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미니냉장고에 웬 백신? 병원 절반 '물 백신' 가능성

신성식 2020. 10.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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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병의원 수두백신 보관 실태보고서
서울의 한 병원에서 시민이 독감예방접종 주사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한 민간의료기관은 식당용 냉장고에 백신을 보관한다. 냉장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 기준치(2~8도)를 넘을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수두 백신의 역가(力價·약효를 나타내는 지표)가 기준치의 10분의 1 밑으로 떨어졌다. 백신 약효가 의심을 받을 정도다.

보건소와 병·의원에서 사용하는 백신 보관용 냉장고가 의료용이 아닌 데가 많고, 이로 인해 적정 온도 유지가 힘들어 백신의 약효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물 백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질병관리청이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에게 제출한 '국내 생백신의 콜드체인 유지관리 현황분석 및 개선방안(2019, 오명돈)' 정책연구용역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백신을 보관하는 냉장고 온도를 조사한 결과, 적정온도(2~8도)가 유지된 냉장고가 보건소는 38.5%, 민간의료기관은 2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질병청이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작성했고 서울대병원 오명돈 감염내과 교수팀이 조사를 수행했다. 지난해 2월 질병청에 보고됐다.

오 교수팀은 2018년 7월~2019년 2월 2개 지역의 보건소 38곳, 민간 의료기관 2200곳의 백신 보관 냉장고를 조사했다. 보건소는 32곳(84.2%), 의료기관은 559곳(25.4%)만이 의료용 냉장고를 사용했다. 나머지는 가정용·업소용·기숙사용 미니냉장고·창고형 등을 사용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의료용 또는 특수냉장고를 우선 쓰되 이게 어려우면 독립형 가정용 냉장고를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1인용 냉장고나 기숙사용 소형 냉장고는 절대 쓰지 말라고 한다. 한국 식약처는 의료용·가정용·업소용을 허용한다. 기숙사용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 교수팀은 보건소 39곳, 민간의료기관 47곳 냉장고의 2주 간 온도 변화와 수두 백신의 바이러스 함량을 측정했다. 냉장고가 2주간 지속적으로 2~8도를 유지하는 데는 보건소 15곳(38.5%), 의료기관 11곳(23.4%)에 불과했다.

한 민간의료기관은 2주간 8도 넘은 때가 훨씬 많았다. 2주 평균 8.9도였고, 최고 11.7도까지 올라갔다. 다른 민간의료기관은 2주 내내 9도(평균 9.5도)를 넘었다. 어떤 보건소 냉장고는 두 차례 기준을 초과했고 한 번은 14.8도까지 치솟았다.

이런 식으로 분석한 결과, 온도 편차가 크거나 적정온도를 벗어난 횟수가 많은 문제의 보건소가 11곳(28%), 민간 의료기관이 23곳(49%)이었다. 보건소 13곳, 민간의료기관 12곳은 1회 이상 기준을 벗어난 적이 있었다.

오 교수팀은 문제의 의료기관에 보관 중인 수두 백신의 역가를 조사했다. 역가는 바이러스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나타내며 적정량이 있어야 약효가 있다고 판단한다. 역가 기준치가 2000 pfu/0.5mL를 넘어야 정상인데 어떤 민간의료기관의 백신은 178 pfu/0.5mL에 불과했다. 이 병원 냉장고는 업소용, 2주 평균온도는 9.5도였다. 다른 병원 두 곳은 역가가 각각 911 pfu/0.5mL이었고, 냉장고 평균 온도가 각각 10.9도, 9.4도였다.

오명돈 교수는 "역가가 기준보다 낮으면 약발이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신 효과가 작거나 오래 가지 않는다. 같은 로트번호(제조번호)의 백신은 역가가 같아야 하는데, 다른 경우가 있었다. 공장에서 의료기관까지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질병관리본부(현재의 질병청)이 의료기관을 방문해 적정 온도 유지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97~98%의 의료기관이 '매우 잘함' 또는 '잘함'으로 평가했지만 (이번 조사에서) 보건소 냉장고의 38.5%, 민간 의료기관 냉장고의 23.4%만이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이 연 2회 자체 점검하고 연 1회 당국이 방문 점검을 하지만 연속 온도를 측정하지 않아 콜드체인 평가에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팀은 "가정용이나 상업용보다 비교적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의료용 냉장고 사용을 권장하고 원격 온도 모니터링 장치를 이용해 외부에서 실시간으로 온도 유지 상태를 확인해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백신이 의료기관에 오기 전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어떤 의료기관은 평균 온도가 7.5도를 유지했으나 백신의 역가가 280 pfu/0.5mL에 불과했다. 평균 온도가 4.4도인 의료기관 역시 역가가 178 pfu/0.5mL였다.

오 교수는 "보건소에 입고되기 전에 역가가 낮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차광(빛을 막음)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일 수도 있다. 온도와 역가의 관계,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생산에서 의료기관 보관까지 모든 과정을 점검해 백신 유통 시스템을 현대화해야 한다. 사물인터넷(IOT)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영 의원은 “독감백신 관리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있는 가운데 백신의 유통 과정 뿐만아니라 접종기관에서 적절하게 관리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백신 제조 시점부터 환자 접종 직전까지 안전한 콜드체인 시스템 지침이 마련되어야 안심하고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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