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엘피 200만원!" 되팔이 극성..팬심을 돈으로 우롱하지 마세요

김경욱 2020. 10. 2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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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 개념 LP 사들여 비싸게 되파는 리셀러 활개
백예린·아이유·이승환·이소라..정가의 45배까지
가수·팬들 비판에도 처벌법은 국회 문턱 못 넘어
전문가 "매크로 돌려 대량 구매는 업무방해죄 해당"
제작 2주~한달 전 '선주문' 판매가 현실적 대안
소량 찍어 '완판' 홍보하는 제작사 행태 개선해야
16년 만에 엘피(LP)로 재발매된 가수 이소라의 6집 앨범 <눈썹달>. ‘바람이 분다’ 등이 수록돼 있다. 이소라 에스엔에스(SNS) 갈무리

직장인 김보민(가명·39)씨는 가수 이소라의 오랜 팬이다. 김씨는 지난달 가수 이소라의 6집 앨범 <눈썹달>이 16년 만에 엘피(LP)로 재발매된다는 소식에 예약 주문을 하기 위해 한 음반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예약 판매 시작 1분도 안 돼 매진됐기 때문이다. 허탈한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 이미 판매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가 13만5천원(오프라인 16만7천원)의 갑절가량 되는 가격에 “택배 포장된 상태 그대로 바로 보내주겠다” “배송지를 변경해 보내주겠다”는 글들이었다. 김씨는 “‘되팔이’들의 농간에 정작 앨범을 사서 들으려는 팬들이나 소비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웃돈을 받고 앨범을 되파는 것이 목적인 재판매상(리셀러)이 기승을 부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음악 팬과 가수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한정판으로 3천장만 찍은 이번 <눈썹달>의 경우, 에이(A)면 음질에 문제가 있다는 일부의 지적에 이소라 쪽에서도 “불편하게 한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지만, 교환이나 환불은커녕 온라인에서 26만~30만원가량에 재판매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호가가 40만원인 재판매 물건도 올라왔다.

아이유가 2014년 엘피(LP)로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한정판. 최근 온라인 중고 엘피 거래 사이트에 200만원에 올라 있을 정도로 웃돈이 붙었다. 네이버 갈무리

엘피 재판매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만 해도 백예린 정규 1집 <에브리 레터 아이 센트 유> 한정판과 듀스 베스트 앨범인 <듀스 포에버>, 이승환 정규 11집과 12집을 묶은 <폴 투 플라이> 엘피 한정판 등이 출시와 동시에 매진된 뒤, 온라인에 정가의 몇배나 되는 20만~60만원에 매물로 나오면서 팬들의 분노는 커졌다. 특히, 아이유가 2014년 엘피로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한정판은 최근 온라인 중고 엘피 거래 사이트에 200만원에 올라올 정도로 웃돈이 붙었다. 정가 4만4천원의 약 45배에 이르는 가격이다.

이렇게 시장이 혼탁해지자, 재판매상에 강경 대응을 예고한 가수도 있다. 이승환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6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리셀러들에게. (앨범을) 사지 마라. 팬이라고 다 팬이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소속사인 드림팩토리도 같은 날 의견문을 내어 “특정 리셀러의 횡포는 예상보다 고통스럽고 집요했다. 계속되는 욕설과 비방 글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저희가 확보한 정보에 리셀러로 판명된 사람들에겐 단호하게 조치하겠다. 변호사와 상의 중”이라고 밝혔다.

가수 이승환.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지만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관련 규정은 미흡하다. 엘피와 사정이 다르지 않은 공연 티켓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이들을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20만원 이하의 벌금형 등에 처할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 재판매하는 행위는 처벌할 방법이 없다. 티켓 재판매 등을 막기 위해 지난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경범죄처벌법이나 공연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소속사 쪽에서는 앨범 한두개를 사서 재판매하는 행위를 근절하긴 어렵지만, 매크로(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자동화 프로그램)를 이용해 엘피를 대량으로 사들여 파는 경우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신현호 법무법인 위공 변호사는 “리셀러가 엘피를 대량으로 사들여 이를 되판다면 업무방해로 볼 여지도 있다”며 “아직 관련 판례가 없어 실제 사례를 다뤄봐야겠지만, 티켓의 경우, 야구 경기장 입장권을 대량 구매한 리셀러가 업무방해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환의 정규 11집과 12집을 묶은 <폴 투 플라이> 엘피(LP). 이승환 에스엔에스(SNS) 갈무리

전문가들은 음반 제작에 앞선 ‘선주문’ 방식으로 재판매상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1천~3천장 한정판으로 만들어 특정 시각부터 팔기 시작하면 재판매상이 활개를 칠 수밖에 없기에 선주문 방식을 활용해 이를 일부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세계적인 음반사 이엠아이(EMI) 등에서 일해온 박종명 사운드트리 부대표는 “엘피음반 ‘제작’에 앞서 2주나 한달가량 충분한 시간을 두고 예약을 받은 뒤 음반을 공급하면, 팬들은 음반을 충분히 살 수 있고, 가수나 제작자는 재고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종로서적의 류석원 음반 매니저도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 싱글처럼 선주문을 받아 1·2차로 판매하면 ‘되팔이’들이 음반을 재판매할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한정판이 아니라 선주문을 받아 대량으로 생산하면 제작 단가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의도적으로 적은 물량을 제작해 “몇분 만에 완판됐다”며 홍보 수단으로 삼는 일부 가수와 제작사의 행태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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