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약용 유배지에서 나라 앞날 걱정한 김동연
방문록에 "국가 앞날 생각한다" 적어
정계 진출 가능성 관심 속 묘한 뉘앙스
확인 요청에는 "앞서가지 말라" 선그어
벼베기, 전어잡이 등 농어촌 탐방 이어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 정약용 유배지 중 한 곳인 사의재(四宜齋)를 찾아 방문록에 이처럼 적었다. 김 전 부총리의 향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정치 참여 가능성에 대한 거듭된 질문에 대해 이날도 김 전 부총리는 "앞서가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김 전 부총리가 이날 방문한 사의재는 다산이 강진에 유배됐을 때 4년간 기거한 주막이다. 다산은 사의재를 시작으로 다산초당 등 강진에서만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역작을 집필했다. 김 전 부총리는 이날 사의재 대청마루에 앉아 자신이 설립한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관계자들과 함께 다산의 뜻을 기렸다.
김 전 부총리는 이어 "(위정자들이) 다산의 말을 귀담아 듣고 행동에 옮겼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지만 결국 그 이후 70여년이 지나 조선이 쓰러졌다"며 "나라가 (지금처럼) 시끄러울 때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좌표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가지 구조적인 문제들을 고쳐 나가야 하는 시점인데, 서로 싸우고 나라가 쪼개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김 전 부총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옛 사의재를 재연한 바로 옆 주막 주인이 기념글을 남겨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이에 흔쾌히 응하면서 적은 글이 바로 국가 앞날을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주막 안의 다른 손님이 이 글귀를 보고는 "김 전 부총리가 아무래도 정계에 진출하려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 현장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리를 먼저 일어선 김 전 부총리는 동행자들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고는 "지금은 누가 뭐 할지를 따질 때가 아니다. 다 같이 각성하고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되받았다. 정계 진출 여부에 대한 세간의 관심에 대해 재차 확인을 요청하는 기자의 물음에도 김 전 부총리는 "앞서가지 말라"고 답했다.
첫날 보성군 벌교읍에서는 벼농사 추수 체험을 했다. 우리나라 유기농 벼농사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고(故) 강대인 농부 가족들이 일구고 있는 우리원 농장에서였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5월 말에 이 곳을 찾아 모내기 체험을 했었다. 이날 벼베기는 당시 고 강대인 농부 딸인 강선아 우리원 대표가 "추수할 때도 꼭 와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누렇게 익은 벼를 낫으로도 베고, 콤바인도 직접 몰았다. 이어 청년농업인연합회(청연)에서 활동하는 청년 농부들과 간담회의 시간도 가졌다.
김 전 부총리는 이날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들고 온 청년 농부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으며 격려했다. 경북 영주 사과와 전남 무안 도라지배즙, 전남 장성 새싹삼 등이었다. 청년들은 김 전 부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홍보에 활용하기로 했다.
김 전 부총리는 밤 9시가 넘어 작은 배를 타고 전어잡이에도 나섰다. 밤 늦게까지 이어진 작업 끝에 김 전 부총리는 온몸이 땀과 바닷물로 범벅이 됐지만 표정은 밝았다. 이희안 어촌계장이 "환경 오염이 심해져 전어잡이가 옛날 같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날 만큼은 그물에서 기대 이상의 전어를 건져 올린 덕분이었다. 적어도 이날 김 전 부총리는 벼베기와 고기잡이를 하면서 농부와 어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수확할 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 같았다.
강진에서는 전남생명과학고(옛 강진농고) 학생·선생님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이 학교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졸업한 학교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김 전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학창 시절 겪었던 어려움과 해외 유학 시절 닥쳤던 삶의 회의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소개하면서 이 곳 학생들도 '유쾌한 반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 학교를 나온 한 젊은 교사는 김 전 부총리에게 요청에 가까운 부탁을 해 눈길을 끌었다. "김 전 부총리님은 상고 졸업을 앞두고 은행에 미리 취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생명과학고를 비롯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갈수록 취업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농업 관련 기관이나 기업의 농업계 고교 졸업생 채용 실적이 형편 없습니다. 농업에 큰 애정을 갖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자부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도록 취업 여건을 개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 전 부총리는 "선생님의 의견을 명심하겠다"며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 여건이 좋아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화답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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