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안 끝났어?"..100회 돌파한 '사법농단' 재판, 언제까지?

김채린 2020. 10. 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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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의)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 픽션(fiction) 같은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그에 앞서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겠습니다.”(피고인 양승태, 2019년 5월 29일 첫 재판에서)

'사법농단' 사태의 책임자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이 어제(23일)를 기점으로 100회를 넘어섰습니다. 사건이 법원에 접수된 지 513일 만입니다. 재판이 중단된 적도 있었지만,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꽤 부지런히 주 2회 재판이 열려왔는데요. 이 재판, 그동안 얼마나 왔고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 어디까지 왔나: 큰 산은 넘었지만…

검찰은 지난해 2월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기소하면서, 공소장을 범행 목적별로 크게 세 덩어리로 분류했습니다.

①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와 이익 도모'를 위한 범행 ②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나 당시 변호사단체 회장 등 '대내외적 비판 세력' 탄압을 위한 범행 ③판사 비위 은폐·축소 등 '부당한 조직 보호'를 위한 범행. 이렇게 세 가지인데요.

재판 초반에는 파트 구분과 무관하게 검찰이 전체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 꼽은 30여 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각각 총 6일, 5일을 법정에서 증언해야 했습니다. 사건의 '키맨'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 기일은 지난 6~7월 총 열흘이 지정됐었지만, 임 전 차장이 자신의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증언이 어렵다고 밝히면서 취소됐습니다. 그래도 임 전 차장을 제외한 주요 증인들은 증언을 마쳤으니, 일단 큰 산은 넘은 셈입니다.

주요 증인신문이 끝난 뒤로는 공소사실별로 첫 번째 파트부터 순서대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언론 보도가 집중됐던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재판 거래' 의혹 등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의혹 사건과 헌법재판소 기밀 유출 의혹이 첫 번째 파트의 주요 내용입니다. 현재까지 이 파트에 대한 심리가 3분의 2 이상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그동안 법정에 소환된 증인들은 몇 명일까요?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고위 공무원들부터 일본 전범기업 소송을 대리한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변호사들,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대법관들의 재판 업무를 보조했던 재판연구관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던 판사들, '박근혜 청와대' 시절 박준우 정무수석까지…. 모두 56명의 증인이 법정에 섰습니다. 이들 중 31명은 현직 판사 신분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오는 12월 경까지 공소사실의 첫 번째 파트에 대한 증인신문과 서증조사를 이어간 뒤, 곧바로 두 번째 파트에 대한 본격 심리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판사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과 '물의야기 법관' 문건 의혹 등이 그 대상입니다. 두 번째 파트와 관련된 주요 증인들은 이미 재판 초반에 나와 증언을 마쳤기 때문에, 증인신문 시간이 짧아지는 등 재판이 전에 비해 좀 더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공소사실의 첫 번째 파트와 관련된 증인신문을 모두 마치더라도, 검찰이 유죄 입증을 위해 신청한 증인은 여전히 120명이 넘게 남습니다. 피고인 측의 증거 인부 의견(사건 관련자들의 검찰 조서를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에 변동이 없다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를 시작으로 증인 120여 명이 차례로 재판에 나와 증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왜 늘어졌나?: '검증'의 터널, 폐 절제, 증인 불출석

결국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공소사실이 아무리 방대하다 해도, 재판이 시작된 지 1년 5개월이나 지난 데다 주 2회 재판 체제가 기본적으로 유지된 점을 고려하면 진행은 더딘 편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사연들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재판이었던 2019년 6월 12일부터 1달 가량 이어진 '검증' 절차가 대표적입니다. 검찰이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증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에서 확보한 법원행정처 문건 파일들의 '원본'과, 이를 출력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한 문건들이 과연 동일한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고 변호인들이 검증을 요구한 것입니다. 검찰이 공소사실에 맞게 원본 파일 내용을 편집·조작한 문건을 제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검증 현장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우선 검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에 담긴 원본 문건 파일을 하나하나 열어, 1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스크롤을 내리며 법정 스크린에 띄워 보여줍니다. 그러면 변호인들은 증거로 제출된 문건 출력물 내용과 스크린에 보이는 원본 파일의 내용이 동일한지를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쪽수와 글씨체 등 기술적 원인으로 나타난 차이점을 제외하면, "동일성과 무결성"을 의심하게 하는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재판은 7월 중순쯤에야 길었던 '검증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섯달 뒤 재판은 더 큰 암초에 부딪힙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병원 검진에서 "폐암으로 의심되는 악성 신생물" 진단을 받고, 폐 일부를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담당 의료진은 수술 후 일주일 동안 입원 치료가 필요하고, 4주 동안은 안정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냈습니다. 결국 2020년 1월부터 3월 초까지 재판이 아예 열리지 못했습니다.

중간중간 걸림돌도 있었습니다. 재판에 소환된 증인들이 정해진 날 법정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재판이 공전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진 겁니다. 재판이 진행된 1년 5개월여 동안 증인 20여 명이 모두 30건 안팎의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들 중 대부분은 재판부가 이후 다시 지정한 기일에 출석해 증언을 한 상탭니다.)

재판 일정이나 해외 연수, 건강상 이유가 주된 불출석 이유였는데, 불출석사유서를 냈던 증인들이 예외 없이 법조인이었던 만큼 특이한 사유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었던 이범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검사가 증인신문이 필요하다면서 제시한 내용들은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이 검사의 일방적 추측에 기초한 것으로 사실과 전혀 동떨어져 있다"며 증언을 할 수 없다고 했고, 100번째 재판이었던 어제(23일) 증인으로 소환된 김종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판사 출신 변호사)은 "관련 사건 재판(임종헌 재판)에서 성실하게 증언을 했기 때문에, 동일한 내용에 대해 다시 반복해 말하고 싶지 않다"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가장 궁금한 질문: 언제 선고할까?

다사다난한 이 재판, 언제쯤 끝날까요? 당장 확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 변수들이 있기 때문인데요.

우선 검찰의 증인 신청이 향후 얼마나 철회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은 초반부터 200명이 넘는 남다른 증인 숫자로 주목을 끌었었는데요. 하지만 최근 변호인들이 기존의 의견을 뒤집고 일부 사건 관련자들의 검찰 조서를 증거로 쓰는 데 동의하면서, 증인신문이 필요한 증인 수가 계속 줄어들어 왔습니다.

이 추세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는 12월부터 본격 심리가 시작될 예정인 두 번째 파트와 관련해, 검찰은 (이미 초반에 신문이 끝난 주요 증인들을 제외하고) 40명가량의 증인을 신청했는데요. 재판부가 지난 21일 재판에서 변호인들에게 "증거 의견을 바꿀 수 있다면 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주문했기 때문에, 두 번째 파트에 대해서도 변호인들의 결정에 따라 검사의 증인 신청이 또 일부 철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20년 10월 중순 기준 최대 140명으로 추정되는 '남아 있는 증인'의 수가 어느 정도까지 줄어들지에 따라, 변론종결 시점도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상황에 따라 내년 상반기 중에라도 재판이 끝날 수 있다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습니다.

다만 변수는 또 있습니다.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인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증인신문이 언제 성사될지입니다. 임 전 차장은 앞서 지난 5월 양 전 대법원장 등 사건 재판부에 증인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대법원장 사건의) 증거조사가 모두 끝날 무렵"에, 즉 마지막 증인으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 시점이 되더라도 임 전 차장이 순순히 증인으로 나올지는 의문입니다. 본인도 피고인으로서 주 2회 이상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들며 증인 출석을 거부했으니, 본인 재판이 상당 부분 진척된 다음에야 증인으로 설 수 있다는 게 임 전 차장의 생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임 전 차장은 양 전 대법원장보다 넉 달 먼저 기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임 전 차장의 재판장 기피 신청으로 재판이 9개월가량 중단됐었기 때문에 대법원장보다 오히려 재판 진행 정도가 뒤처지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다른 증거조사 절차들이 모두 끝나더라도, 임 전 차장이 증인신문에 응하기를 기다리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이 무기한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임 전 차장은 관련 재판에서의 증언이 본인 재판에서 유죄로 쓰일 수 있단 이유로, 대부분 증언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 내년 2월로 예정된 법관 인사 때 기존 재판부 소속 판사가 인사이동을 할 경우, 새로운 판사가 처음부터 방대한 기록을 다시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재판이 더 길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판을 하자고 기소한 사람도, 재판을 하는 사람도, 재판을 받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종종 깊은 한숨을 금할 수 없는 '사법농단' 재판. 그래도 끝은 있겠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뵙겠습니다.

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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