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칼럼] 국익, 가치, 그리고 동맹의 미래

입력 2020. 11. 1. 13:06 수정 2020. 11. 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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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한-미 동맹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익을 꼼꼼히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게 왜 쟁점이 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우리가 전략적 동반자인 중국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동맹국인 미국 편에 전적으로 서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핵심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정인 ㅣ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문재인 정부의 한-미 동맹관에 대한 보수 진영의 비판이 거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이수혁 주미대사의 최근 발언과 관련한 논란 때문이다. 9월25일 강 장관은 미국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화상회의에서 ‘한-미 동맹은 우리의 닻(anchor)으로 중요하지만 다른 국가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쿼드플러스에 가입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10월12일 국정감사에서 이 대사는 “한국이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라며 “앞으로도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보수 야당과 일부 언론은 이러한 발언이 한-미 동맹을 크게 손상하고 국익에 치명적 타격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미국을 배신하고 중국에 붙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고 목청을 돋우는 식이다. 국익을 넘어서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시장경제 등 공동의 가치와 이상 때문에라도 한-미 동맹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언뜻 일리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허구성이 드러난다. 우선 강 장관과 이 대사 발언에 대한 왜곡이 문제다. 두 사람의 말은 모두 한-미 동맹의 현상 유지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다만 미래 한-미 동맹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익을 꼼꼼히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게 왜 쟁점이 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우리가 전략적 동반자인 중국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동맹국인 미국 편에 전적으로 서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핵심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전개하고 있는 대중 정책이 충분한 정통성과 합리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맹은 단순히 세력 균형의 논리만이 아니라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가 지적하듯 위협의 균형도 크게 작용한다. 우리도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을 강하게 느껴야 미국의 대중 전선에 동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즉각적이고 현존하는’ 중국의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미국의 국력이 여전히 중국을 압도하고, 중국 역시 외교적 타결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워싱턴이 봉쇄, 강압, 포위라는 대결의 길로 향하는 게 대선이라는 국내 정치 변수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있다. 45년 냉전의 연대기에서 분단과 전쟁, 고질적 군사 대결, 반도국가라는 한계로 고통받았던 한국 국민들에게 또 다른 냉전의 등장이 반가울 리 없다.

둘째, 미국에 올인하면 우리의 안보는 향상될까? 회의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전선에 올인하려면 우선 사드 추가 배치와 중거리탄도미사일 한반도 전진 배치가 허용돼야 한다. 또한 워싱턴은 한국이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 군사작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기대할 것이다. 이 경우 중국과의 적대적 관계는 불가피하고, 한반도는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떠오를 것이다. 중국의 둥펑미사일이 한국을 겨냥하고, 서해와 카디즈에서는 공세적 군사 행보가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를 과연 안보의 향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상식이 있는 국민 다수는 우리가 미-중 군사 대결의 첨예한 구도 속에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셋째, 미국 편승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도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1958년 중국인민지원군이 북한에서 철수한 이후 중국의 대북 군사지원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신냉전 구도하에서 중국은 북·중·러 3각동맹 관계를 강화해나갈 것이고, 베이징은 평양에 군사무기는 물론 석유를 포함한 병참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요원해진다. 도리어 북쪽의 재래식 위협마저 가중될 게 자명하다. 미국과의 확대된 동맹이 우리의 안보 딜레마를 심화시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경제라는 국익이 남아 있다. 2019년 말 기준 중국은 우리 수출의 25%, 수입의 21.3%를 차지해 각각 미국의 두배에 가깝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인위적인 탈동조화(디커플링)나 중국의 경제보복이 한국에 가하게 될 충격은 명약관화하다. 특히 그러한 타격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나 관광 분야에 종사하는 영세상인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들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의 생존을 흔들 수 있는 반중 행보를 택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다시 강경화 장관과 이수혁 대사의 말로 돌아가보자. 이들 발언의 요지는 미국과 동맹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나라가 미래 동맹의 성격과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국익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가치와 역사적 관성도 중요하지만, 국익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외교 당국자의 고뇌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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