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일상, 값싸고 더럽다는 생각부터 버리세요"[이슈&탐사]

이슈&탐사1팀,임주언,박세원,전웅빈,문동성 2020. 11. 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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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쓰레기 정책의 역습] 에필로그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고, 발생된 폐기물의 순환이용 및 적정 처분을 촉진해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사회를 만드는 것’, 자원순환기본법의 목적이다. 2016년 제정됐고, 비닐·플라스틱 대란이 터진 2018년 시행됐다. 이후 여러 처방과 대안이 쏟아졌지만 한국의 폐기물 자원순환 시스템은 여전히 위태롭고 빈약한 상태다. 올가을 인천에선 폐기물 선별업체 한 곳의 화재로 폐기물 순환이 경색됐고 비닐수거함이 다시 사라졌다.

재활용 시장에서 원자재인 폐기물은 비용만 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업계가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지면서 노동자들의 처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처리가 안 된 폐기물이 넘쳐나 불법 투기 브로커가 양산됐다. 소각·매립 시설 확충을 둘러싼 지역 갈등은 이 같은 악순환 구조를 더 강화하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3일 폐기물 발생과 순환, 처리 등 영역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무엇인지 전문가들에게 자문했다.

① 영세업체에 의존하는 재활용 시스템 바꿔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폐기물 처리가 공적 서비스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사업일 뿐이다. 공공과 민간의 조화가 어설픈 탓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동훈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 진단이다. 정책의 빈곤은 다른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시장이 허물어진 상태에서 민간 의존성만 높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생활폐기물의 경우 아파트는 민간이 도맡아서 수거하고 있다. 민간업체 입장에선 폐기물이 돈이 안 되면 수거를 포기하게 된다”며 “결국 지자체나 정부는 시장 상황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업체들은 대체로 영세하다. 이는 민간에 의존하는 현 시스템의 문제를 더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폐기물 관련 업체들이 빈곤한 탓에 자원순환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한국에서 재활용은 전부 민간업체들이 맡아 하고 있는데, 한국의 재활용 시스템은 영세한 데다 기술력이 떨어져 품질경쟁력이 너무 낮다”며 “재생원료 수요도 적기 때문에 (이런 업체는) 휘청휘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미국의 경우 대기업이 폐기물 처리 사업을 한다”며 “반면 한국은 자기자본도 거의 없는 영세업자가 대부분이다. 사업성이 떨어지면 이들은 (폐기물 처리를) 그만두게 된다”고 했다. 정부 차원의 시스템 정비가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공적 영역의 확대를 주문했다. 홍 소장은 “해외에서도 생활폐기물은 공공에서 관리하는 사례가 많다”며 “한국은 영세한 민간업체가 난립한 후진국형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김현경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도 “폐기물 선별장의 열악한 근로환경 등은 민간 운영 방식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다만 오세천 공주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공공기반시설 확충 등 폐기물 처리에 정부가 책임을 지는 원칙을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배출량이 훨씬 많은 사업장폐기물의 경우 공공책임 원칙만 강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필요한 건 재활용 시장이 자생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다. 이 교수는 “폐기물 국제 교류가 막혀도 다른 나라에서 큰 난리가 안 나는 이유는 자체적으로 재활용품을 흡수할 시장이 있기 때문”이라며 “유럽의 경우 정책적으로 재활용하는 비용이 매립 처리비용보다 훨씬 싸다”고 말했다.

② 생산자 책임 강화하라


물품이 생산돼 유통·소비되면 최종 단계에서 분리·배출, 폐기된다. 재활용 폐기물을 이용해 물건을 만드는 것도 결국 생산자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폐기물 순환의 핵심은 생산자 책임의 강화부터 시작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기업들이 포장재를 줄이고 재활용 가능한 상품을 확대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첫 단추부터 어긋나 있어 애초 자원순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 활동가는 “기업들이 복합소재를 사용하고 색료를 넣는 등 생산 단계부터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시민들이 아무리 분리배출을 열심히 해도 재활용 안 되는 제품을 만들면 문제는 반복된다”며 “생산 단계에서부터 고민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소장도 “원칙적으로 모든 출발점은 생산자에 있다”며 “지금 당장은 생산자의 책임을 강화해 재활용이 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원료 의무 사용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지금은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코로나19로 재생원료 수출까지 크게 줄면서 재활용 재생원료를 만들어도 재고만 쌓이고 있다. 김 이사장은 “기업들이 석유 등 천연원료에 의존하지 말고 적어도 50% 이상은 재생원료를 사용하는 의무를 둬야 한다. 그래야 재생원료 시장도 확대된다”고 말했다. 이재영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장(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교수)은 “기업 입장에서는 더 저렴한 원료를 선호하기 마련인 만큼 정부가 재생원료를 적극 사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지원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자 요구도 중요하다. 최근 소비자들이 두유팩에 붙은 빨대나 간편식 플라스틱 뚜껑을 제조업체에 반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업들은 소비자 의견에 빠르게 반응해 플라스틱 사용 감축 계획을 내놓기도 한다. 홍 소장은 “쓰레기 문제에 워낙 다양한 주체들이 얽혀 있어 혼자 해결할 수 없다”며 “소비자들은 생산자들이 자원순환에 책임을 지도록 기업 감시활동을 열심히 해야 하고, 정부 규제도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③ 혐오시설 낙인 없애라

덴마크의 열병합발전소 ‘아마게르 바케’는 지난해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수도 코펜하겐과 인근 5개 도시에서 나온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다. 코펜하겐 도심에서 불과 3㎞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설계 때부터 발전소 옥상을 스키장과 등반로로, 외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암벽을 조성하기로 계획했다. 굴뚝 꼭대기에는 전망대도 설치키로 했다. 아마게르 바케는 최신 저감장치를 사용해 배출 유해물질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도심 공존형 폐기물 처리시설의 대표 사례다.

이는 이동훈 교수가 주창하는 ‘쓰레기 행복론’과 맞닿아 있다. 이 교수는 “쓰레기는 절대 ‘대란’이나 ‘전쟁’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소각시설도 복지적 차원에서 커뮤니티 협력시설 등을 전제하고 설계해 나간다”고 강조했다. 폐기물 처리시설이 혐오시설이라는 낙인을 지우는 노력을 정부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활동가도 “‘우리 동네 폐기물 시설 설치를 반대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필요시설이다. 시민 편의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기술이 많이 발전했고 오염물질 기준도 엄격해졌다”며 “예전에 비해 시설 관리를 잘하는지 감시하는 체계도 마련할 여건이 된다”고 설명했다.

폐기물 처리시설 확충을 위한 중앙정부의 갈등 중재 노력도 시급하다. 환경부는 지난 9월 생활폐기물에 대한 ‘발생지처리원칙’을 강조했다. 원칙적으로 쓰레기를 만든 지자체가 이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경우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은 소각장 등 처리시설을 필수적으로 더 만들어야 한다. 인천시는 이 원칙에 따라 서울·경기·인천이 함께 사용하던 인천 수도권 매립지를 2025년까지 이용한 뒤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홍 소장은 “(현재 지리적 구조상) 서울에 매립장 설립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매립량을 줄이기 위한 소각장 확충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며 “주민들과 협의하는 게 어려울 뿐인데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활동가는 “자치구 몇 개를 묶어 시설을 공동사용한다고 하면 주민 반대나 갈등이 발생할 일도 적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생지처리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폐기물 처리도 문제다. 사업장폐기물은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처리해야 할 근거가 없다. 김 이사장은 “지자체가 각자 자기 지역에서 나오는 사업장폐기물, 생활폐기물이 얼마이고 어느 정도 처리가 가능한지 설계를 다시 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사업장폐기물 처리는 민간업체에서 하는데 주민들이 민간에서 시설을 짓겠다면 못 믿겠다고 악착같이 반대한다”며 “시설 설치 초기 단계부터 주민들을 설득해가고 혜택을 풍부하게 제시해 수용성을 높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1팀 임주언 박세원 기자, 전웅빈 문동성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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