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달새 50곳 정도가 문닫았네요"..착한 건물주는 없었다

이비슬 기자 2020. 10. 2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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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점포 줄폐업..자영업자 호소에도 월세 '요지부동'
'착한 임대료' 운동 잠시뿐..건물주 "땅값 떨어질라" 버티기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 관광객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2020.10.27/뉴스1 © 뉴스1 이비슬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일하다가 나가서 직접 세어보니 인사동 네거리에서만 최근 한 달 사이 50곳 정도가 문을 닫은 거 같네요.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가게를 접는 곳이 많습니다."

지난 27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의 한식점에서 만난 김모씨(74)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지난 15년간 인사동에서 장사를 하면서 이렇게 폐업 안내문을 많이 본적이 없다고 했다. 김씨는 "완전히 날벼락을 맞은 수준"이라며 "매장 월세 부담이 커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코로나 9개월 "올 것이 왔다"인사동 거리 폐업·임대·점포정리 속출

이날 오후 찾은 인사동 거리는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처의 후유증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중이었다. 최근 한 달 사이 거리 곳곳에 폐업정리 안내를 내건 매장이 속출했고 약 1.5㎞ 거리 곳곳에 공실은 어림잡아도 20곳이 넘었다. 외국인 관광객 손님 비율이 70%를 넘는 인사동은 9개월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대표 관광 명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쓰러져가고 있었다.

인사동 카페골목 초입에서 인사동 네거리 끝을 남북 방향으로 잇는 약 1.5㎞ 거리엔 지나다니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간혹 직장인이나 소규모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이 보였지만 대부분 음식점과 카페엔 손님이 없었다. 점원들은 초점 없는 눈으로 판매대에 기대어 하릴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22년간 전통 과자를 판매한 이영석씨(70)는 "인사동 길 전체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으로 가득 차 걷지도 못했을 때가 있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저 멀리 600m 앞 대로에 있는 차 종류가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라고 혀를 찼다.

손님 발길이 끊긴 인사동 거리엔 폐업 또는 임대 안내문을 내건 점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종류도 의류·도자기·분식·닭갈비집·카페를 포함해 다양했다.

특히 월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물 2층 이상과 작은 골목길에 있는 매장도 상당수가 비어 있었다. 큰길가 1층 점포에도 손님이 없는 상황인데 이런 곳까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질 리 없었다.

회사가 인사동과 가까워 자주 찾는다는 직장인 B씨(47)는 "춘천에서 아주 유명한 닭갈비집 분점을 자주 이용했는데 오늘 점심에 가보니 문을 닫았더라"며 "맛집이란 기억이 남아있던 초밥집도 장사를 접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상공인 분들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오늘처럼 피부에 와닿은 적이 없었다"며 "그제야 주변에 문 닫은 상점들이 많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 상가에 폐업·임대 안내문이 붙은 모습. 2020.10.27/뉴스1 © 뉴스1 이비슬 기자

◇"땅값 떨어질라"…점포 빠져나가도 월세 못 낮추는 건물주

인사동은 서울에서도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인사동 네거리 자영업자들은 이곳에 나열한 가게 월세가 평균 600만원대라고 입을 모은다. 인근 유명 화장품 프랜차이즈 매장의 경우 월세가 무려 12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인사동 상권 일부 건물주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매장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월세를 감면하는 '착한 임대료' 운동에 동참했지만, 효과는 잠시뿐이었다고 했다.

앞서 한정식집에서 만난 김모씨는 "착한 임대료 운동이 한창일 당시 나도 '임대료를 줄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임대료 감면을 받은 상인들도 일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하반기 들어선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요지부동인 임대료에 더는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매장도 속출했다. 인사동 거리 곳곳엔 점포가 빠져나간 뒤에도 건물주가 임대료를 낮추지 않아 빈 상태로 장기간 머물러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인사동에서 40년간 전통 공예품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권모씨(62)도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8년간 운영했던 매장에서 100m 떨어진 다른 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권씨는 "월세를 한 번 감면해주면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건물주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라며 "월세 때문에 매달 적자를 보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를 1단계로 완화한 이후 인사동 유동인구가 늘긴 했지만 당장 매출에 가시적인 효과는 없다는 반응이다.

인사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모씨(34)는 "거리 두기 1단계 조치 이후 유동인구가 1.5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며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이 전보다 늘어났을 뿐, 지난해 매출을 회복하지 않았다. 내년까지도 힘들게 버텨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사동 거리의 상인들은 국내 상황만큼이나 해외의 코로나19 사태가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던 C씨(61)는 한 외국인 관광객을 바라보며 "저렇게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던 (관광객들의) 모습이 그립다"며 "관광객이 몇 년 후에 돌아오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버텨야 할 텐데 걱정이 크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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