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소녀 12년간 후원 '키다리 소방관'

하남=이경진 기자 2020. 11.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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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모르게 조용히 후원한 건데 알려져서 너무 쑥스럽습니다.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한 소방대원이 형편이 어려운 한부모가정 아이를 일곱 살 때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키다리 아저씨'처럼 후원한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양 대장은 "대학 입학 때까지 돕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설득해 후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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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하남소방서 양승춘 구조대장
홀어머니와 사는 7세 사연듣고 "대학진학때까지 도와주고 싶어"
생활비 아껴 매달 월급의 일부 보내.. 부담줄까봐 전화통화 한번 안해
경기 하남소방서의 양승춘 구조대장은 한부모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이소연 양을 남들 모르게 12년 동안 후원했다.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전화 통화를 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양승춘 씨 제공
“가족도 모르게 조용히 후원한 건데 알려져서 너무 쑥스럽습니다.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한 소방대원이 형편이 어려운 한부모가정 아이를 일곱 살 때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키다리 아저씨’처럼 후원한 사실이 알려졌다. 소방대원은 소녀와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10년이 넘도록 약속을 지켰다.

경기 하남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양승춘 구조대장(56)은 2008년 6월부터 올해 초까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어머니와 단둘이 힘들게 살아가던 이소연(가명·19) 양을 후원했다. 당시 한 TV 프로그램에서 딱한 사정을 접한 양 대장은 “둘째 딸보다 한 살 어린 소연 양을 우연히 보고 ‘내가 꼭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양 대장은 인연도 없는 소연 양을 찾으려 무작정 해당 프로그램 측에 전화를 했다. 이후 소연 양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아 매달 후원금을 보내왔다.

양 대장 역시 풍족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달마다 소연 양에게 월급의 일부를 보내는 일은 빼먹지 않았다. 오히려 명절 보너스 등이라도 생기면 더 많이 보내기도 했다. 후원을 시작한 지 4∼5년쯤 됐을 때, 소연 양의 어머니가 미안한 나머지 “그만 도와주셔도 된다”며 계좌를 막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양 대장은 “대학 입학 때까지 돕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설득해 후원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감사한 마음에 자신이 텃밭에서 키우던 고구마와 감자를 양 대장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올해 초 소연 양은 드디어 대학생이 됐다. 양 대장은 마지막으로 입학을 축하하는 돈을 보내며 후원을 마무리했다. 양 대장은 “스스로 약속을 지켜낼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실은 부담스러울까 봐 소연 양하고는 통화를 해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만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1992년부터 소방의 길을 걸은 양 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베테랑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2008년 경기 이천 창고 화재,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국내외 대형 재난 현장을 28년 동안 누볐다. 그는 “안타까운 현장과 사연을 많이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누군가를 돕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실은 양 대장은 남몰래 후원하는 아이들이 소연 양 말고도 더 있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 한 동료 후배의 딸 2명에게도 매달 송금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퇴직까지 4년 정도 남았다. 계속 봉사와 후원의 삶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하남=이경진 기자 lk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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