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마라"..62년만에 사라지는 '자녀 징계권'

이가람 입력 2020. 11. 1. 12:01 수정 2020. 11. 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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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이미지. 중앙포토


이르면 내년 초부터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의 매’는 더 이상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부모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어 내년 초부터 자녀 체벌이 원칙적으로 금지될 예정이다. 아동학대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자녀 훈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62년 만에 사라지는 ‘자녀 징계권’

굿네이버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맞을 짓은 없다'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교육계나 시민단체 등은 지난달 31일 "부모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이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만큼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서도 무난하게 통과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큰 변수가 없는 한 민법 제정 62년 만에 부모의 징계권은 현행법에서 사라지게 된다. 1958년 민법이 제정된 후 지금까지 유지된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해왔다.

법무부는 지난 8월 부모의 체벌이 아동학대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민법에 명시된 징계권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당시 법무부는 “최근 부모의 체벌로 인해 아동이 사망하는 심각한 학대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며 “민법상 체벌 금지 취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915조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으로 우리나라는 체벌 금지를 명문화 한 세계 61번째 국가가 된다. 아시아에선 몽골·네팔·일본에 이어 4번째다.


아동학대 지속해서 증가
실제로 아동학대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피해 건수는 2014년 1만27건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 3만45건이 집계됐다. 2017년에 2만2367건으로 첫 2만건을 기록한 지 2년 만에 3만건을 넘어선 셈이다. 아동학대는 주로 부모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해 학대 행위자가 피해 아동의 부모인 경우는 전체 피해 건수 중 75.6%(2만2700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학대 행위가 발생한 장소 역시 피해 아동의 거주지가 79.5%(2만3883건)로 가장 많았다.

아동학대의 증가 추세는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검찰에 접수된 아동학대 사건의 구속률은 2015년 3%, 2016년 4%, 2017년 2%, 2018년 1%, 2019년 1%에 그쳤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를 지적하며 “아동학대는 범죄라기보다는 부모가 아동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라는 인식으로 인해 사법기관이 강력하게 대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훈육법 논의 시작돼야”
전문가들은 민법 개정안을 환영하면서 체벌에 대한 인식 개선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어려서부터 가정 내 체벌을 익숙하게 겪어온 부모 세대들이 체벌이라는 폭력에 무감각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번에 개정된 민법 개정안은 선언적인 의미가 크지만 이를 토대로 부모의 자녀 체벌과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자녀의 훈육 과정에서 체벌이 금지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훈육’의 본래 의미를 강조하며 올바른 훈육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나리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훈육의 목적은 아이들의 자기통제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며 “체벌은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줄이는 데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부모들이 아이들을 통제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체벌을 선택해왔고 이를 훈육의 일환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었다”며 “앞으로는 체벌 없이 아이들의 자기통제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다양한 훈육 방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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