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댐에 물 가두자 국가명승 회룡포가 망가졌다

김기범 기자 2020. 10.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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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마지막 4대강사업’이라 불리는 영주댐에서 담수가 시작된 지 1년여 만에 내성천이 급속도로 황폐화되고, 국가명승 회룡포의 백사장이 자갈밭으로 변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에 모래가 유실되고, 자갈이 늘어나면서 내성천의 대표 어류였던 멸종위기 흰수마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생태지평 시민조사단은 22일 올해 내성천 곳곳에서 생태조사를 실시하면서 확인한 내성천의 모습과 10년 전 훼손되지 않은 상태의 내성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시민조사단이 공개한 사진 속 내성천은 같은 장소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황폐화된 모습이었다. 먼저 빼어난 경관 덕분에 국가명승으로 지정돼 있는 회룡포는 상류로부터 모래 공급이 끊기면서 백사장이 줄고, 자갈밭이 늘었다. 본래대로 백사장이었다면 자랄 수 없는 식물들도 침투하고 있다. 자갈밭과 식물들이 침투한 영역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

국가명승인 경북 예천 내성천 회룡포의 2011년 9월 모습. 한국 강의 특징인 백사장이 잘 보전돼 있다.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국가명승인 경북 예천 내성천 회룡포의 2020년 10월 11일 모습. 모래가 줄어들고, 자갈이 늘어난 데다 다양한 식물들이 침투하면서 백사장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경북 예천과 안동, 영주 등을 지나는 내성천은 국내의 수많은 하천 중에서도 고운 모래가 가장 많았던 강이다. 한국 강의 특징인 모래강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곳으로 꼽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주댐이 건설되고 상류로부터 중·하류로 내려가는 모래의 양이 급감하면서 빠르게 본 모습을 잃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2013년 회룡포의 모습 . 아래 사진과 같은 위치.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2020년 10월 17일 회룡포. 위의 2013년 모습과 같은 위치.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게다가 지난해 9월 시험 담수가 시작되고, 댐 상류의 모래를 하류로 흘려보내는 배사문마저 닫히자 하천 생태계의 훼손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영주댐의 배사문은 지난해 9월 25일 이후 열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2013년 회룡포의 모습 . 아래 사진과 같은 위치.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2020년 10월 17일 회룡포. 위의 2013년 모습과 같은 위치.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이처럼 모래가 줄고 자갈이 늘어나자 멸종위기 어류인 흰수마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으로 확인됐다. 흰수마자의 수는 해마다 급감하고 있었지만 단 한 마리도 확인되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해 올해 내성천에서 흰수마자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고 22일 밝혔다. 수자원공사는 지난 5월 26~27일, 9월 27~28일, 10월 13~14일 세 차례에 걸쳐 흰수마자 서식현황을 조사했다.

내성천의 흰수마자 서식 현황 조사 결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수공은 2014년부터 올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 1만5000마리의 흰수마자 치어를 내성천에 방류했지만 흰수마자의 개체 수는 늘어나기는커녕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수공이 연도별로 확인한 내성천의 흰수마자 수는 2014년 184마리, 2015년 181마리, 2016년 492마리, 2017년 184마리에서 2018년 9마리로 크게 줄었다. 국립생태원이 2018년 5월부터 1년 동안 내성천 9개 구간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흰수마자는 7마리가 3개 구간에서만 확인됐다. 한국 고유 어류이자 멸종위기종인 흰수마자는 유속이 빠르고 강바닥이 모래로 된 얕은 물에 주로 서식한다.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자갈이 늘어난 환경에서는 서식하기 어려울 것으로 추정한다.

내성천의 멸종위기 어류 흰수마자 모습. 생태지평 시민조사단 제공.


환경부는 당초 지난 15일 영주댐의 방류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방류를 연기한 바 있다. 영주 지역 14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영주댐수호추진위원회’는 15일 오전 10시 영주댐 앞에서 주민 등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방류 저지 결의대회를 열었다. 주민들이 방류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농업용수 부족이다. 하지만 현재 영주댐의 수질은 농업용수로 쓸 수 없는 수준이며 심각한 녹조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수질 개선이라는 본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하천 생태계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는 영주댐을 이대로 존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갈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영주댐 하류와 달리 모래톱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는 영주댐 상류 20㎞ 지점의 석포교 일대 모습.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자갈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영주댐 하류와 달리 모래톱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는 영주댐 상류 20㎞ 지점의 석포교 일대 모습.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제공.


영주댐을 기준으로 한 내성천 상하류는 올해 긴 장마를 거치면서 크게 다른 변화를 보였다. 댐 상류 20㎞ 지점의 석포교 일대는 홍수기를 거치며 모래톱이 넓어졌다. 석포교 일대에서 확인된 모래는 비교적 고운 모래들이 많았지만 댐 하류 회룡포는 자갈밭으로 변할 정도로 고운 모래들은 사라진 상태다. 홍수로 인해 모래의 이동을 막는 댐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강은미 의원은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영주댐은 낙동강의 하천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녹조 등으로 인해 오히려 내성천과 낙동강의 수질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한국 최고의 모래강인 내성천의 빼어난 경관을 훼손하고 흰수마자를 결국 멸종으로 치닫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경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내성천의 생태계를 회복하는 복원 로드맵을 시작해야 한다”며 “특히 이번에 한 개체도 확인되지 않은 흰수마자 문제는 시험 담수의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하루라도 빨리 방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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