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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차간격 줄이랬더니 웬 쉼터? 9억짜리 사당 '뻘쭘 라운지'

채혜선 입력 2020. 11. 06. 05:01 수정 2020. 11. 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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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이용객이 한 명도 없는 사당역 '경기버스라운지'. 채혜선 기자

수도권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만나 ‘교통 허브’로 불리는 서울 지하철 사당역.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하루 버스 이용객만 2만 명이 넘는다. 이곳에선 저녁 퇴근 시간대마다 경기도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200m 넘게 늘어선 줄을 쉽게 볼 수 있다. 경기도민 사이에서 ‘교통지옥’으로 불리는 이유다. 직장인 A씨는 “줄 서는 데만 하루 에너지를 다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당역 4번출구 근처에 있는 경기버스라운지. 경기도

이처럼 버스 탑승 대기인원이 많은 사당역에 경기도는 지난달 5일 ‘경기버스라운지’를 열었다. 버스로 경기도와 서울을 드나드는 이용객을 위해서다. 버스 정류장이 곳곳에 모인 사당역 4번 출구에서 30걸음만 걸어가면 한 건물 3·4층에 있는 라운지가 나온다. 라운지엔 버스도착 현황과 날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버스도착 정보 모니터와 콘센트 등을 갖춘 테이블 등이 있다. 와이파이·USB충전포트·냉난방시설·정수기 등도 마련했다. 경기도는 약 1년간 준비 기간을 거쳐 라운지 문을 열었다. 건물 임대료와 직원 4명에 들어가는 인건비 등 올해 책정한 예산만 9억원이다.


운영 한 달 ‘경기버스라운지’ 가보니
운영 한 달을 맞은 현재 상황은 어떨까. 4~5일 인근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경기도민 15명은 “들어본 적 없다”고 입을 모았다. 수원에 있는 한 대학교에 다닌다는 20대 여성은 “버스배차 간격이 길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앉아서 가야 하는데 굳이 줄을 서지 않고 저기를 이용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수원과 서울을 매일 오간다는 직장인 구모(31)씨는 “배차 간격이 짧아서 들어갈 시간도 없다”며 “줄 서지 않으면 앉아 갈 수도 없고 차도 탈 수 없는데 3층까지 왜 가나. 이용해본 적도, 이용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경기버스라운지. 조명은 버스손잡이에서 따왔다고 한다. 채혜선 기자

5일 오후 5시 라운지 이용객은 2명이었다. 경기도에 따르면 하루 이용객은 50~100명 수준이라고 한다. 운영 시간(평일 기준 오전 10시~오후 10시)을 따졌을 때 48석 규모의 해당 공간을 시간당 5~9명꼴로 이용하는 셈이다. 수유실도 있지만, 현재까지 한 명도 이용하지 않았다.

인터넷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이날 오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용 후기는 단 2개. 블로그 실 방문 후기는 3개 정도다. 반응은 “시설이 깔끔하다”는 쪽과 “홍보실적용으로 만든 것 같다”는 쪽으로 엇갈렸다. 라운지 개소 소식을 알리는 경기도 블로그에는 “예산 낭비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효율성 있게 운영돼야 한다” “세금이 자기들 돈 아니라고 막 쓴다” 등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다만 “내부 시설이 좋아 마음 편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공들여 운영하는 느낌을 받아 좋았다”는 이용객도 있었다.

라운지 관계자는 “(라운지가) 단순히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라고 볼 순 없다. 만남의 장소로써 활용하는 등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며 “날이 추워지면 이용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적 ‘전시행정’” 지적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6일 경기버스라운지를 방문했다. 경기도

도는 향후 이용객이 라운지에 있다가 예약한 버스가 도착하면 바로 탑승할 수 있는 버스탑승 예약시스템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현재도 버스 한 대 노선에 대한 예약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이용 인원으로 따져볼 게 아니라 도민을 위한 쉼터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며 “퇴근 시간 오후 4~7시대에는 이용객이 꽤 많다. 재이용률도 30~40%로 높은 편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도는 앞으로 라운지를 적극 홍보할 방침도 세웠다.

다만 전문가는 라운지가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서울과 경기를 오가는 경기도민이 진정 원하는 건 버스 배차 간격이 짧아지는 것 아니겠나”며 “그 돈으로 버스 노선의 효율적인 운영이나 시스템 개선 방식 등을 고민해봤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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