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해임' 청원 21만..지금껏 이런 경제부총리는 없었다

조현숙 2020. 10. 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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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해임을 강력히 요청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동의가 28일 21만 명을 넘어섰다. 경제사령탑에 대해 수십만의 국민이 ‘해임하라’며 직접 나선 것은 홍 부총리가 처음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의에 답변하며 눈을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해임 청원은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을 3억원(한 종목당 주식 보유액)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홍 부총리가 고수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단순히 3억원 기준만 가지고 그 많은 사람이 해임 동의를 했다고 봐선 안 된다”고 단언한다. “경제 실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개각 요구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8월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김현미 국토통부 장관이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도대체 홍 부총리는 어떤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까.

첫 번째는 기대에 대한 배신이다. 직제에 따라 경제부총리나 기재부 장관이 경제 정책을 총괄하면서도 ‘전문성에 기반한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 리더십’이란 궤도는 유지했다. 정치적 입김과 비전문적 훈수에 대한 소신 대응은 기본이었다. 2010년 12월 당시 윤증현 기재부 장관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맞붙은 ‘예산 파동’이 대표적이다. 여당 중점 예산을 기재부에서 삭감한 것을 두고 안 대표가 “우리가 바보냐, 너희가 예산권이 있느냐”며 고성을 질렀지만, 윤 장관 역시 “유감이다”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결국 윤 장관은 예산안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지급, 재정 관리 등에서 여당에 줄곧 밀리기만 했다. 지난 5일 내놓은 재정준칙은 현 정부 임기 이후로 적용 시기를 미루면서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지금 홍 부총리 위상을 보면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청와대나 여당에서 요구하는 것을 집행하는 거로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커지는 시장과의 온도 차도 부총리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요인이다. 홍 부총리는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1.9%)에 대해 27일 “회복 궤도에 진입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V자’ 반등 판단은 이르다”는 입장이다. 전세난과 고용 통계 등과 관련해서도 홍 부총리는 체감 경기와 동떨어진 일부 수치를 강조하는 발언을 거듭하며 여론이 더 등을 돌리게끔 했다.

임대차 3법과 맞물려 전세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사태가 극심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홍 부총리는 ”전세가 상승 폭이 둔화되고 있다”(14일), “전세 실거래가 늘었다”(18일) 등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홍 부총리 본인이 ‘전세 난민’이 될 처지란 사실까지 알려진 터라 여론 비판과 조롱의 강도는 더 컸다. 코로나19로 인해 올 9월 취업자 수가 전년 대비 39만 명 급감했다는 통계가 발표된 지난 16일에도 홍 부총리는 “10월부터 고용시장 회복세가 재개될 것”이라며 예의 낙관론을 펼쳐 비난 받았다.

기획재정부 유튜브에 출연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튜브 캡처]

작은 그림에만 매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부총리는 경제 관련 주요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정책 발표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2개 회의를 합쳐 진행하는 일도 벌어진다. 기재부가 아닌 다른 부처의 주요 정책도 홍 부총리의 ‘입’을 통해 알려진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를 통한 홍보도 열심이다. 지난 24일엔 재정준칙에 대한 ‘직강’ 글 5개를 페이스북에 한꺼번에 올리기도 했다. 시장 영향을 우려해 SNS 활용을 자제하는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등 다른 주요국 재무장관과는 대조적이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공기업정책학과 교수는 “홍 부총리가 매일 정책 발표를 도맡아 하다시피 하고 있다”며 “그런데 정책 간 충돌하는 것도 많고, 발표한 정책이 며칠 안 돼 바뀌는 일이 너무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결정적인 불신은 임명 초기부터 이어진 ‘패싱’ 논란에서 나온다. 지난 7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대해 홍 부총리가 해제 검토 가능성을 언급하자, 다음날 바로 국토교통부 차관이 “검토 안 한다”고 부인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벨트는 계속 보전하겠다”고 정리하며 일단락됐다. 부동산 정책은 물론 세제 개편안, 각종 거시ㆍ재정 정책에서도 홍 부총리의 주장이 묵살되거나 번복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한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남기 부총리. 연합뉴스


‘경질설’ ‘패싱’ 논란이 일 때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잘해달라”(3월 13일), “힘 있게 추진하라”(7월 21일) 등 홍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연강흠 교수는 “청와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에 전 세계 유례없이 경제위기를 잘 넘긴 부총리라고 추켜세우고 있지만 잇따른 일자리ㆍ세금ㆍ부동산 등 실책에 사람들이 이를 얼마나 납득할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대통령이 거듭 재신임 의사를 밝혀줘야 할 만큼 홍 부총리의 위상이 불안하다는 역설적 해석도 나온다. 처음부터 인사 구도 자체가 잘못 짜여서 생긴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제부총리는 거시·미시 정책 모두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통솔해야 하는 자리”라며 “개성 강한 정치인 출신을 산하 경제부처 장관에 앉혀놓고, 정작 부총리는 조율에 한계가 있는 인물로 임명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국 조율을 하지 말란 얘기로, 홍 부총리 개인의 한계도 있지만 임명권자의 실책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권은 5년 임기가 지나면 끝나지만, 경제는 그렇지 않다”며 “홍 부총리나 임명권자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악화하는 경제와 함께 국민 여론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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