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일본인들은 '소녀상 지킬래요'..당국에 편지

이광빈 2020. 10. 3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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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일본인 130명, 미테구청장에게 서한..일 정부 논리깨기
미테구 내세운 철거명분 '일본인 반대' 무색해져..소녀상 존치론 힘받아
'베를린 소녀상 지키기' 시위에 나선 독일 시민단체 회원들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지난 23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단체 '오마스 게겐 레히츠' 회원들이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철거 명령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2020.10.28 lkbin@yna.co.kr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수도 베를린의 슈테펜 폰 다쎌 미테구청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베를린의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철거 명령을 내린 이유로 "베를린에 거주하는 많은 일본 시민으로부터 소녀상에 반대한다는 서한을 받았다"는 명분을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소녀상 철거 명령에 반대한다는 내용으로 일본인들이 쓴 편지가 다쎌 청장에게 전달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독일에 거주하는 일본인 130명이 청원사이트를 통해 이 서한에 서명했다.

연합뉴스가 30일 전달받은 서한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유럽의회 결의안과 유엔 인권위원회의 위안부 책임 인정 권고, 일본 내 역사 연구를 언급하며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바라는 (일본) 시민들이 있다. 독일에 사는 우리는 철거 통지를 보낸 미테구의 행동에 당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한은 미테구청이 비문의 내용을 트집 잡은 데 대해 "전시 및 무력 충돌 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현재도 계속 일어나고 있으나 이런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비문은 드물다"면서 "비문의 메시지는 베를린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문에 문제가 있다면 설치 측과 협의를 하는 게 베를린의 방식이 아니냐"라며 "일주일 안으로 철거를 일방 통보한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강한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한은 나치 시대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독일과,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는 일본을 비교하면서 철거 명령을 취소하고 공개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서한은 또 "군대와 무장 세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는 오늘날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면서 미테구가 이 문제에 대한 시민의 인식도를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외에서 소녀상 설치로 일본인이 소외될 수 있다는 논리는 일본이 구사해온 방식이다.

미테구와 우호 도시결연 중인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의 스미요시 겐이치 구장(구청장에 해당)은 지난 21일 다쎌 청장에 보낸 서한에서도 베를린의 소녀상 설치로 일본인 차별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투서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9일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겐이치 구장은 "두 도시의 우호를 위해 유익한 결론을 기대한다"며 사실상 소녀상 철거를 촉구했다.

베를린 소녀상 눈가에 맺힌 빗물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9월 25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있다. 2020.9.27 lkbin@yna.co.kr

다쎌 청장은 일본인으로부터 반대 서한을 받았다는 명분을 들기에 앞서 지난 8일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미테구에는 관대하고 개방적이고 평화롭고, 존중하는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 100개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런 단합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역사적 갈등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과 미테구청의 논리가 맥락이 닿아 있는 셈이다. 이를 놓고 베를린 시민사회에서는 미테구청의 입장에 일본의 로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다쎌 청장은 지난 13일 독일 연방정부와 베를린 주(州)정부로부터 소녀상에 대한 문제를 제기받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 베를린에 소녀상이 설치된 직후부터 일본 정부는 독일 당국을 상대로 철거를 요청해왔다.

13일 다쎌 청장은 구청 앞에서 벌어진 소녀상 지키기 시위에 예고 없이 깜짝 등장해 법원에 철거 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접수돼 철거 명령을 일단 보류하겠다고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일본 측이 베를린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해 독일에서 치열한 로비를 계속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소녀상을 감싼 독일 거주 일본인들의 서한은 소녀상 지키기에 상당한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측과 미테구청 측의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등 소녀상의 존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향후 협의 과정에서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장에 서한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30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미테구 녹색당 관계자는 서한을 주도한 일본인에게 최근 답신을 통해 "녹색당 지역 당원들과 회의에서 서한을 공유했다"면서 "지역의 우리 대표자들은 매우 진지하게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평화의 동상을 기리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다쎌 청장은 녹색당 소속이다. 녹색당 내부의 이런 움직임은 다쎌 청장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베를린의 소녀상은 철거 명령 보류 이후 미테 구청 측과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 간 논의가 진행 중이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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