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남성들의 건전한 외도? '정신적 원조교제' 원해 더 무섭다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이동준 입력 2020. 10. 23. 14:35 수정 2020. 10. 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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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부 사설 탐정소에서는 여성들의 의뢰를 받아 남성들의 원조교제 여부를 확인하는 일을 한다. 사진=사설 탐정소 홈페이지 캡처
1990년대쯤 일본 사회를 뒤흔든 ‘원조교제’가 최근 들어 ‘파파가츠’(아빠활동·이하 원조교제)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행하고 있다.

과거 원조교제는 성인 남성들이 10~20대 여성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면 약 2~3년전쯤부터 나타나 현재 진행형인 원조교제는 ‘부적절한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난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신적 원조교제’가 단순 성매매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요즘 원조교제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요즘 원조교제는 남성이 여성에게 금전적, 물질적 지원을 하고 식사나 술을 함께하거나 쇼핑, 영화·공연 등의 문화생활을 즐긴다고 한다.

이에 원조교제에 나서는 10∼20대의 거부감이 적고 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 일부는 ‘쉬운 돈벌이’ 정도로 가볍게 여긴다.

이같은 만남은 기혼남성과 10~20대 젊은 여성의 만남이 일반적인데 한 예로 이같은 만남을 연결하는 앱을 접속해보니 ‘아내보다 패션 감각이 좋은 20대 여성을 찾는다’는 글이 있었다.

그는 평소 아내가 골라준 넥타이가 맘에 들지 않아 요즘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사고 싶다며 함께 쇼핑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맛있는 저녁 식사’와 ‘교통비’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처럼 ‘교통비’라는 대가가 오가 일부는 원조교제에 나선다.
지난 18일 일본 매체 시라베가 전국에 사는 10~60대 여성 939명(유효응답)을 대상으로 경험을 물은 결과 조사 대상의 5.6%가 ‘있다’고 답했다. 이 중 20대가 10.1%로 가장 많고 10대 7.7% 30대 5.8% 순으로 나타났다.
원조교제에 나선 10대가 경찰의 지도를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
부적절한 관계가 없다고 해서 긍정적인 시선이 뒤따르는 건 아니다. 조사에서 ‘경험 없다’고 응답한 이들은 ‘금전적 대가로 거부감’이 들고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는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부정적 시각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지만 남성 쪽이 더 많았다.

만남을 주선하는 사이트나 전문 클럽 등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의식해 익명을 보장한다. 법 안에서 그들의 주장처럼 건전한 만남을 한다 치더라도 아내나 남자친구에 원조교제를 하겠다거나 했다고 말하긴 힘든 것이다.

◆남성들의 건전한 외도?

얼핏 보면 남성이 원조교제를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단순 쇼핑을 하는데 처음 보는 여성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교통비’ 까지 책임져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 다른 목적이 있다면 유흥업소를 찾으면 되고 ‘그루밍 범죄’(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가 목적도 아닐뿐더러 깊은 사이로 발전하는 사례는 있긴 하지만 드문 일이라고 한다.

시간과 돈이 필요한 식사 시간이 그들에게 왜 필요할까?
일본에서 열린 ‘원조교제 세상을 구할지도 모른다’라는 제목의 세미나 참가 남성들은 “식사라도 여성과 즐기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말하는 ‘여성’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뜻한다.
세미나에서 교제클럽 대표 나나세 유이는 “원조교제하는 남성들은 정신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며 “‘남성이 정신적인 유대 없이 관계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하는 건 편향적인 믿음”이라고 주장했다.

기혼 여성인 그는 “자신을 비롯한 여성들은 남편이 정신적 교감이 부족해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못 한다면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남성들은 골치 아픈 문제에서 도망친 것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버지인 남편들은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에 지쳐 가정 이외의 장소에서 한 사람의 남성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로 돈을 내고 여성들의 시간을 구매하는 거 같다”며 “여성도 힘들지만 남성도 살기 힘들다. 그들도 어딘가에서 구원받길 바라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사진=아사히텔링
◆‘정신적 원조교제’ 원해 더 무섭다

그는 이같은 교제가 ‘풍속업’(매춘업)이라고 비판했다.
법이 정하고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지 않는 선에서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지만 자칫 깊은 관계에 빠져 아내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조교제 세상을 구할지도 모른다’는 세미나 제목도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세미나는 원조교제를 장려하자는 것이 아닌 가정을 둔 남성들 이같은 교제에 빠진 원인을 알고 해결책을 만들자는 의미로 진행됐다.

이런 만남이 계속되는 건 공허함을 달래지 못하고 쌓아만 둔 착실하게 산 남성들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직장생활을 하며 성실히 살았지만 가장이란 무게와 힘든 사회생활이 수십년간 이어지고 ‘정년’(최대 70세)까지 계속되는 한편 가정과 직장이 우선시돼 그들이 원한 건 어느덧 바라만 볼 수 있는 꿈이 됐다.

이에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 눈을 밖으로 돌려 미혼 시절 느꼈던 ‘설렘’이나 가정이라는 현실을 도피해 환상을 쫓고,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한 여성은 만나서 부담 없고 자신에게 부족한 경제적 지원이 이어지자 그에게 ‘보호받는다’는 착각에 빠져 불륜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불륜까지 발전하지 않더라도 남성들이 가정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일회성 성매매에 나선 것보다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교제’를 결혼한 남성들이 원하고 있어 가족 관계가 멀어지거나 붕괴하는 등의 더 큰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클럽을 운영하는 대표가 스스로 ‘풍속업’이라고 비판하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정에 마음을 두지 못한 남성과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여성들의 만남은 누군가에게 비판받을 수 있겠지만 그들의 만남을 막을 방법은 지금 일본에 없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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