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실수로 물 대신 소주 마셨다"..도주하고 사주하고 '황당한 변명'까지 늘어놓은 경찰

사정원 2020. 10. 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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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오후 11시 25분쯤 충남 공주시의 한 주점 앞.

이곳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신 경찰공무원 A(52) 씨는 귀가를 위해 자신의 승용차 운전대를 잡았다. 이후 그는 약 400m 정도를 운전하던 중 도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왕복 6차로 도로의 중앙분리대는 심하게 훼손됐고, A 씨는 갈비뼈 골절 등의 부상을 입었다.

현직 경찰이 음주운전을 한 것도 큰 문제였지만 사고 후 A 씨가 보인 행동은 더 가관이었다. A 씨는 현장에 온 견인기사에게 “자신의 차량을 견인하라”고 지시한 후 경찰에 신고하거나 구급차를 부르는 등의 수습을 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했다. 당시 사고현장은 중앙분리대가 훼손돼 그 일부가 도로 쪽에 쓰러졌고 각종 비산물이 주변에 흩어져 다른 차들의 운행에 위험과 장애를 초래할 수 있었다.

약 160m 가량 걸어서 현장을 빠져나온 A 씨는 택시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갔다. 이어 A 씨는 도착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고 또 다른 택시를 잡아타고 다른 병원에 갔다. A 씨가 병원을 이곳저곳 옮긴 것은 시간을 벌어 음주운전 행각을 감추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주변 목격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고현장 인근 CCTV 영상을 분석하고 동선을 추적, 공주 시내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A 씨를 찾아냈다. 이어 경찰은 A 씨의 혈액을 채취, 음주 여부를 측정했고 조사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0.173%로 나타났다. 이는 면허 취소수준(0.08%)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누구보다 엄정하게 법질서를 준수해야 할 경찰인 A 씨는 음주사고 도주도 모자라 증거인멸까지 사주했다.

A 씨는 사고 이튿날 술을 마신 주점 업주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A 씨의 전화를 받은 B 씨는 CCTV 관리업체 직원을 불러 실제로 CCTV 영상을 삭제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A 씨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며 음주운전 혐의를 부인했고 A 씨와 함께 있었다는 지인들도 “당시 A 씨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 씨가 음주운전을 한 것으로 보고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를 적용,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A 씨가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지인들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지난 4월 29일 구속했다. A 씨는 당시 검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고 다만 사고 직후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실수로 소주 1병을 마셨다”는 황당한 해명을 하기도 했다.

결국, A 씨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과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됐고, 대전지법 공주지원 이지웅 판사는 A 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선고 직후 경찰은 A 씨를 해임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경찰공무원인 피고인은 검찰에 구속되기 전까지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을 하면서 범행을 부인하는 등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며 “여기에 피고인은 증거 영상을 삭제하라고 지시하는 등의 형태를 보여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이 경찰공무원으로서 그동안 성실하게 근무해 온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에게 부양가족이 있는 점, 주변의 많은 지인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1심 판결 후 A 씨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불복해 항소했고 대전지법 형사항소3부(부장판사 김성준)는 1심과 똑같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음주운전 사실을 감추기 위해 관련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허위 진술을 종용하거나 중요한 증거를 없애도록 해 수사에 상당한 지장을 줬다”며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정원 기자 (jws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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