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죽어도 오고 마는 내일, 우습게 보지 말라

이인열 사회정책부 차장 2020. 11.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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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과 거짓말의
암세포가 증식하고
면역세포가 인체 공격해도
항암제는 나오고 말 것

면역력. 코로나 시대 부쩍 많이 듣는 단어다. 바이러스 등에 대항해 우리 몸을 지켜주는 방어 시스템이다.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코로나 바이러스도 면역력이 강한 젊은 층에서는 제대로 위력을 발휘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면역력은 신비롭다.

그런데 왜 이토록 강력한 면역체계가 인체에 치명적인 암세포는 방어하지 못할까? 이 질문에 답을 만들어 노벨상까지 받아낸 과학자들이 있다. 제임스 P. 앨리슨(72)과 혼조 다스쿠(78).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들이 밝혀낸 비결에 따르면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활동을 중단시키는 특별한 단백질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암세포는 면역세포에게 “난 너의 친구야. 넌 활동하지 마”라고 거짓말을 해 무력화한다. 여기에 주목해 의학계에서는 암세포가 면역세포를 무력화하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외부에서 주입하는 방식의 면역 항암제 개발이 한창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더 있다. 이렇게 강력해진 면역세포가 암세포뿐만 아니라 건강한 세포나 장기(臟器)까지 공격하면 어떻게 될까. 화학적 항암제의 치명적 부작용이 바로 암세포 주변의 건강한 세포까지 파괴하는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한 답도 앞서 두 과학자가 규명했다. 면역세포에겐 건강한 세포 앞에선 스스로를 제어하는 물질이 있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제어 기능이 없는 면역세포는 암세포보다 무섭다는 얘기다.

이 두 과학자의 위대한 업적을 곱씹다 보면 지금 우리 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암세포는 무한 증식을 하고, 면역 기능은 엉망진창이 되고 있으니, 사회라는 ‘인체’가 망가진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커가는 암세포의 정체는 포퓰리즘과 거짓말이다. 이전 시대에선 양극화, 공동체 의식 결여 등이 암세포 같았다면 이젠 선동적인 포퓰리즘과 막무가내식 거짓말이 진실을 덮는다. 페어플레이(정정당당한 승부)는 실종되고 있다. 더욱이 이를 주도하는 세력은 용어의 변주에도 능하다. ‘검찰 개혁’이란 말이 만들어내는 현상들을 보라.

그나마 이를 견제할 면역 기능은 ‘어이 상실’ 수준이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포퓰리즘과 거짓말을 제어하는 ‘사회적 면역 체계’를 작동시켜 성장을 도왔다. 그 소중한 성과들이 지금 눈앞에서 처참히 무너지고 있다. 최후의 버팀목이어야 할 검찰과 사법부조차 ‘유사 암세포’ 징후를 보인다. 면역 체계를 자임한 일부 정치 세력과 언론, 시민단체 등은 더하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대신 공정, 정의 등 핵심 가치를 짓밟고 있다. 제어 기능을 상실한 면역세포가 인체를 파괴하는 것과 똑같다. 류머티즘 질환, 갑상선염 등이 바로 면역세포가 내 몸을 공격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다.

괴물이 된 면역세포들은 분노의 과잉화, 질투의 정치화를 내세워 사회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일본 경제학자 다케우치 야스오가 “질투는 때때로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고 했는데, 섬뜩하다.

그렇지만 코로나 국면처럼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같은 해결책이 나오면 우리는 복원될지 모른다. 면역 항암제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그것이 안 보인다.

하지만 포기해서야 되겠나. 인체와 달리 우리 사회의 항암제는 희망 그 자체일지 모른다. 그 희망을 키워야 한다. ‘커밍아웃 검사’들처럼 구성원 각자가 제자리를 지키며 암세포에 속지 말고, 가짜 면역세포는 축출하고, 면역 기능은 복원해야 한다. 그래서 ‘죽어도 오고 마는 내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암세포에게 보여줘야 한다. 요즘 암세포들은 내일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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