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덤프트럭과 함께하는 등하굣길..구평초 학생들이 위험하다

노경민 기자 2020. 10. 29. 0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형 트럭 다니는 보행로에 신호등 없는 곳도 많아
학부모들 "학교신설을" 교육부선 "학생수 기준미달"
28일 오전 부산 사하구 구평초등학교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학생들이 하차하고 있다. 2020.10.28 © 뉴스1 노경민 기자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오늘도 공장을 오가는 대형 트럭들이 아이들의 등굣길을 질주해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부산을 넘어 전국에서 가장 위험한 등하굣길로 언급되는 사하구 구평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은 연신 한숨만 내뱉었다.

지난 20일 부산시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부산 사하구을)이 구평초 인근 공업단지의 차량에 따른 학생들의 안전 문제를 거론하면서, 열악한 등하굣길 문제를 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8일 오전 <뉴스1>이 구평초 학생들과 스쿨버스를 타고 함께 등교해본 결과, 등굣길 곳곳에서 공단을 오가는 대형 차량으로 인해 교통사고 위험에 대한 우려가 여러 차례 감지됐다.

아파트 단지에서 학교 정문까지 도보로만 30분 이상 걸려 구평초는 국가 지원금을 받아 통학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버스로 이동 시 아파트 단지에서 학교 인근 버스정류장까지 10~20분가량 소요된다.

학교로 이동하는 도중 신호를 지키지 않고 속도를 내는 대형 덤프트럭부터 차선 끼어들기를 일삼는 트레일러 등 초등학교 등굣길 전체가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공장 트럭이 뿌린 미세먼지로 인해 눈과 피부가 따갑기도 했으며, 차량 경적과 공사 소음이 계속해서 귀청을 울렸다.

28일 오전 부산 사하구 구평초등학교 인근 횡단보도에서 학생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2020.10.28© 뉴스1 노경민 기자

문제는 통학버스를 탄 학생들이 학교 교문에서 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학교 입구가 비좁아 버스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화물트럭이 쉴 틈 없이 다니는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스쿨버스를 타는 대부분 학생은 구평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고 있다. 구평초 전교생 545명 중 절반 이상인 296명이 이곳에서 매일 통학하고 있다.

아침 등교버스는 매일 7시45분부터 8시20분 사이에 정류장에 도착한다. 배차 시간이 이른 탓에 구평초 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초등학생들보다 더 일찍 등굣길에 나서야 한다.

3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 정모씨(40)는 "평소 오전 6시 반에 기상한다. 아침밥도 못 먹고 등교하는 학생도 많다"며 "코로나 때문에 버스를 타기 전에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해야 해 준비 시간이 더 앞당겨졌다"고 하소연했다.

구평초 교사 A씨는 "통학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교사 역시 잘 알고 있다"며 "하교 배차 시간이 정해져 있어 방과 후 교육 활동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아이들이 타는 통학버스의 사고 위험도 항상 도사리고 있다.

구평초 교사에 따르면 올해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있던 상황에서 오토바이와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구평초 인근 오르막길에서 컨테이너를 실은 차량이 뒤집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여름에는 태풍으로 인해 버스 기사의 출근이 여러 번 늦어졌고 차량마저 파손돼 '등교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교사는 당시 연락을 받지 못해 오랜 시간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기만 했던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부산 사하구 구평초등학교 인근 통학 골목길의 모습.2020.10.28© 뉴스1 노경민 기자

통학버스는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의 학생들만 담당한다. 반면에 다른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학생들은 매일 위험한 길을 도보로 등교하고 있다.

현장 안내 요원들은 이곳 학생들의 등굣길에 신호등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학생들은 대형 덤프트럭이 오가는 공장에 설치된 철제 골목을 통해 위태위태하게 등하교 하고 있다.

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취재진의 몸이 휘청이기도 해 아이들의 경우 더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일 우려가 있어 보였다.

내년 12월에는 구평초 인근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입주가 시작된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구평초 학생 수가 증가해 접촉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28일 부산 사하구 구평초등학교 거리에서 공단의 대형 트럭이 다니고 있다.2020.10.28/© 뉴스1 노경민 기자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평초는 지난 2015년부터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 e편한세상 아파트 1단지 앞에 서평초등학교(가칭)를 건립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2차례 모두 부결돼 현재 신설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홍지태 구평초 교장은 "2025년에는 통학버스를 이용하는 학생 수가 600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600명이 버스로 등교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무리한 일이다. 교육부가 '학생 수' 기준을 고집하지 말고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학교 측은 통학버스 대란을 막기 위해 내년에 버스 1대를 추가해 총 4대 운행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경태 의원은 "학생들에게 안전한 등굣길과 쾌적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선 서평초 신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버스를 타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교육부가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blackstamp@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