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보다 안정, 기업보다 국가"..中 마윈은 왜 좌절했나

김광수 2020. 11. 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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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시대에 뒤떨어진 감독을 두려워해"
작심발언에 당국 불호령, 40조원 IPO 무산
中 매체 "금융역사에 중대한 분수령" 옹호
마윈 중국 알리바바 창업주. 한국일보자료사진

“중국 금융역사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중국 경제매체 금융계는 4일 앤트그룹 상장 중단 사태를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 최고 부호이자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마윈(馬雲)일지라도 정부의 마지노선을 건드린다면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 혁신을 강조하고 기업가 정신을 독려하지만, 결국 사회 안정과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이 더 중요하다는 중국의 속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마윈 작심발언, 보는 사람도 조마조마

2017년 스위스 다보프 포럼에 참석한 마윈. 다보스=로이터 연합뉴스

마윈은 지난달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서밋에서 낡고 진부한 금융당국의 감독 정책을 정면 겨냥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좋은 혁신가들은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뒤떨어진 감독은 두려워한다”며 담보에 의존하는 은행을 ‘전당포’로, 글로벌 은행 건전성 규제시스템인 바젤협정을 ‘노인 클럽’이라고 조롱했다. 아울러 “위험을 제로(0)로 만들려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면서 “미래의 시합은 혁신에 초점을 맞춰야지 당국의 감독 기능을 경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마윈이 ‘혁신의 아이콘’ 답게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출했지만 이 자리에는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 이강(易綱) 인민은행장 등 정부 지도부와 금융 최고위급 당국자들이 참석해 있었다. 마윈이 정부와 당국을 향해 도발한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교 소식통은 “당시 강연 내용을 뒤늦게 동영상으로 보면서도 조마조마할 정도”라고 말했다.


당국의 호출… 무산된 역대급 기업공개

마윈이 지난 미국 대선 직후인 2017년 1월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기자들 앞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마윈이 기세를 올렸지만 당국은 그 위에 있었다. 금융안정위원회는 1일 “금융 위험 방지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혁신은 어디까지나 그 다음이었다. 금융안정위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책사인 류허(劉鶴) 부총리가 이끌고 있다.

인민은행, 증권감독위원회, 은행보험감독위원회, 외환관리국 등 4개 기관은 다음날 공동으로 마윈을 불러 ‘위에탄(約談ㆍ예약 면담)’을 했다. 상부기관이 하부기관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군기잡기’ 제도다. 당국은 보란 듯 마윈 소환 사실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또 앤트그룹의 주력사업인 소액 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마윈을 압박했다.

이어 상하이 증권거래소는 3일 밤 “앤트그룹의 상장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5일 상하이와 홍콩 증시 상장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조치였다.

이를 놓고 “마윈의 발언은 시원했지만 금융안정 앞에서 혁신이나 과학기술 운운하는 건 접어야 한다(금융계)”, “마윈은 중국 당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월스트리트저널)”는 평가가 나왔다. 텅쉰왕은 지난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기사를 인용해 “마윈의 시대라는 건 없다”면서 “오직 시대 속에 마윈이 존재할 뿐”이라고 가세했다.

앤트그룹은 이번 기업공개(IPO)로 350억달러(약 40조5,440억원)를 조달할 예정이었다. IPO 역대 최대 규모인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294억달러)를 뛰어넘는 규모다. 하지만 IPO가 무산되면서 뉴욕 증시에서 알리바바 주가는 하루 새 8% 넘게 폭락해 시가총액 750억달러(약 85조7,000억원)가 날아갔다. 앤트그룹은 알리바바의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회사로, 지분의 33%를 알리바바가 갖고 있다.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시아오멍 루 애널리스트는 “마윈의 공격적 발언으로 규제 당국과 거대 기업 간 갈등이 악화됐다”면서 “하지만 상장 취소는 아니고 시기를 미룬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은 언제 다시 앤트그룹 상장을 추진할지 밝히지 않고 있다.


마윈과 중국 정부의 악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마윈은 2018년 9월 돌연 “1년 후 알리바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여배우 판빙빙(范冰冰)의 탈세사건이 불거진 직후여서 정부의 압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했다.

같은 해 11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마윈이 공산당원”이라고 뜬금없이 공개했다. 개혁ㆍ개방 40주년을 맞아 공로훈장 수상 명단 100명을 발표하면서다. 그간 추측이 난무하던 마윈의 입당 여부를 먼저 확인해준 것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국진민퇴(國進民退ㆍ국영기업 역할을 늘리고 민영기업 비중을 줄이는 것)’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에 민영기업의 선두주자인 마윈을 향해 호의를 베푸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동시에 경고를 보내는 이중적인 의미라는 분석이 많았다. 당원 배지를 단 이상 마윈도 기업보다 당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윈은 정부와 긴장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상하이 발언으로 정부를 자극하면서 다시 수세에 몰리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윈은 중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사실을 토로했지만 목표를 너무 높게 잡은 것 같다”고 전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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