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방' 태국, 투자처로 각광받는 이유

2020. 10. 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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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크라이손 찬시리(Kraisorn Chansiri)는 가족 부양을 목표로 하는 평범한 태국의 사업가였다. 그런데 크라이손이 1977년 매입한 어류 가공 공장은 세계적인 해산물 가공 업체로 성장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참치캔 제조 업체 중 하나인 치킨 오브 더 시(Chicken of the Sea), 존 웨스트(John West) 등 세계적인 식품 브랜드를 소유한 타이 유니온 그룹(Thai Union Group)의 이야기다.

크라이손의 아들, 티라퐁 찬시리(Thiraphong Chansiri) 타이 유니온 그룹 회장은 인터뷰에서 지난 40년 동안 이룩한 눈부신 성장은 상당 부분 태국의 지리적 위치, 최고 수준의 지역 노동력, 기업 친화적인 투자 중심의 정부 정책 덕분이었다면서, 그야말로 “태국이 준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샌프란시스코대학교(University of San Francisco)에서 MBA 학위를 취득한 티라퐁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비즈니스가 황폐화된 지금의 상황에서도 회복력 있는 태국의 혁신적 식품 분야라면 풍부한 천연 자원, 정부 지원책, 신뢰받는 품질과 안전성에 힘입어 국제적 위기를 이겨내고 투자자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태국은 최고의 선택지”라는 것이다.

최근 지표를 보면 티라퐁 회장의 판단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보편적 의료 시스템 덕분에 태국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고, 공장이 가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되면서 식품 공급망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세계 경제가 멈췄지만 태국 식품의 국제적 수요는 오히려 증가했다.

국제 경제가 큰 타격을 받으면서 전체적 상품 수송량이 감소하는 중에도 태국의 5월 농업 및 농공업 수출은 2.5% 증가했다. 냉동 및 가공 과채류의 수출량은 83% 늘었다. 세계 참치캔 시장의 5분의 1을 점유하며 연간 4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 타이 유니온 그룹의 매출은 2020년 1분기 6% 상승했다.

전체 수출 가운데 식품 수출의 비율은 16%에서 22%로 증가했다. 태국 상무부(Commerce Ministry) 무역정책전략 사무실의 핌차녹 본코폰(Pimchanok Vonkorpon) 단체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이처럼 높은 점유율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특히 중국으로 수출되는 식품이 크게 늘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극적인 냄새가 특징인 귀한 과일, 두리안이 자동차와 전자 제품보다도 높은 수출량을 보이며 5월 전체 수출을 15% 끌어올리는 데 한 몫을 했다.

물론 태국 식품의 국제적 인기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세계 수만 곳의 식당에서 향기가 뛰어난 태국의 커리와 볶음 요리, 혀가 얼얼한 ?c얌꿍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주방(Kitchen of the World)’이라는 태국의 역할은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7천만 명에 달하는 넉넉하고 풍족한 인구를 자랑하는 태국은 자국 내 소비량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식품을 생산할 수 있는 운 좋은 국가들 중 하나다. 세계에서 수요가 가장 높은 식품, 쌀도 태국의 주요 생산품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식량 안보가 세계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1만 개가 넘는 태국의 식품 가공 업체들은 다량의 안전한 식품을 제공하는 믿을 수 있는 공급처로 부상했다. 태국은 참치캔, 파인애플 캔, 스위트콘, 코코넛 밀크, 카사바, 두리안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쌀과 설탕의 수출량은 세계 2위, 닭고기와 새우의 수출량은 5위 안에 든다. 이슬람교도의 비율이 높은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할랄 식품을 9번째로 많이 수출하고 있기도 하다. 즉석 식품의 판매량도 세계 11위를 자랑한다.

식품 업계의 수익은 태국 전체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작년 총 식품 수출액은 무려 330억 달러에 달했다. 태국에서는 식품을 처음 생산한 농장부터 가공 공장까지, 모든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태국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유기농 태국 쌀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앱, tracethai.com을 만들기도 했다. 올해 미국 농무부에서는 “식품 가공 분야가 잘 발달되어 있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품질 관리와 기준을 가진 태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농산물 제공 국가 중 하나”라고 전했다.

다국적 식품 대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스위스의 네슬레(Nestlé), 미국의 카길(Cargill), 켈로그(Kellogg’s), 맥코믹(McCormick), 일본의 아지노모토(Ajinomoto)를 비롯한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태국에 크게 투자하고 있다.

게다가 태국은 세계 곳곳의 기술 중심적 식품기술 기업가, 일명 ‘아그로프러너(agro-preneur)’들의 허브이자 자금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2016년에는 방콕에 위치한 다국적 식품가공업체인 타이 유니온 그룹을 비롯한 태국 유수의 식품 기업들과 유명 지역 농기업, 베타그로(Betagro)가 태국 정부 기관 및 대학들과 손을 잡고 푸드 이노폴리스(Food Innopolis)를 설립했다. 방콕의 태국 사이언스파크(Thailand Science Park)에 위치한 푸드 이노폴리스는 식품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 개발, 혁신 허브다.

작년에는 타이 유니온 그룹이 태국의 국립혁신기관(National Innovation Agency) 및 방콕 마히돌대학교(Mahidol University)와 함께 스페이스에프(Space-F)를 설립했다. 스페이스에프는 신생 기업을 위한 인큐베이터이자 액셀러레이터로서 지금까지 태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독일, 노르웨이, 인도, 싱가포르의 많은 스타트업을 끌어들였다. 뒤이어 베타그로, 거대 주류 회사인 타이베브(ThaiBev), 세계적 회계 법인인 딜로이트(Deloitte)가 스페이스에프 파트너십에 합류했다. 타이 유니온 그룹은 3천만 달러 규모의 벤처캐피털 기금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축산업을 대신해 지속 가능하고 영양이 풍부한 곤충 단백질을 개발하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플라잉스파크(Flying Spark)가 이 기금의 투자를 받았다.

타이 유니온 그룹 글로벌 혁신 센터의 식품 전문가들은 소비자 인사이트와 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신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식품 기술을 둘러싼 열풍이 거세진 배경에는 아시아의 혁신 허브를 목표로 하는 정부의 타일랜드 4.0(Thailand 4.0) 전략이 있다. 세계의 주방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태국 정부는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첨단 식품가공을 선택해 지원하기로 했다. 태국 투자청(BOI)도 이 부문에 뛰어드는 투자자들을 위해 최대 8년간 기업 소득세를 면제해 주거나 핵심 직원과 그 가족이 최대 4년간 취업 허가서 없이도 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스마트 비자’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장려책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태국 투자청이 제공하는 인센티브와 지난 수년간의 지원 정책에 대해 태국과 전 세계의 식품 기업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투자청에는 2019년 1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지난 18개월 동안에만 식품 가공 및 음료 제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신청이 116건이나 쏟아졌다. 이들 투자액은 총 188억 바트(약 6억 달러)에 달한다.

도쿄에서 출발해 지금은 총 24개국에서 운영되는 111년 역사의 식품 기업, 아지노모토는 첫 해외 공장을 태국에 설립했다. 1960년 문을 열고 직원 90명으로 글루탐산모노나트륨을 제조하기 시작한 이 공장으로 아지노모토는 방콕 정부의 지원을 받은 첫 번째 해외 투자자가 되었다. 현재 아지노모토는 태국에서 11개 공장을 운영하며, 직원 수는 7천여 명에 달한다. 생산 제품도 인스턴트 국수, 운동 선수들을 위한 아미노산류 제품, 캔 커피, 교자 만두와 일본식 닭 튀김인 가라아게를 비롯한 가공 및 냉동 식품, 태국식 양념 등으로 확대되었다. 100명의 태국 및 일본 기술자들이 근무하는 타이푸드 테크놀로지 센터(Thai Food Technology Center)라는 이름의 연구개발 시설도 운영한다.

아지노모토 타일랜드(Ajinomoto Co. (Thailand) Ltd.)의 회장, 히로하루 모토하시(Hiroharu Motohashi)는 “태국은 뛰어난 기술을 가진 훌륭한 공장 근로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제도 매우 안정적이고 정부 지원까지 제공된다”면서, “원재료가 풍부하고 양질의 자원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모토하시 회장은 태국이 위치상 6억 5천만 명의 소비자를 가진 무역 집단, 아세안 경제 공동체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태국은 최고의 투자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산물의 42%를 미국에서, 30%를 유럽에서 판매하는 타이 유니온 그룹도 수십 년간 투자청의 지원을 받았다. 대표적 사례가 신기술 개발을 위해 2016년 방콕에 설립한 글로벌 혁신센터(Global Innovation Center)에 대한 지원이다. 티라퐁 타이 유니온 그룹 회장은 “투자청은 태국 최고의 투자 지원 기관”이라면서, “우리는 태국의 미래, 태국 식품 산업의 미래를 믿는다. 세계 시장의 기회를 믿는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특히 혁신과 지속가능성 분야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매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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