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유관순 열사는 사진 속 누구일까?"

송인걸 2020. 10. 28. 15: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어린 유관순 열사가 색 바랜 흑백사진 속에 있을까?" 댕기 머리, 한복 차림의 여학생 47명이 1915년 7월 어느 날, 충남 공주의 벽돌로 지은 현대식 건물 공주학교(명선여학당)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민정희 충남역사박물관장은 "당시 단체사진 촬영은 큰 행사여서 재학생 전원이 참석했을 것이다. 유 열사는 집이 천안이어서 기숙사에서 생활했을 것이므로 결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 열사가 사진 속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년 전 충남' 사진전 개막
1915년 공주여학교 단체사진 발굴 전시
유관순 열사 재학 중이던 시기와 겹쳐
사진전 열고 있는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유 열사 추정인물 있지만 확정 어려워"
1915년 7월 공주학교 여학생과 교사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앞에서 세번째 줄, 오른쪽 세번째 여학생이 유관순 열사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915년 7월 공주학교 단체사진에는 교사 3명도 있다. 뒷줄 왼쪽 두번째 앨리스 샤프 선교사는 1914년 유관순 열사를 이 학교에 입학시키고 1916년 이화학당 편입을 추천했다.

“어린 유관순 열사가 색 바랜 흑백사진 속에 있을까?” 댕기 머리, 한복 차림의 여학생 47명이 1915년 7월 어느 날, 충남 공주의 벽돌로 지은 현대식 건물 공주학교(명선여학당)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다양한 나이대 학생들 행색은 수수하지만, 눈빛은 100년이 지났어도 똘망똘망하다. 제일 뒷줄에는 선생님 세분도 자리하고 있다. 독립지사인 이규갑·이애라 부부와 감리교 여성해외선교사회 소속으로 공주학교를 세운 앨리스 샤프(한국 이름 사애리시, 1871~1972)다.

이 단체사진은 <이야기 사애리시>를 집필한 임연철 박사가 지난해 미국 드루대 감리교 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사진들 가운데 하나다. 사진들에는 샤프 선교사 부부가 주로 활동한 충남 공주의 백년 전 모습들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남편인 로버트 샤프(1872~1906) 선교사는 1905년 공주에 명설학교(영명중·고 전신)를 설립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박병희)은 28일 ‘충남인의 100년 전 생활상’ 특별전을 열어 임 박사가 발견한 사진을 전시했다.

충남 공주에 1905년 명설학교를 세운 로버트 샤프 선교사(앞줄 왼쪽 두번째)가 학생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태극기가 걸린 점으로 미뤄 1906~1910년 사이로 추정된다.

공개된 120여장의 사진 가운데 이 단체사진에 눈길이 머무는 이유는 여학생들 가운데 어린 유관순 열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1902년 태어난 유 열사는 1914년 공주영명학교에 입학해 공부했다. 사진이 촬영된 1915년은 유 열사가 이 학교에 재학하던 시기다. 유 열사는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편입한다. 유 열사의 영명학교 입학과 이화학당 편입을 추천한 이가 바로 앨리스 샤프 선교사다.

공주 영명학교의 남학생 기숙사 모습, 돗자리가 깔린 작은 방에 책상 3개가 놓여 있고 학생들이 버선발로 잠을 자고 있다.

민정희 충남역사박물관장은 “당시 단체사진 촬영은 큰 행사여서 재학생 전원이 참석했을 것이다. 유 열사는 집이 천안이어서 기숙사에서 생활했을 것이므로 결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 열사가 사진 속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앞에서 세번째 줄, 오른쪽 세번째 여학생이 유 열사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유관순 열사 연구가와 전문가들도 수형복을 입은 유 열사의 얼굴과 사진 속 여학생들의 얼굴을 대조한 뒤 ‘추정 인물은 있으나 확정해 공개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10대 중반에는 얼굴과 체형 변화가 커서 사진만으로 특정 인물을 지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병희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은 “누구나 마스크를 착용하면 사진특별전과 함께 열리는 국화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드는 대로 드루대에 연구진을 파견해 유 열사의 흔적을 찾고 근대 충남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추가로 찾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진전에는 근대 충남의 도청 소재지였던 공주의 중심지와 시장, 생활상 등 옛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전시돼 공주시민의 높은 관심을 모았다.

재봉틀, 요리 실습을 하는 여학생들.
납땜 실습을 하는 남학생들.
재봉틀을 진 지게꾼.
‘19’ 번호판을 단 여객화물 자동차가 공주 시내에 도착하자 남녀노소가 차 구경하러 몰려 나왔다. 1921년 번호판이 세자리가 되기 전까지 전국의 여객화물 자동차는 70~80대에 불과했다.
공주 선교사촌 언덕에서 바라본 공주 전경, 멀리 금강과 연미산이 보이고 공산성의 쌍수정, 진남루 옛 사창지에 들어선 농업학교도 보인다. 앞 왼쪽 집이 샤프 선교사 가옥이다.
공주거리 풍경.
공주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앞 금강에 나룻배가 떠있다.
충남 공주 경천장날 풍경.
농민이 소 발굽에 편자를 박고 있다. 근대기 소는 농사를 짓고 물건을 이동하는 중요 수단이었다.
경천장날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이가 방갓을 쓴 이에게 닭을 팔고 있다.
한 여성이 장터에서 전을 부치고 있다.
무당이 굿을 하고 있다.
농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사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임연철 박사 제공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코로나19 기사 보기▶‘라임·옵티머스 의혹’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