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차라리 윤석열을 잘라라

양권모 편집인 입력 2020. 10. 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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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분명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연속된 수사지휘권과 감찰권 행사, 여당 의원들의 파상 공세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다. ‘정무 감각이 없다’던 윤 총장은 대검 국감에서 능란하게 ‘정치’를 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소환해 사퇴 압박을 일축한 대목에서 도드라진다. 윤 총장은 청와대가 정당성을 부여한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위법’ ‘부당’의 딱지를 붙였다. 그러면서 거취 문제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와 쐐기를 박았다. “임명권자인 대통령께서 임기 동안 소임을 다하라고 하셨다. 지난 총선 이후 민주당에서 사퇴하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도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고 말씀을 전했다.” 현직 대통령의 비공식 메시지를 TV로 생중계되는 국감 현장에서 공개해 사퇴론을 되받아친 셈이다. 이렇게도 돌려 말했다. “거취 문제는 아직 임명권자의 말씀이 없다. 압력이 있더라도 할 소임을 다할 생각이다.” 임명권자의 ‘말씀’이 없는 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만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쉽지 않다.

‘대통령 의중’까지 공개했지만 물러설 추 장관이 아니다. 추 장관은 엊그제 법무부 국감에서 “수사지휘가 위법이라고 확신한다면 직을 내려놓으면서 검찰조직을 지키겠다고 해야 한다”며 대놓고 사퇴를 거론했다.

양권모 편집인

실제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자 김종빈 검찰총장은 직을 던졌다. “조직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당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언론 브리핑을 했다. “검찰총장 임기가 보장돼 있기 때문에 검찰이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확보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검찰총장이 임기를 다하지 않고 그만두는 것은 검찰의 권위나 신뢰, 검찰권 독립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이다.” 어쩌면 윤 총장이 믿는 구석은 문 대통령의 이 순수한 ‘원칙’일 것이다.

검찰개혁은 검찰권 남용 방지를 위한 ‘민주적 통제’와 정치적 중립을 위한 ‘검찰 독립’을 양 날개로 한다. 속도를 내고 있는 검찰권 축소에 비해 검찰 독립의 가치는 찌그러지고 있다.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을 찌그러진 검찰 독립의 보루로 문 대통령은 여기는 듯하다. 그러면 여권의 사퇴 공세와 대통령의 ‘임기 보장’ 메시지가 동시에 발화되는 이율배반이 이해될 수 있다.

검찰총장 임기제는 1988년 여소야대 국회에서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이후 21명의 검찰총장 중 임기를 모두 채운 경우는 8명뿐이다. 검찰총장이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경우는 대통령이 ‘불신임’하거나 법무부와의 충돌 등으로 일선 검사들을 제대로 지휘할 수 없을 때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검사와의 대화’에서 “현재의 검찰 지휘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천명했고, 당시 검찰총장은 즉각 옷을 벗기도 했다.

지금 윤 총장에 대한 신임은 1할도 남아 있지 않아 보인다. 포괄적 수사지휘권 발동 자체가 검찰총장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점을 낙인하는 조치다. 검찰총장이 ‘야당을 위해 공작 수사를 지휘한다’고 의구하는 판이다. 윤 총장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다면, 인사권도 지휘권도 죄다 몰수해 ‘식물총장’을 만들지 않았을 터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은 임계선을 넘었다. ‘상급자’ ‘부하’ 시비까지 벌어질 정도로 아귀다툼이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막가는 대립 속에서 형사사법체계가 흔들리고, 국가시스템이 왜곡되고, 검찰제도가 뒤틀리고 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난맥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임명권자인 대통령뿐이다. ‘임기제’의 명분만을 앞세우기에는 상황이 너무 난장이다. ‘임기 보장’은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수개월째 지속된 비정상적인 ‘추·윤 갈등’으로 검찰 중립의 가치가 형해화되고 있다. 검찰조직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정치검찰’의 양태는 악성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치 ‘윤석열 제압’이 문재인 정부의 전부인 것처럼 비치는 형국이다. 그토록 불신하고 상종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권력기관 개혁, 수사지휘권까지 동원해 밀어내려 할 게 아니다. 검찰개혁의 적폐로 선언하고, 그만 물러나라고 ‘정치행위’를 해야 한다. ‘불신임’을 공개 천명하는 방법도 있다. 역설적으로 윤 총장이 환기한, ‘임명권자의 말씀’만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양권모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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