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 못하는 인프라'에 수소차 왕좌 흔들린다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2020. 10. 2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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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수소차 보급 대수 1위 울산에 충전소 단 6곳..한 곳당 271대 담당

(시사저널=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카마겟돈 시대'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과 '카(자동차)'를 합친 신조어다. 기존의 어떤 자동차 회사도 미래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대격변의 시대라는 의미다. 그린 모빌리티 시대가 열리고 있다. 현재 세계 수소차 시장은 현대차그룹이 주도하고 있다. 자동차 도시 울산은 수소도시 첨병을 선언했다. 

울산 현대차 5공장에서 하루 70대의 수소차가 생산된다. 현대차는 7조6000억원을 투자해 현재 1만1000대 수준인 생산량을 2030년 50만 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김세훈 현대차 전무는 "올해를 기점으로 수소 시대가 온다"며 "독일·프랑스에 이어 최근 중국도 수소 정책을 발표하며 수소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추석을 앞둔 9월29일 용량 증설 및 설비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수소충전소를 찾아 작업 현황과 안전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소차 붐, 시작 좋았지만 곳곳에 복병도

울산시도 수소도시 기반 구축에 올인하고 있다. 최근 울산 지역 6개 화학공장장협의회와 수소차 보급 활성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프로젝트명은 '2030 울산 세계 최고 수소도시 비전'이다. 2030년까지 울산에 수소차 6만7000대를 보급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울산석유화학공단은 수소 생산·이송·충전 등 국내 최고의 수소산업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울산이 수소경제시대를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차 상용화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수소차 '넥쏘'를 1만1000대 팔았다. 이들 차량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최근에는 수소전기 대형트럭 '엑시언트(XCIENT Fuel Cell)' 10대를 스위스에 수출했다. 이를 계기로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노르웨이 등 유럽 전역은 물론 북미시장 진출도 꿈꾸고 있다.

우리나라 수소산업을 이끌고 있는 울산시는 2014년부터 올해 9월말까지 1698대의 수소차를 보급했다. 전국에서 수소차가 가장 많이 다니는 도시가 바로 울산이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울산이 '수소 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지역'으로 지정됐다. 이곳에서는 '내연기관'에서 친환경 '수소연료전지'로 대체하는 기술이 내년 초 실증될 예정이다. 이것이 성사되면 2022년에는 울산 태화강에서 수소로 운항하는 유람선도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미래 에너지 전략보고회에서 "2030년 수소차와 연료전지에서 모두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그 중심에 울산이 있다"고 밝혔다.

울산에서 점화된 '수소 붐'은 전국으로 확산돼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턱없이 부족한 수소충전소와 보조금 지원을 통한 수소차 확대보급 정책의 한계성, 안전성 문제 등이 이번 국감에서도 집중적으로 지적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의 수소차 등록 대수는 7682대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두세 자리에 그쳤던 수소차 등록 대수가 2019년 5083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막대한 보조금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현대 수소차 '넥쏘'를 사면 3450만원(국가 2250만원, 지자체 1200만원)을 지원받는다.

지난 9월 울산 현대차 영업소에서 7000만원짜리 '넥쏘'를 구입한 자영업자 A씨(48)는 "보조금과 할부 혜택 덕분에 1000만원으로 수소차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보조금 지급으로 수소차 보급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교수는 "수소차를 확대 보급하기 위해 혈세를 지원하는 건 문제가 있고 지방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는 울산 6공장에서 하루 70대의 수소차를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턱없이 부족한 충전소…고장·중단 잇따라

수소차가 눈에 띄게 보급된 반면, 수소충전소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울산은 전국에서 수소차(1628대)가 가장 많다. 하지만 충전소는 6곳에 불과하다. 1곳당 271대를 담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경기(1310대)와 서울(1152대)도 수소충전소가 각각 4곳에 그쳐 1곳당 각각 328대와 288대를 담당하고 있다. 다른 도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소차 운전자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에서 수소충전소가 가장 많다는 울산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충전할 수 있다. '넥쏘' 딜러 B씨는 "수소차 구매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울산 중부영업소의 경우 올해 초까지 매월 10대를 팔았으나 최근 4∼5대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대전에는 충전소가 한 곳밖에 없다. 1시간 정도 충전 대기는 보통이다. 춘천의 수소차 운전자는 왕복 130km인 경기 하남까지 가서 충전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발생하는 실정이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정상 운영되는 곳은 강동과 여의도뿐이고 양재와 상암은 각각 시설 노후화, 설비 개선 등의 이유로 문을 닫은 상황이다. 서울시에 1200대의 수소차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참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소차 차주들은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 충전소 이용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충전소에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충전소 확충도 쉽지 않다. 울산시는 충전소 추가 건설 부지를 물색하고 있지만, 위험성을 우려하는 민원에 발목이 잡혔다. 강원도도 도내 7곳에 수소충전소를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서울 도심에는 수소충전소 설립이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지방경찰청 도로교통고시'에 따라 수소튜브트레일러가 도심으로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렵게 부지를 확보해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수소충전소 사업자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 따라 판매허가권을 쥐고 있는 자치단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부지 확보보다 자치단체 동의가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충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탓에 단체장들이 '표심'을 먼저 고려해서다. 정부는 2022년까지 310개 수소충전소 건립을 계획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수소차는 늘어나는데 충전소 확충은 '거북이걸음'이다.

충전소 고장과 운영 중단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15일 울산 지역 수소충전소 2곳의 운영이 중단됐다. 냉각기와 압축기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일부 부품을 해외에서 수급해야 할 상황이라 복구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광주 동곡충전소, 경기 안성충전소도 압축기 관련 고장으로 196시간 동안 가동에 차질을 빚었다. 산업자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수소충전소에서 최근 6개월 동안 156건의 고장이 발생했다. 충전소 운영중단 기간은 무려 66일에 해당하는 1585시간이었다.

고압 연료를 사용하는 수소차는 '내압 용기 재검사'를 3년마다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용 검사소가 아직 없다. 수소차 내압용기는 천연가스(CNG)차량보다 훨씬 높은 초고압 용기가 사용돼 파열 사고 발생 시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0년 서울 행당동에서 천연가스버스가 폭발해 승객 17명이 다쳤다. 압축가스 저장용기(고압용기)에 생긴 균열과 밸브 불량이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밝혔다. 

김필수 교수는 "우리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너무 빨리 달려왔다. 그동안 선진국들이 수소차를 못 만든 게 아니라 안 만든 거였다. 그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해 왔고, 이제 출발선에 섰다.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월할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와 보조금에 의존해 온 우리나라 수소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원인을 냉철히 분석해 볼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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