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9억 아파트 매매 중개료 최대 810만원..'제값 하나요'

송진식·김희진 기자 2020. 11. 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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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4배 올라..아파트값 급등으로 '고가' 요율 적용 탓
서비스 품질은 별 차이 없어 '중개수수료 부담' 목소리 높아
중개인들 "폭리 아니다"..정부, 요율 개정 선뜻 나서지 못해

[경향신문]

서울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올 2월 6억8000만원에 아파트 전세를 구한 뒤 중개수수료가 500만원이 넘게 나오자 중개인에게 “30만~40만원 정도만 깎아달라”고 요청했다. 6억원을 초과하는 임대차계약의 경우 최대 거래금액의 0.8% 이내에서 수수료를 중개인과 협의하게 돼있다. 하지만 중개인은 “귀한 전세라 계약하자는 사람이 많다”며 거절했다.

B씨는 신축 아파트 전세를 얻기로 하고 가계약금으로 500만원을 집주인에게 건넸다. 하지만 계약을 완료한 후 집주인으로부터 “소유권 이전등기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계약 당시 중개인은 이에 대해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전세금을 마련해야 하는 B씨는 대출도 못 받고 임대차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최근 5년 새 집값이 급격히 오르면서 높아진 부동산 중개수수료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중개수수료 요율 체계가 일정 금액 구간을 제외하곤 거래가격에 비례해 수수료도 높아지도록 설계된 탓이다. 중개수수료는 오른 데 반해 과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중개서비스의 품질을 놓고도 여러 불만이 제기되는 중이다. 정부는 “수수료 부담 문제를 알고 있다”면서도 당장 요율 개정 등에 나서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 임대차 수수료 ‘역전현상’도

3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현행 중개수수료 요율 체계는 2015년부터 개정돼 적용 중이다. 개정 전인 2014년의 요율 체계를 보면 매매기준 2억원 이상 거래금액(요율)의 경우 ‘2억~6억원 미만(0.4%)’, ‘6억원 이상(0.9%)’의 두 구간만 존재했다. 당시 기준에선 ‘고가’에 속한 6억원 이상 주택 매매 시 더 많은 수수료를 내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2014년 하반기에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은 4억7000만원을 넘어 5억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값이 오르면서 6억원 이상 거래 비중도 늘었고, 중개수수료 부담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15년 만에 요율 개정에 착수했다. 그 결과 요율이 가장 높은 고가 주택의 기준액을 9억원 이상으로 높였고, 2억~9억원 미만 주택에는 ‘6억원 이상~9억원 미만’ 구간을 신설했다.

1980년 중개수수료제도가 처음 생긴 이래 요율 개정은 총 세 차례였다. 이 중 아직 제도가 안착되지 않았던 1980~1984년의 첫 개정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차례의 개정은 모두 15년 단위로 이뤄졌다. 이를 감안하면 2015년부터 적용된 현행 요율 개정은 2030년 정도를 바라봐야 하지만 문제는 2015년 이후 집값이 폭등했다는 점이다. 2015년 1월 4억80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올 1월 9억1200만원으로, 5년 만에 가격이 4억원 넘게 올랐다.

집값이 오르면서 수수료 부담은 크게 늘었다. 예컨대 2015년에 4억8000만원이던 아파트를 사서 올해 9억원에 판다면 수수료는 192만원(2015년)과 최대 810만원(올해)으로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중개수수료 제도에선 임대차 계약에 대한 요율을 낮게 책정해 세입자들을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집값 상승과 함께 전셋값도 오르면서 같은 가격임에도 임대차 수수료가 매매보다 높은 ‘역전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거래금액이 ‘6억원 이상~9억원 미만’인 구간의 경우 매매는 0.5%의 요율을, 임대차는 0.8%의 요율을 각각 적용하기 때문이다.

■ 중개인들 “요율대로 다 못 받아”

수수료 부담이 높아지다 보니 중개인을 거치지 않는 개인 간 부동산 직거래도 늘어나는 추세다. 직거래만을 전문으로 하는 웹사이트와 플랫폼도 계속 등장하고 있고, 최근엔 당근마켓에서도 부동산 직거래 게시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역별로는 이른바 ‘반값 수수료’를 내걸고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중개인 단체들도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수수료 인하를 위한 요율 개정을 정부에 요구 중이고, 올해 국토부 국감에서도 높은 수수료 문제가 제기됐다.

중개인들은 알려진 것처럼 폭리를 취하진 않는다고 항변한다. 서울 목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요율대로 수수료를 받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요즘은 지역 커뮤니티가 잘돼있어 대체로 요율 이하에서 수수료가 형성된다”고 밝혔다. 서울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중개인들이 아무 노력도 없이 일을 하고 수수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시각이 많은데 법과 제도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나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등 중개인 단체에선 요율이 해외에 비해 낮은 만큼 요율을 내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개수수료 수준이 해외와 비교할 때 높은지 여부는 의견 차이가 있지만 국내 연구에서는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오고 있다. 정부가 2015년 요율 개정을 앞두고 국토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연구결과를 보면 주요국의 ‘가구당 소득 대비 중개보수 비율’을 분석한 결과 국내 수수료는 미국·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고, 독일·영국은 국내보다 수수료가 낮은 것으로 나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미국 등은 수수료가 많게는 5%를 넘기도 하지만 월세 중심이라 거래가액에서 일단 차이가 크다”며 “해외의 경우 중개인이 금융지원 등 여러 부가서비스도 병행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수수료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선뜻 요율 개정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경우 지난 9월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거래 시스템’ 개발 예산을 언급했다가 중개인협회가 거세게 반발하자 “실제 도입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물러섰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국감에서 “중개인 없는 시스템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요율 인하는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고 10만명이 넘는 중개인들의 반발도 심각할 것”이라며 “당장 요율을 인하하기보단 수요자들이 보다 양질의 중개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업계 관행이나 문화를 고쳐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변화 없어…시장 반영 못하는 중개수수료 체계 개선을”

소비자단체협의회 토론
구간별로 정액수수료 적용
기준 초과분만 누진 등 제시
“계약서 전에 중개료 정하는
사전고지제도 도입도 필요”


주택을 거래할 때 금액 구간별로 정액수수료를 적용하거나, 9억원 이상 주택의 수수료 상한을 조정하는 등 현행 중개수수료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2000년 이후 지속돼온 중개수수료 체계가 현재 부동산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3일 서울 양재동에서 연 ‘시장 변화와 부동산 중개서비스 가격 적절성’ 토론회에서 조영주 회계사는 “현행 중개수수료는 주택가격에 연동되어 중개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지 않아도 증가할 수 있는 구조”라며 “5년 동안 서울 공동주택 중위 매매가격이 75.7% 상승하는 동안 중개수수료는 295.3% 올랐다”고 지적했다.

조 회계사는 단일 수수료나 금액 구간별 정액수수료를 적용하고, 5분위 평균 주택가격을 금액 구간 기준으로 삼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중개수수료는 매매의 경우 2억~6억원 미만은 0.4%, 6억~9억원 미만은 0.5% 등 거래금액에 따라 상한요율이 달리 적용된다. 9억원 이상은 0.9% 이내에서 중개업자와 협의하도록 돼 있다. 이처럼 집값 상승 등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거래금액 기준 대신 5분위 주택가격을 기준으로 동일한 수수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밖에 거래금액이 커질수록 낮아지는 수수료율을 적용해 기준 금액의 초과부분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누진하거나, 현재 중개수수료 체계에서 주로 논란이 되는 9억원 이상 구간만 해당 방식을 도입하는 안도 제시됐다. 예컨대 10억원짜리 집을 구매하면 6억~9억원 기준 수수료율 0.5%에 해당하는 450만원 수수료를 바탕으로 지불하되, 9억원을 초과하는 1억원분에 한해 0.9% 수수료를 적용해 90만원을 추가하는 식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김학환 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는 거래금액이 높을수록 배상 책임 등 부담이 커진다”면서 “소비자뿐 아니라 중개업자 입장도 고려해 중개보수 체계 개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의 좌장을 맡은 천규승 미래경제교육네트워크 이사장은 “가격이 높은 아파트나 대형 건물의 매도인 등 부동산시장에서 협상력을 가진 이들은 상한요율 내에서 협의가 가능하지만, 정보력과 협상력이 부족한 일반 소비자들은 피해를 보기 쉽다”며 “수수료율 체계를 비롯해 계약서를 쓰기 전에 중개료를 정하는 사전고지제도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진식·김희진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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