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X세대' 왜 진보가 됐을까

반기웅 기자 2020. 10. 24. 11: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20년, X세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한국의 X세대는 1990년대에 20대였던 1970년생, 현 40대(2020년 기준 832만명)를 지칭한다. 미디어에서는 1990년대 콘텐츠가 쏟아진다. X세대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영화·드라마 속 주인공은 여전히 90년대 배우다. 70년대생이 장악한 탑 티어 MC 순위는 20년째 변동이 없다. TV를 보던 10대가 ‘요즘은 온통 늙은이 세상’이라고 푸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X세대는 대중 소비문화의 전면에 서 있다.

그런데 X세대는 문화 분야에만 보인다. 정치와 경제, 사회 분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주도권은 여전히 586세대(민주화 세대)가 쥐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40대는 잊힌 세대다. 총선에서도 청년비례는 40대를 건너뛰고 ‘2030’의 몫이다. 지난해 ‘다른 세대 대비 주목도’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40대 응답자의 71%가 다른 세대에 비해 자신들이 “주목받지 못한다”고 답했다.(메디치미디어 피렌체의 식탁·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일각에서는 X세대를 586세대의 ‘종속적 하위 파트너’로 분류한다.

X세대의 아이콘 ‘서태지와 아이들’ / 경향db


권위주의 트라우마
586에 밀리고 밀레니얼 세대에게 치이는 ‘조연’이지만 정치적 색깔은 어느 세대보다 선명하다. 40대는 가장 뚜렷한 진보 성향을 지닌 집단이다. 민주화 세대인 1960년생보다 진보적이다.(통계청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문재인 정부와 집권당의 가장 단단한 지지층도 현 40대다. 조국 사태, 인국공, 부동산값 폭등, 의료 파업과 같은 정부 여당발 악재와 공정 논란 속에서도 40대의 지지는 흔들리지 않는다. X세대는 왜 진보를 택했나. 무엇이 그들을 진보로 만들었나.

김미영(가명·46)씨는 1974년생이다. 학력고사로 대학에 가던 시절이었다. 입시 과열로 한 해 50명 넘는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86년 한 여중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3년 뒤 같은 제목의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그 사이 민주화가 이뤄졌고 87체제가 들어섰다. 전교조가 생겼고, 학력고사 대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도입됐다.

김씨도 치열하게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부모가 대입을 반대했다. ‘여자가 대학 가봐야 혼기만 놓친다’는 이유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을 방황하고 설득한 끝에 ‘전문대는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1993년 첫 수능에 도전했다. 학력고사 세대였던 김씨는 첫 수능세대가 됐다.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시험을 봤는데 학력고사보다 쉽게 느껴졌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지역 4년제 국립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였다. 그럼에도 부모는 전문대를 고집했다. 결국 김씨는 3년제 전문대(94학번)에 입학했다. 김씨는 지금도 4년제를 포기한 당시의 선택을 후회한다.

대입 과정에서 김씨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에 반발심이 생겼다. 김씨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는 체벌과 폭력을 겪었다. 학창시절을 지나고 나니 권위에 대한 복종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김씨는 말한다. “집, 학교 모든 게 다 권위적이었어요. 정말 싫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길들여졌더군요. 부당한 일에도 거부하거나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돼 있더라고요.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성희롱에 갑질, 다 당했죠. 그런데도 아무 말 못 했어요. 그때 다짐했어요. 절대 윗세대처럼 권위적인 인간은 되지 않겠다고.”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한 장면 / 경향DB


대학 졸업과 맞물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김씨는 치과 사무직으로 취업을 했는데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전 43%였던 비정규직 비율은 1997년 45%대로 올랐고, 2000년에는 52%까지 치솟았다. 이후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이직한 뒤 김씨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1년짜리 근로계약서를 썼다. 한 직장에서 10년을 근무하고도 퇴직금 한푼 받지 못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김씨를 정치로 이끌었다. 사회에 나오기 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김씨는 “온갖 차별 속에서 쉴 틈 없이 일했다”며 “이렇게 먹고살아야 하는 세상을 내 자식에게는 물려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인 김씨는 적극적인 SNS 활동을 하면서 정부 여당에 힘을 보탠다. “세상을 바꿔야 하는데 보수는 아닌 것 같다. 진보를 통해 탈권위적이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2020’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1995년 회사와 맞짱 뜨는 용감한 친구들’ 여성 말단 사원의 내부 고발기를 그린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카피 문구다. 주인공은 실업계 고교 출신 여직원으로 폐수를 유출하는 회사의 비리를 고발하고 진실을 밝혀나간다. 부산에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직장 생활을 했던 1974년생 박희윤씨(가명·46)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박씨는 ‘90년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기업 홍보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씨는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성희롱과 각종 부조리를 겪었고 지켜봤다. 박씨의 동창 대부분은 중소기업 경리로 일했는데 하나같이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박씨는 “성추행이 발생해도 ‘네가 나빠’라는 분위기였다”며 “회사에서 어떤 일을 겪어도 고졸 여사원이 목소리 내기 힘든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박씨는 ‘자유로운 X세대’라는 수식어가 불편하다. 박씨는 “윗세대가 보수적이니까 상대적으로 튀어보였을 뿐 내 20대는 돈 벌기 위해 참고 견뎌야 했던 시절”이라며 “나 같은 고졸 여성에게 X세대 문화는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에게 들어서 알게 된 간접적인 경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시 사회에 나간 여성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1976년생 이영주씨(44)는 1999년 대형 통신사 콜센터에 취업했다. 당시 관리직 남자 상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성희롱을 했는데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이씨 자신도 제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속으로 ‘아이고 미친놈’ 내뱉고 삭였다. 대학 시절 백화점에서 알바할 때는 상사가 이씨가 좋다며 집까지 찾아왔다. 정말 싫었지만 순간 ‘거절하면 이제 출근 못 하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런 시절이었다.


박희윤씨와 이영주씨 모두 진보를 지지한다. 과거와의 결별을 위해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사원들의 활약이 2020년에는 현실이 되길 바란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 윗세대의 선의를 믿고 그들이 모인 정당에 표를 준다. 정부 여당의 모든 정책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변화가 있으려면 진보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는 진보로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40대, 그중에서도 여성의 진보적 정치성향이 두드러진다. 학계에서는 민주화 이후 세대에서 여성의 진보적 정치성향이 짙게 나타나는 이유를 “과거의 가부장적 정치·사회적 문화에서 벗어나 여성의 교육수준과 경제활동의 향상, 탈물질적 가치 및 페미니즘의 영향’에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세대균열의 이면, 세대 내 이질성에 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X세대에 자리 잡은 진보
독일 사회학자 만하임은 세대의 동질성을 코호트(cohor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만하임은 동일한 시기의 태어난 동년배 집단, 코호트는 성장기에 유사한 정치·사회적 경험을 하고 동질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고 본다. X세대는 어떤 코호트 효과를 공유할까. X세대가 성장한 1980·1990년대는 정치사적 안정기에 해당한다. 반독재 투쟁이 끝났고, 공산권 붕괴로 냉전이 종식됐다. 윗세대와 달리 싸워야 할 ‘거악’이 사라진 20대의 관심은 ‘개인’과 ‘자유’에 쏠렸다. 1977년생 95학번 선주영씨는 “학교에 가면 누군가 계단 밑에서 ‘투쟁’을 외쳤지만 대부분 관심을 주지 않았다”며 “문학부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했더니 한 선배가 ‘<태백산맥>을 읽었느냐. <태백산맥>도 안 보고 무슨 문학부냐’고 면박을 줬는데 오히려 그 선배를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개인주의에 대한 몰두는 탈권위주의로 이어져 X세대에 깊이 각인됐다. ‘공권력에 대한 세대별 인식조사’에서 X세대는 공권력을 가장 기피하는 세대로 조사됐다. ‘공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한다’ 의견에 X세대는 5점 만점 중 2.51점으로 20대를 포함한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문화사회학으로 바라본 한국의 세대연대기’, 최샛별)

X세대의 성장기에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를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했고, 3S(스크린·스포츠·섹스) 정책이 시행되면서 즐길거리가 확산됐다. 여권 발급 제한 폐지로 해외 배낭여행이 자유로워졌다. 세계화·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밀려들어왔다. X세대는 소비를 통해 문화를 향유하는 첫 세대가 됐다. 한국종합사회조사(KGSS)를 토대로 1970년대생을 분석한 윤호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는 “70년대생은 문화와 소비를 중요시하는 성향이 짙고 본인이 재미있어하는 것에 파고드는 덕후기질이 있다”며 “586세대와 다르게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데 이런 성향이 X세대의 발전 동력”이라고 말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 현장 / 권호욱 기자


고도성장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끝났다. 한국은 저성장 사회로 진입했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하면서 불안정 노동이 확산했다.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X세대는 이른바 ‘경제적 좌표’를 상실했다. 경제적 안정과 풍요로운 삶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X세대의 전체 생애 소득은 이전 세대보다 감소했다. 이후 X세대는 생존을 위해 조직에 순응하고 개인의 경쟁력 강화에 몰두하는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탈권위를 지향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던 세대가 조직보위 논리에 함몰됐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열정페이’를 비롯한 노동 착취 문제, 위계에 의한 성폭력, 조직 내 부조리와 같은 ‘구악’을 마주하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마땅히 90년대에서 논의됐어야 할 사안들, 예컨대 표현의 자유와 페미니즘 같은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같은 문제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며 “특정 세대가 책임질 사안은 아니지만 적어도 90년대 문제에 대한 시대적 청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MF 외환위기라는 파고 속에 X세대는 가장 순응적인 세대가 됐지만 그렇다고 보수화된 것은 아니다.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과)는 X세대가 ‘시장적 개인주의’와 기존의 ‘감성적 개인주의’를 결합한 복합적인 내면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인정하고 각자도생을 하는 한편 과도하고 비인간적인 부분은 거부하고 비판하는 성향을 함께 보인다는 것이다. 이 같은 특성은 정치적으로 진보를 지지하는 형태로 표출된다. 김 교수는 “성장기에 민주주의의 본질인 개인주의를 체득했기 때문에 내면에 깊게 각인됐다”며 “40대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친화적인 세대이자 가장 진보적인 세대”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