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택배 포장지원.. 집단 이익 위해 사실 왜곡"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김동환 2020. 10. 3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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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노동자 사망 둘러싼 진실 공방
택배기사 연이은 사망에 대책위 출범
유족·대책위 "명백한 과로사" 목소리
쿠팡 "물품 분류 전담인력 4400명 배치
고인에 지난달 정규직 전환 20회 제안"
인천 소재 쿠팡 메가물류센터에서 한 직원이 물품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쿠팡뉴스룸 제공
경북 칠곡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0대 일용직이 이달 중순 숨진 안타까운 일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사인이 ‘원인 불명 내인성 급사’로 나온 가운데 평소 지병이 없던 만큼 명백한 과로사를 주장하는 유족과 달리 근무 일 및 시간, 내용 모두 고인이 선택했다는 쿠팡 측은 ‘오해’라는 입장이다. 이는 최근 택배업계 종사자들의 과로사가 사회의 대표적인 이슈로 떠오른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택배기사들의 연이은 사망 후 출범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도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은 사망 전까지 주 5~6일씩 야간근무와 높은 강도의 육체적 노동에 시달려왔다”며 쿠팡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온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는 의원들 질문에 진땀을 뺐다. 쿠팡은 택배기사들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물품 분류작업’ 문제 해결을 위해 이미 전담인력 4400명을 두고 있는데, 정작 과로사를 한 기사가 속출한 다른 택배회사 관계자들은 당시 나오지 않아 ‘앙꼬 빠진 택배 국감’이라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세계일보는 최근 고인과 같은 물류센터에서 2년째 근무 중인 한 일용직 A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왜 택배기사 과로와 연결되는지… 언제든 업무 변경 가능”

그는 통화에서 고인이 택배기사 과로사 이슈와 연결되는 이유를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A씨는 “고인을 택배분류 노동 담당이라고 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며 “쿠팡에는 수천명의 분류업무 전담인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인은 택배분류와 무관한 포장지원 업무를 했다”고 전했다.

그 역시 고인처럼 이번주에는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4시까지 야간근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고인이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압박 속에서 근무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은 자주 상시직 전환을 제안받는다”며 “(그동안) 상시직 전환에 따른 급여 인상과 다양한 복지 혜택도 제안받았지만, (나 또한) 응하지 않은 것은, 일용직은 본인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 스케줄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일용직은 주중에는 회사, 주말에는 쿠팡에서 각각 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낮에는 피트니스센터 트레이너로, 밤에는 쿠팡에서 일하는 동료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쿠팡은 고인에게 지난달에만 20회 이상 상시직 전환을 제안했다고 한다.

A씨는 “대부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일용직을 고집한다”며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언제든 자유롭게 업무를 변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주최 '쿠팡 규탄 및 유가족 면담 요구 기자회견'에서 사망 노동자 A씨의 아버지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경북 칠곡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해온 일용직 노동자 A씨가 집에서 숨졌다. A씨는 업무강도가 가장 높은 곳에서 근무했고 코로나19 이후 물량이 늘었음에도 인력충원이 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대책위는 과로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고인은 우리에게 소중한 동료였다”

A씨는 또 “회사가 고인에게 지속적으로 출근을 강요하고 불규칙한 휴일·교대근무를 시켜 과로사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일용직은 회사에 소속된 직원과 달리 날마다 본인이 출근 여부를 결정하는데, ‘불규칙한 휴일근무’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했다는 소문에 함께 일하는 이들 모두 놀랐다”며 “현대판 노예도 아니고 보장된 휴게시간에 자유롭게 화장실을 사용하면 된다”고도 했다.

나아가 “쿠팡 물류센터는 다른 물류센터에 비해 근무환경이 좋은 편이라는 것은 이쪽 일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상식이다”라고 부연했다.

그는 동료였던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A씨는 “고인은 가족과 지인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었겠지만 우리에게도 소중한 동료였다”며 “일부 언론에서 회사에서는 한 명도 조문을 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센터장과 본사 직원이 직접 찾아 조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한 거짓된 내용이 어떤 집단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고인이 근무하던 층의 지원업무를 도맡았다’는 대책위 주장과 더불어 국감에서 나온 ‘시간당 생산량(UPH·Unit Per Hour)으로 고인을 감시했다’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주장에 쿠팡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 관계자는 “고인의 업무는 UPH 측정 대상이 아니었다”며 “고인은 일자와 업무 내용을 모두 직접 선택해 매일 근무를 신청했고, 근로기준법에 따른 고인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44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주간 기준 고인의 최장 근로시간은 52.5시간이라는 게 쿠팡 측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고인에 대해서는 “관련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쿠팡은 일정 기간 근무한 일용직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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