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소설 코너를 왜구소설로 바꾼 서점 측의 논리
[경향신문]
[언더그라운드.넷] 사진을 처음 본 건 몇달 전이었다.
이번에 언론보도로 논란이 되면서 확인해보니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것은 지난 4월 18일.
“동네 책방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소설 매출이 상당할 텐데… 아, 사장님….”
당시 사진을 찍어 올린 누리꾼의 코멘트다.
사진은 한 동네서점이 내건 책 분류 코드를 찍은 것이다.
B27 옆의 코너명이 ‘왜구소설’이다.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 유명 일본작가들의 소설이다.
“취지는 알겠지만 선 넘은 것 아니냐”는 반응이 당시에도 나왔다.
10월 20일, 언론보도를 통해 논란이 된 사진을 보면 4월과 배열된 책 순서가 조금 달라져 있다.
그러니까 저 서점의 ‘왜구소설’ 분류표기는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생각이었을까.
서점은 대전 노은역 근처에 있다.
“지역에 있는 조그마한 서점이다.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이버나 다음 포털에 오르내릴 만큼 반응이 나오니 당황스럽다.”
연락 이틀 만에 통화가 된 서점 측의 반응이다.
추측처럼 기존의 일본소설 코너를 왜구소설이라는 팻말로 대체한 것은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항의표시에서 취한 조치다.
“IMF 당시 서점을 열 때부터 일본소설 코너를 만들었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가 시작되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별도 코너까지 만들어 소개한 건 너무 대우해준 게 아니었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름 유치하게, 소심한 표현을 한 건데….”
그런데 제기되는 비판은 그 ‘유치하게, 소심한 표현’이라는 것이 인종주의적이지 않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장에 꽂혀 있는 <1Q84>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학살을 언급하면서 일본 극우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이런 작가들까지 싸잡아 왜구라고 한다면 책이 잘 팔린다고 혐한 코너를 만드는 일본 쪽과 뭐가 다른가”라는 비판이다.
“그런 비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하지 않는다.”
서점 측의 반응이다. 서점 관계자는 “보도 후 서점으로 전화가 많이 걸려왔는데 격려하는 전화는 없었고, 대부분 비판하거나 걱정하는 전화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재부품과 반도체 수출규제를 걸어온 것에 대해 ‘우리가 너희 뜻대로 안 된다’는 의도로 시작한 것”이라며 “정상화되면 다시 바꾸려 했는데, 이런 반응이 나오니 당황스럽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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