윤석열과 그 측근들만 제거되면 검찰 개혁이 이뤄진다는 환상이 널리 유포됐다. 윤 총장을 비판하면 검찰 개혁이고,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을 편들면 검찰 개혁이다.

연극에는 부조리극(不條理劇·Theatre of the Absurd)이라는 장르가 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 두 명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데, 고도가 누군지도 모르고, 올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의 말도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이다. 최근 2년간 검찰 개혁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는데, 이젠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결국 고도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고, 오지도 않았다. 검찰 개혁은 어떨까.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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