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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택배기사 간이분향소'.."죽어서도 이런 취급 당하나"

박윤경 입력 2020.10.21. 17:06 수정 2020.10.22. 14:26

부산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 장호성(43)씨는 지난 13일 터미널 휴게실 안에 간이 분향소를 마련했다.

배송 업무 중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숨진 택배노동자 김원종(48)씨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장씨와 함께 분향소를 설치했던 택배노동자 권용성(40)씨는 "모두 과로사의 위험에 놓여 있는데 제대로 추모도 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택배노동자 이아무개(52)씨도 "배송을 하다 갑자기 숨이 차서 길가에 털썩 주저앉은 적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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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부산 터미널에 마련된 간이 분향소
철거된 채 발견되자 동료들 분노·참담함 호소
"내일 살아서 볼 수 있겠냐" 자조섞인 농담도
21일 '과로사 예방대책 마련해야' 각계 대표자 공동선언
부산 CJ대한통운 우암터미널 휴게실에 마련돼 있던 간이 분향소. 택배노동자 권용성씨 제공

부산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 장호성(43)씨는 지난 13일 터미널 휴게실 안에 간이 분향소를 마련했다. 배송 업무 중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숨진 택배노동자 김원종(48)씨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더 늦어’란 고인의 마지막 말이 남 일 같지 않다던 동료들”도 함께 마음을 모았다. 허리 높이의 작은 선반에 검은 천을 씌우고, 영정 틀 안엔 얼굴 모르는 이의 사진 대신 ‘김원종’ 이름 석자를 새겨넣었다. 빈 페트병을 반듯하게 잘라 흰 조화를 꽂아둔 분향소엔 기사들이 들러 말없이 고인을 추모하고 갔다.

그런데 19일 부산 사상터미널 앞에서 과로사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장씨와 동료들이 휴게실에 돌아와보니 분향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기사들이 ‘편히 쉬시라’며 적고 간 방명록도 보이지 않았다. 폐회로텔레비전(CCTV)도 없어 막막하던 차, 장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쓰레기봉투를 뒤졌다. “그 안에 분향소가 처박혀 있었어요. 현수막은 한껏 구겨지고 국화엔 빨간 라면 국물까지 묻어 있었어요. 택배기사는 죽어서도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나 너무 화가 났어요.” 21일 장씨가 <한겨레>에 말했다.

분향소에 마련돼 있던 국화, 현수막 등이 지난 19일 쓰레기봉투에서 발견됐다. 택배노동자 권용성씨 제공

올해만 열 명의 택배노동자가 잇따라 숨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살인적 노동조건’에 대해 분노와 우울감을 호소하는 택배노동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추모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에 동료들은 더욱 분노했다. 이날 <한겨레>가 인터뷰한 기사들은 “다음 과로사는 나일까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장씨와 함께 분향소를 설치했던 택배노동자 권용성(40)씨는 “모두 과로사의 위험에 놓여 있는데 제대로 추모도 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권씨는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2시까지 배송할 물건을 권역별로 나눠 싣는 ‘분류작업’을 진행한다. 하루 300∼400개의 물량을 맡다보니 배송을 마치면 밤 10시가 넘는 날도 잦다. 권씨는 “동료들끼리 ‘이렇게 하다 내일 살아서 볼 수 있겠냐’며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다들 속으론 걱정하고 불안해한다”고 털어놨다.

경기 지역 택배노동자 이아무개(52)씨도 “배송을 하다 갑자기 숨이 차서 길가에 털썩 주저앉은 적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 19일엔 밤 10시에도 배송을 끝내지 못해 서두르고 있던 중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고객이 ‘이 시간에 너무 자주 보는 것 같다. 걱정된다’고 이씨에게 말을 건네온 일이 있었다. 그는 “과로사 기사를 보고 마음이 뒤숭숭하던 차에 그 말을 들으니 울컥했다”고 말했다.

택배노동자들의 잇딴 사망 사고를 막을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시민사회 의견이 모인다. 이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종교·의료인단체 등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택배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끊기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택배업체와 정부가 분류인력 투입, 노동시간 단축 등 과로사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이를 감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CJ대한통운은 22일 박근희 부회장이 직접 사과문과 보호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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