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71시간 노동은 살인" 사람 죽어도 바뀌지 않는 택배 현장

박상휘 기자 2020. 10. 2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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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사는 알맹이 없는 해결책만..'사회적 살인' 지적
대가 없는 노동 전가에 입직 신고 제외..결국은 소비자에게 피해
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더 이상 죽이지 마라"

24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외친 구호다.

택배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14명째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매번 반복되는 부당노동과 과로사로 인해 택배 노동자들은 죽음에 내몰리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은 딱 거기까지일 뿐, 무법천지인 그곳에서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생명권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일 사망한 CJ대한통운 택배종사자 강모씨(39)의 노동 시간을 살펴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살인적인 스케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인이 사망하기 직전 근무일지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 15일 오후 4시쯤 출근해 17일 오후 1시까지 한 시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다. 잠시 퇴근한 뒤 18일 오후 2시쯤 다시 출근한 강씨는 19일 밤 12시 퇴근했으나 오후 5시쯤 다시 출근해 근무를 이어갔다.

그러곤 강씨는 지난 20일 오후 11시50분 CJ대한통운 곤지암허브터미널 주차장 내 간이휴게실에서 갑자기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후 병원에 후송됐으나 21일 오전 1시 끝내 숨졌다. 19일 오후 5시에 출근해 31시간 가까이 귀가하지 못하다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온 것이다.

근무일지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장시간 노동은 제쳐두더라도 강씨의 근무 시간은 매우 불규칙했다. 강씨는 주로 야간시간에 근무를 해왔는데 배차명령이 떨어지면 집에서 쉬다가도 바로 운행을 해야만 했다.

이같이 강씨의 노동 시간을 언급하는 이유는 평소에도 적지 않은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과도한 근무시간이 이미 예상됐다는 점이다. 이제는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 지원 등 특단의 조처가 없이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22일 14명의 사망자 가운데 6명이 속한 업계 1위 CJ대한통운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는데 이 역시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CJ대한통운은 내놓은 대책을 살펴보면 우선 내년 상반기까지 전원 산재보험 가입을 권고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말잔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전국민 산재보험법이 발의돼 논의를 준비 중이고 여당은 이를 연말까지 처리하고자 준비 중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산재보험 가입 권고를 내년 상반기까지, 그것도 필수가 아닌 권고를 한다는 것은 면피성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J대한통운이 택배분류인력 4000명을 투입하겠다고 내놓은 대책도 자세히 뜯어보면 현실화될지 의문이다.

추가 인력을 당장 투입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계적'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지금 현재도 택배기사들에게 작업 부담이 되고 있는 오분류 물량 대책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택배도 다르지 않다. 한진택배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노동 시간이 22시간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진택배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경영진 명의가 아닌 임직원 일동으로 발표됐다.

구체적인 근로환경 개선책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개선책을 언급한 문단은 단 한 문단인데, '물량제한, 터미널 근무환경 개선 등 근로조건 개선에 최우선의 역점을 두겠다'는 언급 외에 물량을 어떻게 제한하고 나눌 것인지, 선별작업 문제는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책이 담기지 않았다.

문제는 상황이 이같은데도 여전히 택배 현장은 무법천지라는 점이다. 사실상 노동자이지만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택배 기사의 모호한 정체성과 하루 6~7시간이나 되지만 보상은 없는 '분류작업'(터미널에 모인 물건을 선별해 택배차량에 싣는 작업)은 여전히 택배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아울러 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택배 노동자 1만8090명 중 7113명(39.32%)이 산재보험에 가입했지만 실제 택배 노동자는 5만 명에 이른다. 사실상 입직 신고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택배 현장의 이같은 상황은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당장 지난 코로나19 수도권 대유행 당시 쿠팡 물류센터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소비자가 전염병 위험에 내몰리는 것은 물론, 서비스의 질도 떨어진다. 올해 일어난 수많은 사망 사건이 사회적 살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북미지역 트레일러 기사들에게는 상하차 작업과 운반 작업이 엄격히 분리된다. 운전 기사가 피로할 경우, 2차 사고가 우려되고 이는 곧 다수의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대형 사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영국과 호주, 캐나다는 산재 사망을 일으킨 기업주를 '기업살인법'으로 처벌하기도 한다.

박석운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살인적 노동환경과 조건,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고 사회적 감시가 느슨해지자 줄줄이 과로사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분류작업에 대한 인원 충원과 산재보험, 야간 근무 등 노동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anghw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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