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초등생에 10일간 1억3000만원 결제 유도..'도 넘은 BJ앱'

김현종 입력 2020. 11. 2. 01:00 수정 2020. 11. 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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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 '하쿠나라이브' 메인 이미지. 하쿠나라이브의 모회사는 하이퍼커넥트로, 누적 이용객이 1,000만명에 달한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초등학생 딸아이가 10일 만에 약 1억3,000만원을 결제하는 동안 어떤 통제 장치도 없었어요. 그러면서 환불도 안된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1일 만난 서울 은평구 주민 김모(46)씨는 지난 8월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김씨의 딸 김모(11)양이 온라인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 '하쿠나라이브'에 8월 3일부터 12일까지 약 1억3,000만원을 결제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지옥 같은 시간이나 다름 없었다고 했다.

문제의 앱은 14세 이상 가입자라면 별다른 제약 없이 방송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개인 방송 플랫폼으로, '아프리카TV' 등과 유사한 구조다. 김양은 시각장애(반맹 판정)와 뇌병변장애(중증2급)를 갖고 있는 어머니 남모(48)씨의 휴대폰으로 앱을 사용했다. 가입에 사용한 계정은 SNS에서 임의로 만든 것으로, 15세로 설정돼있다. 다른 SNS 계정을 통해 로그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11세인 김양이 앱을 사용하는 데 어떤 지장도 없었다. 돈은 남씨의 휴대폰과 연동돼있던 남씨 통장에서 빠져나갔는데, 지난달 전셋집 이사를 위해 모아둔 보증금이었다. 피해 금액 중 상당액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고, 김양은 사건의 충격으로 학교 상담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A씨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하쿠나라이브 방송 실황 사진. A씨로 보이는 남성이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여성 시청자와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A씨 SNS 캡처

35세 호스트가 미성년자를 “회장님” 대우

김양이 처음 소셜 앱을 알게 된 건 지난해 8월이다. 온라인 광고를 통해서 접했지만 초기엔 앱을 자주 이용하진 않았다. 그러나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를 못 가게 되고, 집에있는 남씨가 스스로 거동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앱에 빠져들게 됐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양을 사로잡은 건 35세로 알려진 호스트 A씨(닉네임 '원빈')와 그의 팀이었다. 이 앱에선 개인 방송을 하는 호스트들이 5명까지 뭉쳐 하나의 '팀'을 꾸릴 수 있는데, 이들은 후원금을 공유하고 함께 방송을 하는 경제공동체가 된다. A씨가 팀장을 맡은 팀은 당시 앱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다. 김씨는 "A씨의 팀은 앱 내에서 아이돌에 버금가는 선망을 받았다"며 "이들이 후원금을 내는 다른 미성년자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딸 아이도 '함께 하고싶다'는 열망에 휩싸이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쿠나라이브에서 운영되는 팀의 사진. A씨의 팀과는 관련 없다. A씨는 현재 팀이름을 바꿔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A씨의 팀은 시청자들의 선망을 이용해 더 많은 후원금을 내도록 길들이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호스트 중 가장 많이 후원한 사람들을 순서대로 '회장님' '부회장님' '사장님'으로 불러 우대했고, 가장 많은 후원금을 낸 사람이 원하는 게임을 방송에서 하는 경매를 열기도 했다. 또 후원금을 많이 낸 사람들만 따로 카카오톡 대화방이나, 앱 내의 '프라이빗방'(비밀번호를 설정한 비밀방)에 초대하기도 했다. 실제 김양이 1억 4,000만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내자 A씨는 김양을 "회장님 되겠다"며 추켜세웠고, 팀원들도 김양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물론 A씨도, A씨의 팀원들도 김양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관련기사: 미성년자 성착취 정황까지…BJ앱서 무슨 일이)

김씨가 지난 8월 13일 하쿠나라이브 측으로부터 받은 환불 거부 답변. 김씨는 전날 이 앱에 미성년자 자녀가 1억3,000여만원을 결제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며 환불을 요구했지만 업체로부터 '정책에 의해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짧은 답변만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내부 정책은 그 자체로 약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후원금 공유하는 사업자, 환불은 나몰라라

당장 전세금이 날아가 길바닥에 나앉게 된 김씨는 8월 12일부터 하쿠나라이브 측에 환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쿠나라이브 측은 자사 정책을 이유로 “환불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플랫폼 기업으로서 호스트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환불을 진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해명했다. 하쿠나라이브는 시청자가 보낸 후원금의 10%가량을 수수료로 가져간다.

실제 정보통신사업자를 규제하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김씨가 환불을 요구할 법규 자체가 없다. 방통위 관계자는 "아이가 자기 휴대폰을 사용했으면 그렇게 많은 금액을 결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휴대폰을 준 것이므로 단지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후원금을 받은 호스트 35명을 접촉해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 약속을 받아내야 했다. 그러나 김씨의 호소에도 A씨는 환불에 응하지 않아 약 4,63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이에 A씨는 지난 9월 25일 하쿠나라이브를 상대로 컨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분쟁조정을 신청까지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유사한 피해가 확산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앱 과금과 관련한 미성년자 환불 관련 사건 접수는 최근 4년 사이 3,600건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한 올해는 9월 말 기준 1,587건으로 지난해 전체(813건)의 2배에 달한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상황에서 과금을 유도하고, 심지어 미성년자의 계정에도 어떤 제재가 없었던 점에서 결코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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