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브레이크 없는 독주' 대담>"법·제도 아닌 文·秋만 보이는 정치.. 法治 사라지고 人治의 부활"

유병권 기자 2020. 11. 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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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왼쪽)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와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30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좌담을 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사람에 의한 지배’ 안된다며

군부 독재와 싸웠던 86세대가

민주적 제도·장치 무력화시켜

미래 모르고 현재 문제 못 푸니

‘토착왜구’ 들먹 100년전 회귀

이익 사유화 ·손실 사회화 만연

임기 1년 6개월가량 남은 문재인 정부에서 법과 제도가 무시되는 반민주적이고 퇴행적인 국정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의석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압승으로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 2차례 총선 등 전국단위 선거를 4차례 연속 승리해 행정과 입법, 사법 등 중앙권력과 지방권력까지 차지한 문재인 정부의 독선적 국정 운영 행태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공권력 간 충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등은 박근혜 정권 때의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 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진단도 다르지 않다. 법치(法治)의 무력화를 우려하며 인치(人治)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와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엄청난 국민 에너지를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2017 체제’를 구축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적폐 청산에 이용한 것은 엄청난 패착”이라고 비판했다. 대담은 지난달 30일 문화일보 편집국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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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대표

사회 = 유병권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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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 추 장관과 윤 총장이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이하 권혁주) =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을 주요 국정 과제로 선정했지만 실제로 검찰 개혁이 진행됐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답보 상태다. 추 장관이 검찰 인사를 4차례 했고, 역대 법무부 장관이 딱 한 차례 했던 수사지휘권 발동을 3개월 동안 3차례나 했다. 권력 남용으로 비치고 있다. 윤 총장도 검찰 개혁의 성과가 무엇인지를 볼 때 좋은 점수를 얻기 힘들다. 검찰 개혁이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고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대표(이하 박성민) = 정치적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치는 모순적 속성이 있다. 하나는 권력 투쟁적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법의 지배다. 정치인 출신인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은 검찰 개혁을 권력 투쟁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정권 관련 검찰의 수사를 쿠데타로 생각한다. 반면 평생 검사로 살아온 윤 총장은 죄가 있다면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다.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충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화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이뤄져야 한다. 민주적 통제에서 방점은 통제가 아니라 ‘민주적’에 있다. 권력이 법과 제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힘을 절제하지 않는 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니다.

△박성민 = 올 4월 총선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이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정치)’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서로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도록 무조건 반대만 했다. 자동차로 보면 브레이크만 작동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민주당이 압승한 4월 총선 이후는 정반대가 됐다. 액셀러레이터만 있고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여권의 무소불위 독주가 진행되고 있다.

△권혁주 = 민주적 통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치 세력이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집권 세력이 맘대로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올바른 민주적 통제가 아니다. 민주적 통제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권력 창출은 다수결로 이뤄지지만 권력 운영에는 책임성이 뒤따른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한다. 그 책임은 표로 심판받아야 한다. 국민이 여권을 압도적 다수당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야당의 의견을 들으며 자신 있게 국정을 운영해 보라는 것이지, 법과 제도를 무시한 채 맘대로 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박성민 = 왕정과 공화정을 가르는 차이는 ‘왕정은 왕이 법이고, 공화정은 법이 왕’이라는 점이다. 인치냐, 법치냐의 문제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중추인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은 독재와 싸웠다. 사람에 의한 지배를 하지 말라고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원전 언제 폐쇄할 거냐’고 물었다고 해서 원전을 폐쇄하는 그런 일은 하지 말자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권력을 잡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추 장관이 대표적이다. ‘내 명을 거역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법과 제도에 대한 존중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현 정부를 보면 법과 제도는 보이지 않고 문 대통령과 추 장관만 보인다. 1987년 6·10 민주화 항쟁 이후 개헌을 통해 만들어 놓은 민주적 제도와 장치들을 현 집권세력이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하나 마나 한 것이 됐다. 정권을 불편하게 한다고 감사원과 검찰을 노골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사람이 지배하는 나라가 돼 가고 있다.

△사회자 = 현 집권 세력은 민주화 세력이고 ‘촛불’의 힘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세력이지 않은가.

△박성민 = 촛불이 혁명이라는 것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촛불보다 투표가 힘이 세고, 투표보다 제도가 더 강하다. 4·19 혁명과 ‘서울의 봄’ 때 새로운 세상이 올 줄 알았지만 5·16과 12·12 등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사람은 6·10 민주화 항쟁 이후 헌법을 바꾼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87년 개헌은 민주화를 열망했던 국민의 엄청난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부터 여야가 평화적으로 정권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정치가 전쟁이 아니라 스포츠로 바뀌었다. ‘87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쿠데타도, 혁명도 가능하지 않게 됐고, 선거를 통해 여야가 정권을 주고받는 길이 열렸다.

△권혁주 = ‘촛불집회’라는 엄청난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문 대통령이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라고 볼 수 있다.

△박성민 = 대한민국에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문 대통령이 적폐 청산보다 헌법을 개정하고, 선거와 검찰 제도를 바꿨으면 ‘87체제’에 버금가는 ‘2017년 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엄청난 레거시(legacy·업적)를 남길 기회를 날린 셈이다.

“文정부, 잘못 인정땐 다 무너진다 생각… 사과도 반성도 없어”

촛불이라는 엄청난 지지받은 文

나라다운 나라 만들라는 열망을

적폐청산에만 이용한 건 패착

더 좋은집 더 나은 교육의 꿈을

文정부는 탐욕이라 비판하더니

강남 살고 특목고 보내 배신감

△권혁주 = 헌법개정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대한민국이 앞으로 가지 못하고 뒤로 가고 있다. 여야 정치 세력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의 공으로 주장했던 산업화, 민주화의 화두도 이제는 과거지향적이다. 그런데 친일파, 토착 왜구를 들먹이며 100년 뒤로 가고 있다. 과거에 매몰되는 이유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대안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는 국익과 공익을 우선해야 한다. 국가 지도자들이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

△박성민 = 과거에 집착하는 이유는 현재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고, 미래에 대한 통찰이 없기 때문이다. 집권 세력이 100년 전 토착 왜구와 싸우는 사이에 반대쪽에 있는 보수층은 1950년대 버전인 기독교 반공주의를 들고 나왔다. 뒤를 보고 걸으면 빨리 갈 수도 없고, 똑바로 갈 수도, 멀리 갈 수도 없다. 지금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사회자 = 문재인 정부는 정책 실패나 도덕성 비판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권혁주 = 현 정부는 사실상 모든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지 기반이나 토대는 굉장히 취약하다고 본다. 이 같은 심리 상태를 ‘시즈멘털리티(피포위 심리·siege mentality)’라고 하는데, 스스로 포위됐다고 하는 불안감이다. 이런 상태에선 잘못을 인정하거나 양보하면 다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비타협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경직성은 높아지고,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양보와 설득도 없다. 신권위주의 정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성민 = 문재인 정부는 보수가 몰락하면서 중앙권력뿐 아니라 지방권력도 차지했고, 여론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도 ‘주류가 따로 있다’며 뭐만 걸리면 보수언론 탓을 하고 검찰이 무소불위 힘을 가진 듯이 이야기한다. 이 정도면 피해의식 정도가 아니라 피해망상 수준이다. 왜 그런가는 이분들이 살아온 실존적 경험에서 잉태됐을 수 있다고 본다. 현 정부 사람들은 주택 문제는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정도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고 교육도 시민으로 살아갈 정도의 수준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사회주의적 접근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하는 시장경제를 채택한 국가다. 좀 더 좋은 집에 살고 싶고, 미래를 위해 좀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런 욕망에서 혁신이 나온다. 이 정부는 보통 사람이 갖는 꿈을 탐욕이라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사람들이 ‘내가 강남 살아 봐서 아는데’ ‘내 자식을 특목고 보내봐서 아는데’라며 이중적인 내로남불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

△사회자 = 그렇지만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박성민 = 다른 점이 백 개라도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집권 세력은 정치를 적과 동지로 나눠 본다. 지지층만 똘똘 뭉쳐 가면 된다는 식이다. 문 대통령이 정치나 정책적 실패가 있는 장관들을 안 바꾸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혁주 =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실질적 성과가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가 있고, 개혁해야 한다는 민심이 강하다. 그래서 부동산 등 잇단 정책 실패와 국정 성과가 없는데도 현 정부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이런 민심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도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성민 = 한국 정치에서 처음으로 보수 리더십이 진공상태에 빠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보수를 부끄럽고 창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성도, 사과도, 인적 쇄신도 하지 않았다. 보수가 정권을 되찾으려면 우선 능력이 있어야 하고, 품격을 갖춰야 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같은 헌신이 있어야 한다. 지금 보수정당은 이 세 가지 모두 상실했다. 능력도 없고 막말을 하며 헌신도 안 한다.

△사회자 = 2022년 차기 대선의 시대 정신은 무엇이 될 것으로 생각하나.

△권혁주 = 공정한 사회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고 해 놓고 공정의 정의를 일그러트려 놓았지만 그 화두는 우리 사회에 유효하다. 미래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조만간 인공지능(AI) 로봇과 같이 사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AI 로봇과 공존하는 방법, 노동시장과 제도, 임금과 복지 등에 관한 대비나 계획이 없다. 10대 무역 강국으로서 글로벌 대한민국도 시대정신이 돼야 한다.

△박성민 = 국민은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대한민국은 중간지대가 없을 정도로 양분되고 쪼개져 있다. 대통령이 국민 분열상을 치유하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예측 가능성이 높아 스트레스가 덜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재판을 받으러 가면 누가 판사인지, 누가 검사인지 다 따져야 한다. 판사가 누구냐, 검사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엄청 피곤한 사회다. 누가 재판을 맡든 같은 결론이 나오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 차별적 법치주의는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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