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시인은 왜 韓난민 신청 했나..수원 케밥집서 일하게 된 사연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부근. 매주 화요일 오후 6시30분이 되면 이곳에는 마스크를 쓴 한 무리의 남성들이 케밥이 담긴 박스를 들고 모습을 드러낸다. 한줄로 선 노숙인들에게 포장된 케밥을 하나씩 건네는 이들은 홍주민 목사와 외국인 난민들이다. 홍 목사는 지난 6월부터 난민센터 내 외국인들과 함께 거리의 노숙인에게 케밥 나눔을 해왔다. 지난주부터는 미국인 A(44)도 처음으로 봉사에 참여했다. 서툰 한국어에도 정성을 다해 케밥을 나눠주던 A. 그는 왜 머나먼 타국에서 케밥 나눔을 하게 된 걸까?
19일 홍 목사 등에 따르면 A는 지난 2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고국인 미국은 흑인에게 안전하지 않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난민법을 제정한 한국이라면 안전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3월 3일 그는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인천외국인청)에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난민 심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중의 돈이 바닥났다. 한 달 뒤 A는 영종도 모텔과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반 노숙 상태에 들어갔다. 2개월 뒤엔 인천외국인청으로 향했다. 동인천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청사 주변에서 노숙인 생활을 지속했다. A에 대한 민원이 잇따르자 인천 중구청은 노숙인 쉼터를 운영해 온 이준모 목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A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고민에 빠진 이 목사는 수원에서 난민 쉼터를 운영 중인 홍주민 목사를 떠올렸다. A가 수원행에는 동의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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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한 그릇에 열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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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 만에 얻은 안식인지”
수원 난민센터에 들어온 지 이틀 뒤 홍 목사는 A에게 칼국수를 대접했다. 굳은 얼굴로 눈치를 보던 A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오랜만에 먹는 따뜻한 음식"이라고 했다. 한번 마음이 열리자 A는 속 이야기를 하나둘씩 털어놓았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시카고에서 대학을 나온 뒤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 8년 전부터는 시를 쓰는 작가로 활동했다. 시를 쓰면서 미국생활이 자신과 안 맞는다는 생각이 굳어졌고 결국 한국행을 택했다. A는 자신이 썼다는 시집을 꺼내 홍 목사에 건네며 “사실 출간한 시집이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며 웃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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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정신을 시에 담겠다”
최근 A는 인천외국인청으로부터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심사 결과를 전달받았다. 박해받을 사유나 공포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불인정 통보를 받은 다음 날 A는 바로 난민심사에 재신청을 했다. 재심사에서 다시 떨어지면 행정소송 등도 고려할 계획이다. A가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까 걱정된 홍 목사는 “난민 신청을 한 지 6개월이 지나 이제 정식적으로 일할 수 있으니 함께 일자리도 찾아보자”고 제안했고 A도 동의했다. A는 당분간은 홍 목사가 운영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인 케밥 가게에서 일하면서 일자리를 찾을 예정이다.
A는 한국에 들어온 이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매일 개인 PC에 정리하고 있다. 나중에 시로 풀어내기 위해서다. A는 “단카(일본식 시 장르)느낌의 오행시를 써왔는데 이제는 긴 글도 쓸 것”이라며 “한국에 오래 남아서 아시아의 정신을 담아내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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