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장악과 검찰 개혁[광화문]

진상현 부장 2020. 10. 29.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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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봄날에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대통령께서) ‘앞으로 두 군데는 전화를 안 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에요?’ 했더니 ‘검찰총장 하고 KBS 사장 입니다.’ 하셨어요. (중략) (노 대통령 퇴임 후인) 2008년 10월에 봉하에 가서 노 대통령께 맨 처음 드린 말씀이 ‘사실은 2003년 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약속을 지켜 주셨습니다’ 하니, ‘아 그랬죠’ 하면서 웃으시더라구요” 2017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의 故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회고로 시작한다.

진보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뉴스타파’가 제작한 이 영화는 이어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 KBS와 MBC를 중심으로 한 공영방송을 보수 정권이 어떻게 장악하고, 망가뜨렸는지를 ‘피해자’의 시각에서 보여준다. 대주주 이사회 등을 통해 직간접적인 압박으로 경영진을 교체하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신임 경영진들을 통해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 PD들을 물갈이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그 사이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던 많은 언론인들이 파업에 참여하고 해직 당했다.

피해자라는 한쪽 시각에서 바라본 기록물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당시 언론인들이 겪었을 고초와 절박감을 되새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기존 보수 기득권층에 대한 현 정권의 분노가 어떻게 형성됐고, 얼마나 깊은지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 개혁’이 오버랩됐다. 검찰과 언론, 분야가 다르지만 둘 다 국정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현 정부 초기 ‘사법 개혁’, ‘검찰 개혁’ 기치를 내걸었을 때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권력에 순응해 정치적인 잣대로 선별 수사를 하고 과잉 수사, 별건 수사, 강압 수사 등 인권을 유린하는 잘못된 수사 관행 등을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인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검찰 개혁’ 구호는 퇴색되고 ‘검찰 장악’ 논란이 똬리를 틀었다.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 채널A 기자의 강압 취재 사건, 무혐의로 처분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특혜 휴가’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 현 정권 인사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다루면서 ‘윤석열 검찰’에 대한 여권의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개국 공신’에서 ‘검찰 적폐’로 낙인 찍혔다. 윤 총장 자신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찐 검사’에서 정치적 목적과 ‘검찰 집단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라지 않는 ‘정치 검사’의 화신이 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수차례 인사를 통해 ‘윤 총장 사람들’은 대부분 좌천되거나 검찰을 떠났다. 검찰 내 주류 세력은 새롭게 짜여졌다. 안그래도 ‘식물 총장’ 신세에 가깝던 윤 총장은 의혹의 당사자로 몰리면서 본인과 가족에 대한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추 장관이 적극적으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공영 방송 장악과 다를까. ‘적폐’를 바로 잡는 것과 ‘적폐’의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폐’를 구분하고 선, 악을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엄격한 도덕성을 갖추고, ‘자기 이해’와 확실히 선을 긋지 않으면 기준은 흔들리기 십상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더 걱정되는 것은 이런 ‘편가르기’와 ‘솎아내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노는 분노를 낳는다. 공수가 바뀌게 되면 지금의 분노는 또다른 ‘적페 청산’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편가르기’와 일방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공분’은 문재인 정부 탄생의 초석이 됐다. 국민통합에 대한 기대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검찰 개혁 등 지금의 모습을 보면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스스로 그토록 증오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방식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마저 든다. 검찰, 언론을 정치로부터 놓아주려고 했던 ‘노무현 정부’의 초심, 그것을 잊은 건 아닌지 이제는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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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현 부장 jis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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