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템 남발·데이터 조작.. 스스로 덫에 걸린 게임업계

이다니엘 2020. 10. 23.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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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산업 매 분기 기록 경신에도.. 업계, 철학·비전 없이 돈벌이 급급
게임 이용 인구의 증가로 관련 산업의 성장세가 날로 가팔라지고 있지만 국내 게임사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는 역주행하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은 잘 만들고 재미있는 게임으로 정직하게 몰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게임사들에서 철학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22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이 같이 말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위 교수는 2000년대 초 게임 산업에 발을 담근 뒤 중앙대 게임콘텐츠연구센터 소장,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코리아위원회 분과장, 게임학회장 등을 지내며 게임 산업 진흥에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에는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등록하자 국내 도입을 적극 반대하며 게임계 대표 ‘스피커’로 떠올랐다.

그간 위 교수는 게임 진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국내 게임사를 향해 쓴 소리를 서슴없이 했다. 그는 “국내 게임사의 덩치가 몇 년 새 몰라보게 커졌지만 게임 공동체로서 공유하는 철학과 비전이 없다 보니 이용자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게임이라는 문화 활동이 인간, 사회, 국가 속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굉장히 커졌다. 그럼에도 국내 게임사들은 게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게임의 가치를 올리기보다 관료화된 시스템 속에서 게임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임 산업은 ICT 기술이 집약된 구조 덕택에 최근 몇 년간 제조업 등 다른 산업 대비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더욱이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층이 꾸준히 넓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게임은 전도유망한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7월 발간한 ‘2020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새 게임을 한번이라도 해본 국민은 70.5%에 달했는데 여성(67.3%), 남성(73.6%)이 고르게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게임 이용 시간이 증가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41~47%로 조사돼 비대면 여가활동으로 게임이 주목받고 있음이 확인됐다.

모바일게임 분야에선 분기마다 새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앱애니’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지출은 200억 달러(약 23조)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직전 분기 대비 5%,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모바일 게임 다운로드는 140억 건을 돌파했다. 해당 데이터는 구글 플레이, iOS를 기준으로 집계됐다. 중국 시장까지 산입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게임 산업의 성장세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지만 국내 게임 마니아들의 시선은 대개 해외에 쏠려 있다. 국내 활성화된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리그오브레전드’ ‘마인크래프트’ ‘스팀’ ‘플레이스테이션’ 등 외국산 게임 콘텐츠가 주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게임에 대한 불신은 위 교수의 말처럼 철학의 부재와 일맥상통한다. 수년 전부터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모바일게임에 몰두한 채 확률형 아이템을 핵심 비즈니스 모델로 엮으며 이용자들의 불만을 쌓았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서 받은 ‘연도별 콘텐츠 분쟁 조정 접수 현황’을 보면 올해 콘텐츠 분쟁 조정이 접수된 사례 1만2521건 중 게임 관련 분쟁은 1만1433건으로 전체의 91.3%를 차지했다.

게임 내 데이터 조작 사건 또한 잊을만하면 발생해 이용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PC 온라인게임 ‘던전앤파이터’는 지난달 서버 관리자가 수천만원대 게임 아이템을 데이터 조작을 통해 부당하게 취득했다가 ‘네티즌 수사대’에 발각돼 된서리를 맞았다. 직후 개발사 네오플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부정행위를 저지른 직원을 해고하고 형사 고소 조치하면서 “DB툴 작업 프로세스 취약점을 보완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게임 이용자들의 의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국내 한 야구게임에서 강화(업그레이드) 성공률 103%로 표기된 아이템이 ‘깨지는’(실패하는) 괴이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다른 모바일 RPG 게임에서는 아직 구현되지 않은 최상급 아이템을 의문의 캐릭터가 버젓이 무장하고 다녀 이용자들의 분노를 샀다. 2018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이템 확률 조작 혐의로 3개 게임사에 과징금 10억원을 부과한 전력이 있다.

위 교수는 “이용자들의 냉소적 반응은 당연한 결과”라면서 “중국에서 출시한 ‘원신’ 같은 게임이 최근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대로라면 ‘중국산 게임’에 대한 조롱의 시선이 ‘한국산 게임’으로 옮겨질 수도 있다”고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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