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국제법 전문가도 "피해자 중심·인권 관점서 강제동원 해법 찾아야"

김소연 2020. 10. 2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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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국제법 전문가 아베 고키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
개인청구권 남아있다던 일본 정부
2000년대 들어서자 입장 바뀌어
니시마쓰 소송, 보상 합의 실마리
아무런 조처 않는 게 국제법 위반
한-일 정책 결정권자 합의론 안돼
보편 타당한 인권 관점서 풀어야
일본 국제법 전문가인 아베 고키(62)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국제학). 아베 고키 사진제공.

“과거 부정의한 행위에 대한 피해자 중심의 접근은 국제적인 흐름이다. 강제동원 문제를 인권의 관점으로 인식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소중히 하면서 한-일이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 국제법 전문가인 아베 고키(62) 메이지학원대학 교수(국제학)는 30일 강제동원 배상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2년을 맞아 29일 진행한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최근 국제법의 흐름은 국가가 아닌 개인의 권리, 피해를 어떻게 배상해나갈 것인가 하는 쪽으로 크게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베 교수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라고 지적했다.

―2018년 10월30일 나온 한국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일 관계뿐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를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부정의한 행위, 특히 식민지 시대 발생한 문제와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법률적 관점에서 보여줬다는 데 각별한 의의가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아는 한 1990년대엔 일본 정부나 법원에서 강제징용 소송을 두고 ‘국제법 위반’이나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주장이 쟁점이 된 적이 없다. 협정이 있어도 국가의 권리(외교보호권)만 포기됐고, 개인청구권은 남아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피해자들이 적극 소송에 나선 이유다. 또 피해자와 화해 사례가 나오는 등 기업도 자신이 저지른 부당한 행위를 인정하고 필요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가 되면서 일본 정부는 입장을 바꿨다. 개인청구권은 인정하지만 (협정으로 해결돼) 이에 응할 의무가 없고, 재판을 아예 할 수 없다고 했다. 1990년대 일본 ‘전후보상재판’에서 원고에게 유리한 판단이 나오고 있었던 점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돌아가신 니이미 다카시 변호사의 말을 인용하면 일본 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했던 것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주체성 없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한국, 중국 등 강제동원 피해자 재판이 많이 있었다. 일본 최고재판소(한국 대법원)는 어떻게 판단했나?

“최고재판소는 2007년 4월 태평양전쟁 시기 강제 동원된 중국 노동자들이 일본 니시마쓰 건설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개인 청구권이라는 실체적 권리는 있지만 (전쟁 배상의 청구를 포기한다는 1972년 중일공동성명 등을 근거로) 재판에 호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이 일본 정부의 입장과 반드시 겹치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청구권의 실체적 권리를 강조하며 재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마주보라는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 실제 이 재판을 실마리 삼아 니시마쓰 건설은 피해자들과 화해를 했다.” (※니시마쓰 건설은 2009년 10월 사과를 표명하고 360명 피해자에 대한 보상, 기념비 건립 등을 시행했음)

— 니시마쓰 건설과 달리 기업과 화해도 못하고 일본에서 재판도 받지 못하는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오히려 최고재판소가 재판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막은 것 같다.

“부정한 행위에 대해 재판으로 호소할 권리가 막힌 것은 맞다. 일본과 한국이 체결하고 있는 국제협약인 국제인권규약(일본 1979년, 한국 1990년 비준)이 보장하는 ‘재판받을 권리’ 관점에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면 보상 등 대체 조치를 취하는 것이 국제 인권법상의 의무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은 개인 청구권의 실체적 권리도 인정하고, 재판에 호소할 길을 열어 줬기 때문에 국제인권법에 맞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놓고 한일 사이엔 국제법이 쟁점이 되고 있다. 최근 국제법의 흐름은 어떤가?

“15세기 유럽을 기점으로 시작된 국제법의 세계화는 항상 강자 우선이었다. 식민지 지배가 공공연하게 인정돼 왔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 ‘인권’ 이념이 확산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엔 국제법, 국제사회가 인권을 중심으로 법질서를 세워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 국가가 아닌 개인의 권리,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해 나갈 것인가 하는 쪽으로 크게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인권이 내거는 ‘보편성’은 국경뿐만 아니라 시간의 벽을 넘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부정한 행위와 대치가 불가피해졌다. 이때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피해의 기억이다. 강대국 중심의 국제법 탓에 침묵을 강요 당했던 ‘피해의 기억’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피해자의 목소리가 또 다시 인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국제법의 변화를 촉진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 중심의 접근은 국제적인 흐름이다.”

— 인권이 강조되면서 한국처럼 역사 문제와 싸우는 사례가 많을 것 같다.

“피해자들이 인권을 내걸로 싸우는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케냐의 마우마우 사람들이 식민지 치하에서 당한 고문, 나미비아의 원주민 학살, 카리브해의 노예제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강제 편입된 홋가이도 아이누민족 사람들의 권리 회복, 오키나와 류큐왕국 사람들이 국제인권법상의 자기결정권을 내세워 일본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영국은 1950년대 케냐 마우마우 봉기 과정에서 케냐 사람들을 살해·고문한 사실을 인정하고 지난 2013년 사과 표명과 함께 피해자들에게 배상금 명목으로 1990만 파운드(약 312억)를 지급했음. 독일은 1900년 초 나미비아 원주민을 집단 학살한 것과 관련해 사과 방침은 밝혔지만 배상 등 접점을 찾지 못해 마무리되지 못했음. 카리브해 국가들로 구성된 카리브해공동체 14개국은 17~19세기 노예제와 관련된 국가·기업을 대상으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음.)

— 국제사회의 흐름은 달라지고 있는데 한-일 관계는 55년전 한일청구권협정에 머물러 있다.

“지금 보다시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그렇듯 일본이 법적·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강제동원 문제는 국제법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국제인권법을 따라야 한다. 과거의 부정한 행위를 인권의 관점으로 인식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소중히 하면서 양국이 힘을 합쳐 문제를 풀어야 한다. 기업이 해결할 의사가 있으면 일본 정부는 방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구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현재 상황은 일본 기업의 손발을 묶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죄, 손해배상, 재발방지 조치 등 일본이 아시아 이웃 나라에게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법적·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일본 정부에 제언을 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특별보고관’으로부터 국제인권법에 맞는 조언을 구한 뒤 타당한 방안을 찾아 볼 것을 권한다. 지난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서 보듯 한일 양국의 정책 결정권자만 납득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보편 타당한 인권의 관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한일의 움직임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데 초석이 될 것이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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