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사기꾼들의 구호 '검찰 개혁'

박국희 기자 입력 2020. 10. 26. 03:02 수정 2020. 10. 2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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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사회부 기자

라임자산운용 배후 전주(錢主) 김봉현씨 문자 메시지에서 자꾸 청와대가 튀어나온다. 김씨는 작년 5월 26일 지인과 문자에서 “내가 경비 아끼는 사람이던가. 금감원이고 민정실이고 다 내 사람”이라고 했다. 6월 5일에는 “민정수석, 정무수석 라인을 타고 있다”고 했다. 6월 28일에는 “라임을 내가 인수할 건데 BH(청와대)에서 전문가 팀이 내려올 것”이라고 했다.

사기꾼이 대개 권력자와 친분을 입에 달고 산다지만 저 문자들은 김씨가 지인들과 나눈 일상 대화라는 점에 의미가 다르다. 허세일 수도 있지만 검찰의 칼날이 김씨 목을 조이고 있지도 않은 시점이라 단순 허풍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어마무시하게 로비를 한다’는 김씨의 행태는 이미 드러났다. 금감원 출신 청와대 행정관은 뇌물 혐의로 징역 4년을 받았다. “민정실도 내 사람” “민정·정무수석 라인을 타고 있다”는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반면 논란이 되고 있는 김씨 옥중편지는 4월 체포된 김씨가 5개월간 검찰 수사를 받고 난 뒤인 9월 21일 작성됐다. 김씨는 이 편지를 한달간 가지고 있다가 라임 사건을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국감 직전인 지난 16일 공개했다. 2차 옥중 편지는 대검찰청 국감 전날인 21일 공개했다. 여권의 표현을 빌려보면 “냄새가 난다”. 김씨는 강기정 전 정무수석 관련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편지를 써놓은 상태에서 지난 8일 법정에 나와 “강 전 수석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앞뒤가 안 맞는다.

로비를 힘 없는 야권 인사에게 한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편지 내용이 사실이라 쳐도 그가 지목한 야권 인사는 윤갑근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 한 명이다. 반면 수사 선상에 오른 여권 인사는 강 전 수석, 기동민 의원,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이수진 비례의원, 이상호 전 지역위원장, 청와대 행정관 등 한손에 안 꼽힌다.

김씨는 검찰이 야권 인사는 수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검찰은 진술이 나온 즉시 계좌 추적에 들어가 수사 중인 상태였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편파 수사라며 윤석열 검찰총장 지휘권을 박탈했다.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라임 관계사와 윤 총장 처가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정작 그 회사 사외이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인물인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었다. 여권은 김씨에게 술 접대를 받았다는 검사들과 한동훈 검사장을 또 다시 엮으려고 하고 있다.

사기꾼을 앞세운 현 정권의 정치 공작은 처음도 아니다. 채널A 사건 제보자는 전과 5범 사기꾼이었고 ‘피해 호소인’은 징역 14년 이상을 선고받은 금융 사기범이었다. 한명숙 전 총리 무죄를 주장한 제보자 역시 징역 20년 이상을 받고 복역 중인 사기 전과자다. 이 사기꾼들이 하나같이 내뱉은 말은 “검찰 개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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